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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설 제단의 시비 (수 22: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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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땅으로 돌아가던 지파들이 요단강에 제단을 세운 이야기는 인간적 관심과 비애가 넘칩니다. 그런데 제단을 쌓은 목적에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념관으로 이해되고 그 자손들로 하여금 요단 양편의 모든 지파들이 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형제의 유대를 지니고 있는 단일 민족임을 기억케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서편에 있는 지파들은 그 단의 건립의 목적이 새 중심지에다 새로운 예배소를 건립하려는 것이며, 그래서 지파들은 서로 분리시키고 그들이 최근에 함께 참여하였던 협약을 무효화 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단을 세웠다는 보고가 인수되자 서편 지파들은 울분을 느꼈으며, 서편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그처럼 충성스럽게 그들을 도와주던 형제와 싸움을 벌일 준비를 하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 일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다행히 요단 서편의 열 지파 두령과 레위 족을 대표하는 비느하스가 파견되어 해결하였던 것입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열심이었던 사람이며, 이방 제사를 철저히 적대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의 배를 창으로 꿰뚫어 죽임으로써 미디안 족속과의 불법적인 교통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내린 재앙을 그치게 했던 것입니다(민 25:6-18). 이 일은 조사 결과 그 제단 건립의 동기가 선하고 합법적임을 알게 되자 순수한 종교의 열광자 비느하스도 그를 좋게 여겼습니다(30-34절). 즉 본문은 한 성전에서 한 하나님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 요단 동편의 제단 사건(10-20)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명예로운 제대식이 끝난 후 자기들의 거주지인 요단 동편으로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과 헤어지는 아쉬움과 그리움 보다는 그들에게서 제일 섭섭하게 여겨진 일은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멀리 떠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먼 후일에 그들은 강건너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는 이방 취급을 받게 될까하는 염려와 하나님께 결의가 없는 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오는 불안이 컸습니다. 이런 불안과 염려를 안고 귀향하는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염려와 불안을 제거하는 방안으로 요단 언덕가에 한 단을 쌓고 이것으로 후일에 증거가 되게 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히 그 안을 좋게 동의하여 볼만한 큰 단을 언덕가에 쌓았습니다. 이것이 요단을 가운데 두고 생기게 된 문제였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운 실로의 제단보다 더 크게 세워진고로 “볼만한 큰 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단 서편의 열 지파는 실로에 이에 대한 대책을 협의 하였습니다. 비록 요단을 경계해서 지역적으로 갈려 있다 해도 한 하나님을 섬길 한 혈맥인데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며 격분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함께 가나안과 싸워온 형제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다르면 형제라도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제안은 아주 공평하고 관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자기들이 소유한 땅이 제단이 없기 때문에 불결하다고 생각되거나 또는 제단이 없어서 마음이 편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실로의 제단과 맞설 또 다른 제단을 세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장막이 있는” 땅으로 건너와 같이 정주하게 되는 것을 환영한 것이며 또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살 곳을 마련해 주겠노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분열을 막으려는 성실하고도 참으로 경건한 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형제들이 분리된 제단을 쌓아야 하는 기회를 가지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제비 뽑아 그들에게 주신 그 땅의 상당한 부분을 나누어 가지며 같이 이해하고 자기들과 함께 살자고 제의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신이었습니다.

