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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 왕 아마샤 (왕하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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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잠시 남쪽 왕국으로 돌아가서 유다의 요아스가 암살된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왕 아마샤는 그의 아버지의 아들다왔던 것 같습니다. 그의 통치는 신명기 기자들에 의해서 같은 방식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5절과 6절은 그가 순수한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으로서 그의 통치의 큰 윤리적 진보가 있었다는 것을 가리켜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회적 단체의 연대 책임은 사상이 항상 같은 범죄의 경우에 범인의 아이들은 그 범인과 같은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6절에 “그는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을 죽이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명기에 있는 모세의 법에 따른 것입니다. 이같은 아마샤의 관대한 행동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인간의 상황의 실제와 개성의 정당한 요구들에 반응하는 윤리적인 의식의 성장의 첫번째 표명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구약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 근본적 성격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 안에 이와 같은 종류의 윤리적, 그리고 정신적 성장의 씨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알의 예배나 그 밖에 다른 어떤 고대 근동의 종교에 대해서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이스라엘의 종교는 헤아릴 수 없는 우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아마샤의 통치(1-7절)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은 왕입니다. (1) 아마샤와 성전 (1-4절) 아마샤는 다소 잘 행동했습니다. 물론 다윗과 같이 잘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요아스와 같이 행했습니다(3절). 그러나 시작은 잘 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참여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아마샤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잘 하려고 최선을 다한 흔적은 보였으나, 전과 같이 “산당은 제거되지 아니하였습니다”(4절). (2) 왕좌에 앉아 있는 아마샤(5-6절) 거기에서는 그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에게 정의를 행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 일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소의 소란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나라가 자기의 손에서 굳게 서게 될”때까지 그 일을 미루어 내는 현명함을 발휘 했습니다(5절). 아마샤는 처신함에 있어서 1) 율법에 따라서 행했습니다. 법 곧 “피를 흘린 자는 피를 흘릴지로다”라고 하는 율법에 따라서 행했습니다. 반역자들이나 살인자들이 남들과 똑같은 꼴로 무덤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 28:17에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들을 막지 말라”고 했습니다. 2) 율법의 한계 내에서 행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지니라”고 하는 규정이 분명히 있었습니다(6절). 아마샤의 주위에 있던 자들이 복수에 있어서나, 정책적으로 그토록까지 잔인할 필요는 없다고 충고해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아비들의 죄악을 자식들에게 갚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비들의 죄 때문에 자녀들의 생명을 요구한다 해도, 그것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이미 자기 자신의 죄 때라도 목숨을 잃고 말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제왕들에게는 그런 권리를 허용치 않으셨습니다. 자녀들은 왕 앞에서는 무흠하며, 따라서 가혹한 처벌을 받을 필요가 없는 법입니다. (3) 전쟁과 아마샤(7절) 아마샤가 에돔인을 쳐서 이긴 것을 보게 됩니다. 에돔인들은 요람의 시대에 8:22에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난”반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마샤는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 다시금 그들을 굴복시킵니다. 1만명을 죽였고, 반석같이 튼튼한 아라비아의 수도를 탈취하여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2. 요아스에게 패한 아마샤(8-14절) 왕국이 분열된 이 후 여러 왕들의 재위기간 동안 유다는 이스라엘의 증오를 많이 받아 왔습니다. 또 아사 왕 시대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우의를 크게 받아왔습니다. 그들과 서로 혈족으로나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그들 사이에 적대감이 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전 여러 시대 동안 결코 본 적이 없는 그런 큰 적대감이었습니다(8-9절).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8절에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우리의 힘을 전장에서 겨루어 보자”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요아스에게 개인적인 결투를 신청한 것이라면 잘못은 그 자신에게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편이 모두 자기들의 군병을 이끌고 나가야 했었습니다. 양편에서 각각 수천명들의 목숨이 아마샤의 변덕스런 기분에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로써 아마샤는 자기의 교만과 허세와 방탕성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런 도전은 마치 물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장차 큰 싸움이 될 다툼의 전초전으로 번지게 됩니다. 싸우기를 즐기거나 법정에 나가기를 즐기는 자들은 싸움을 만나게 될 것이요 후회도 먼저 하게 될 것입니다. (2)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돌아가라고 충고했습니다(10-11절). 1) 요아스는 야마샤의 교만에 심히 분개했습니다. 위풍당당한 백향목이 자기라면, 아마샤는 초라한 잡초에 불과한 가시나무라고 했습니다. 아마샤는 자기를 두렵게 하기는 커녕, 자기가 그를 경멸한다고 말했으며, 도대체 자기가 그와 어떤 결연을 맺고 관개를 한다는 것은 백향목이 자기 딸을 가시나무에게 시집보내는 격이라는 식으로 조소했습니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예후의 집안처럼 그 유서깊은 다윗의 집 이름으로 명명할 가치도 없는 자라고 본 것입니다. 2) 요아스는 아마샤의 운명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들짐승이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백향목과 가시나무의 관계는 종말을 고하리라는 것입니다. 3) 요아스는 아마샤의 도전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는 과연 연약하고 힘도 없으며 훈련도 잘못된 병사들로 에돔을 쳐서 파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너는 네 앞에 있는 모든 나라를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스라엘의 정규군 조차도 그렇게 쉽사리 멸하리라고 감히 생각하는도다 네 마음이 교만해졌느니라”고 했습니다. 4)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새로운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고 권고했습니다. 새로운 모험이란 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한계 밖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샤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그 나라에게까지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다고 일러주었습니다. (3) 아마샤는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12-14절) 결국 사태는 악화되었습니다. 요아스가 아마샤에게 모욕을 준 것과 같이 차라리 집에나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1) 아마샤의 군대는 패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아마샤의 군대가 전쟁에 임하자 요아스의 공격이 너무 극심하여 결국 저들은 한 사람도 칼을 휘두르지 못한 채 모두 도망갔습니다. 2) 아마샤 자신은 이스라엘 왕에게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요아스를 면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지껏 아마샤는 자기 선조들의 존엄성을 영광스럽게 자랑하였지만, 이제는 자기의 죄악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아마샤가 된 것입니다. 3) 정복자 요아스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정복자 요아스에게 순순히 문을 열었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모독하는 처사였습니다. 또한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그 왕성까지 소유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4) 예루살렘을 약탈했습니다. 값 나가는 것을 모두 탈취하여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자라고 했고, 아마샤는 “정직한”일을 행한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가 아마샤에게 승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마샤의 운명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심이요, 요아스는 근래에 하나님의 예언자 한 사람을 존중한 일이 있으나(13:14), 아마샤는 예언자 한 사람을 학대한 적이 있었습니다(대하 25:16). 하나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존경한 자에게 영예 주시기를 기뻐하시나, 그들을 멸시한 자들은 역시 멸시받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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