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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골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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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남”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할 때 이처럼 풍부하고 은혜로운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여러 이단 사상이 침투하여 신자들의 신앙을 동요케 하였습니다. 그때 이단은 단순히 복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하여 한편으로는 유대 율법을 준수하는 할례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주시는 자유를 역설함으로서 기독교인이 가진 높은 하늘과 땅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사회의 불신 풍조는 물론 기독교계에서도 미신적 신앙이 많고 이단 풍조가 성행해서 비성서적 신앙이 참 성경적 신앙을 깔고 앉으려고 하는 그야말로 형언키 어려운 혼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교육과 식견이 상당한 자들도 여기에 많이 동조하고 있으니 참으로 마귀의 역사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이단에 빠진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은혜가 너무 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극기, 단련, 인내, 율법을 수행하고 금욕을 거쳐야 구원 얻는 줄로 알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쉬워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노력은 계율을 지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헨리 드라몬드 목사는 말하기를 “만일 매일 십분 씩만 그리스도와 함께 지낼 수 있으면 아니 단 이분이라도 얼굴과 얼굴, 마음과 마음이 합하여 지낼 수 있으면 그 사람의 생애는 일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순간이 인간의 어떤 노력보다도 인간에게 영향력을 크게 줍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것은 이단자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값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쉬운 것 같이 보이지만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일본 오사까에 천문학에 뜻을 둔 오꾸보 덴기찌 (大久保傳吉) 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20년 동안 매일 아침에 일출 30분 전에 옥상의 빨래 너는 곳에서, 저녁에는 일물 30분 전에 직장 앞의 광장에서 구름의 형태를 스케치하는 중 기상 이변이 일어나기 전의 구름의 형태를 조사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천문학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날마다 계속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신자의 노력하는 목표를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이 한마디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서 바울 자신이 날마다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것이 무엇 입니까

1.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야 겠습니다 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의 하늘은 유교에서의 天과 다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하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또 우리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곳은 한량없는 기쁨만 가득할 뿐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으며. 원망이 없고 한숨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하늘을 사모합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 가려면 먼저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골 3:1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으로 부활하신 영광의 주를 보았을 때 그분은 지금까지 상상했던 비천한 나사렛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은 여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중에 가지가지의 신산고초를 경험한 다음에 깊이 십자가의 사랑에 감응하고 그 비밀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그 비밀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참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물질에 대하여 죽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겨울에 낙엽이 된 수목은 겉으로 보아서 생명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줄기 중에 감추어 있다가 새 봄이 오면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생명도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활의 비밀은 하나님 안에 있고, 기독교인의 생활의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통하여 부활이 있다는 것을 비밀의 내용으로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듯이 기독교인들도 십자가에 옛 사람을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감추어진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4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상에서 찬양을 받을 때 우리 기독교인의 이름도 동시에 높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시자는 현재만을 생각하나 선각자는 자기 이름이 후세에 남을 것을 염두에 둡니다. 프랑스의 대 화가 밀레 같은 분도 그 당시는 그리 유명하지 못하여 빈궁한 화가였지만 오늘날은 모두가 그를 유명한 화상으로 존경합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도 현재에 고난을 당하지만 이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의 예비단계요 준비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이 순신 장군이 과거에는 그 이름도 나타나지 못하였으나 우리나라가 세계에 이름 있는 나라가 될수록 이 순신 장군 이름도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그의 이름과 함께 높아질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땅에 있는 육체가 초래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리시는 하늘의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기독교인들은 위에 있는 것을 찾고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위에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 소망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는 세상의 물질이 불탈 때 함께 탈 것이요, 세상의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질 것이니 성도 여러분은 위엣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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