2. 제단 쌓게 된 동기 (1)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기 위하여 27절에 “너희 자손으로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일행이 귀향길에 요단 언덕가에 제단을 쌓은 것은 일종의 우상 숭배가 됨으로 강 서편 이스라엘이 격분하여 그들과 싸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느하스를 통하여 알아본 결과는 오히려 그들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이 요단가에 큰 단을 쌓은 것은 결코 여호와를 떠남도 아니요, 종교적 분열을 꾀함도 아니고 그들의 목적은 선한 것이었습니다. 곧 그들의 후손들로 하여금 영구히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섬기되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 합하여 섬기게 하려는 열의에서 비롯하였던 것입니다. 요단 동편에 있는 두 지파 반은 그들의 후손들이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는 이방 취급을 받게 되면 자기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백성이 될까 염려해서 자신들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를 삼기 위해서 한 단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단 언덕가에 볼만한 큰 단은 이렇게 선한 뜻에서 세워진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물어서 응답받지 않은 일과 또한 형제들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고 상의하지 않았다는 실수 때문에 몰고가는 위험을 초래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선의의 열심은 오히려 잘못하면 일을 그릇치게 하는 위험이 있으며 또한 상대편에서는 그 선의의 열심을 잘못 평가하다가 서로 범죄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선의의 열심 때문에 형제가 불화하거나 형제들에게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선의의 질서를 따라야 하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2) 동족의식을 보장하기 위하여 28절에 “후일에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세우는 것은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는 이방 족속입니다. 먼 훗날에 요단강 동편에 있는 두 지파 반의 자손들이 요단 서편 지파와 상관이 없는 이방 족속인양 취급받기 쉬우므로 하나님의 단 모형을 따서 세운 열조의 이 증거단을 통하여 한 동족임을 나타내며 동서의 연결을 영구히 보장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3)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기 위하여 28절에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두 지파 반의 대답은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쫓음으로 떠나려함은 결코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두령들은 이스라엘에게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였는데 31절에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저희가 이 죄로 여호와께 범치 아니하였음이라”고 말하여 시비는 일단락되었던 것입니다. 쌍방의 상반된 오해는 서로의 대화를 통해서 이해와 용서와 관용에서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니 비느하스의 중보적 역활이 대단히 중요했던 것입니다.

3. 사설 제단의 위험 (1) 우상 숭배의 근원이 되기 쉽습니다. 20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라고 했습니다. 두 지파 반이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증거단을 세웠다 할지라도 자칫하면 그것은 우상 숭배의 근본이 되기 쉬운 위험이 있습니다. 강 서편 이스라엘의 염려와 오해를 사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없이 자신들의 임의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인본주의의 소행인 것이 되며, 인간의 어떤 공적을 나타내려는 인간행위 위주가 될 때 나중에 그것이 우상 제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출 20:4)고 하신 것입니다. (2) 민족 분열의 화근이 되기 쉽습니다. 12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하니라”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의 최초의 살인사건이 가인과 아벨의 하나님께 대한 제사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가나안 칠 족을 멸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전쟁도 바로 그 근본은 종교상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외 다른 신을 믿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을 멸절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나중에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원인이 가나안의 남은 족속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 증거단은 좋은 목적에서 세웠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서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동서 민족 분쟁의 위험이 되기 쉬운 화근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3)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기 쉽습니다. 29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막 앞에 있는 이 단 외의 모든 제단은 이단입니다. 어떤 다른 제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구실과 변증으로 다른 단을 세우는 것은 인본주의 소산입니다. 지금 요단 언덕에 세운 제단 때문에 후일에 동서의 분쟁의 원인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그 민족에게 큰 불행의 요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사설 제단의 처방 (1)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기도하라 22절에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므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다 아십니다. 이 제단 사건은 처음부터 기도가 없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도없는 일은 언제나 우리에게 실패를 가져오게 하고 오해와 불안을 가져오게 합니다. (2)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지라 29절에 “오늘 여호와를 쫓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진실 앞에는 이론과 변론이 무력합니다.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의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쫓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요단 동편 이스라엘의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이 신앙 고백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 때 요단 동편 이스라엘이 다른 신앙을 고백했다면 문제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고백은 첫째 유일신 신앙,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인 신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고백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열쇠가 됩니다. (3) 사랑으로 서로 화해하라 19절에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로 취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좋은 처방약입니다. 사랑만 있다면 해결 못할 어떤 어려운 문제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화해로 요단강 동편과 요단강 서편이 하나의 교량을 이루듯이 우리 교인들은 모두 사랑의 깊은 이해와 화해로써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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