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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덕적 진리의 국면 (잠 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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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외와 사랑 16-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전 5:12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물질을 더 탐하므로 번뇌가 더하고 물질을 잃을까 염려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는 자도 영적으로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 때문에 가산 중에서 자기의 쓸 것은 적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모심으로 만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사랑합니다. 비록 쌀진 소를 통째로 내어 놓은 식사라 하더라고 상호간의 반목과 분쟁이 있다면 아무런 안락도 있을 수 없습니다.

2. 다툼을 일으키는 분노 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덕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 자신도 오래 참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증표입니다. 사람이 분이 날 때도 분을 내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면 그 덕을 보는 주위의 사람들이 감화를 받습니다. 그의 관대한 인격 앞에 감화 받지 않을 자 없습니다. 노하기 더디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와 접촉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3. 게으른 자와 정직한 자의 길 19절에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의 길이 이렇게 험한 이유는 실은, 그 길이 험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너무나 약해져서 여간한 난관이라도 헤치게 나갈 용기가 없는 까닭입니다. 또한 일을 해치우지 않고 그대로 둠으로 그것이 쌓이고 또 쌓여서 어려운 일이 태산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정직한 자의 길은 평탄합니다. 정직한 자는 자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기 때문에 항상 모든 일을 담대하게 처리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모든 일은 주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성전 재건의 사명을 받은 스룹바벨에게 대하여 슥 4:6-7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4.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 20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 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를 경외함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권위를 존중히 여겨 순종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부모는 뿌리요 자식은 가지입니다. 선한 자녀가 보모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매우 잘 보살피고 무진 애를 썼던 분들임으로 자녀에게서 기쁨을 얻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악한 자녀가 자신의 악한 마음으로 부모를 멸시하고 그들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패역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미련한 자로서 부모의 슬픔이 될 것입니다.

5. 무지한 자와 명철한 자 21절에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지한 자란 마음이 부족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지적으로나 정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미련한 것을 즐깁니다. 마치 보는 눈이 부족해서 미끼만 보고 미끼 속에 있는 낚시 바늘을 보지 못하고 삼키는 고기와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죄를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없는 자에게서 드러나는 확실한 표시입니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요 체험으로 깨다다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확신한 것에 거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6. 의논과 모사 22절에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 9:6에 우리의 모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4:6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에게 기도하므로 진리를 알게 되며 갈 길을 알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격입니다. 남이 나를 책망할지라도 그 말이 옳으면 나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야 합니다. 즉 여러 눈은 한 눈보다 더 많이 봅니다. 그래서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잘 성립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노인의 권면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다 실책을 했던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많은 모사를 원하기는 원했으나 지혜로운 자들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그릇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사를 얻되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7. 알맞은 말의 유익함 23절에 “사람이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왕하 5장에서 나아만 종들은 나아만을 신앙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때에 맞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해주는 말은 영향력이 지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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