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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니느웨에 전한 메시지 (욘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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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새로운 사명을 위촉받고 하나님 말씀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제 2의 기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은 신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요나에게 불신감을 표시하는 말씀을 하여도 무방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속이거나 표리부동하게 대하는 사람을 당장 엄격한 법에 고소하거나 망치려 들지는 않더라고 다시는 그를 신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요나에게 주어진 명령이나 사명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니느웨와의 전쟁을 포고하기 위해 파견된 전령이었습니다. 2절에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파송된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그들 어두운 지역에 비추게 하려는 하나님 의 은혜로운 의도를 표시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두로와 시돈이 만일 은혜의 수단을 소유했다면 회개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수단을 그들에게 허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마 11:21-23). 하나님은 니느웨가 은혜의 수단을 소유한다면 회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그런 수단을 주셨고 요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은총을 나눠 주심에 있어 어떤 장소에는 은혜의 수단을 보내시고 다른 곳에서는 보내주지 않으시며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의 영을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독단적이고 전제적으로 행동하신다 해도 “당신은 어떻게 하여 이같이 하나이까”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하실 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함께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도착하는 즉시 필요한 지시를 계속 그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된다는 것을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위태로운 일을 맡은 요나에 게 큰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을 보내셨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암시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당신께서 나중에 지시하는 산 위에서 번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 37:23에 “선한 사람의 발걸음은 여호와께서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요나는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는 알지만 거기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말을 전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니느웨에 가야 메세지를 받을 것이며 싫던 좋던 그것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단히 하나님께 의존하게 만드시며 그의 말씀과 섭리에 의존하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며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킬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해군 제독들이 전함을 거느리고 파견될 때 그들은 바다 멀리 나가기까지는 명령서를 개봉하지 못하도록 요구받는데 요나도 그와 같이 니느웨로 가야만 하고 거기에 다 달으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지시를 받게 됩니다.

2. 요나는 자기 사명을 신실하게 그리고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는 니느웨에 도착하자 자기의 교구가 무척 방대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1) 니느웨성 니느웨성은 앗수르 수도로서 본문에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했습니다. 실로 니느웨성은 2,500년 전 당시로서는 이미 경이할 대도시였습니다. 한국의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도 서울 장안이 너무 커서 언제 인파가 여기까지 차겠는가고 이조 세종은 말했으나 오늘날 서울은 그 대문이 몇 십 배 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도꾸가와 이에미쯔(德川家光, 1604-51)는 동경에 아사쿠사 대문을 세울 때 모든 신하들이 이런 들판에 대문을 세워서 무엇 하겠느냐고 했을 때 장군은 대답하기를 여기까지 에도죠(할, 동江戶城, 동경전신)을 넓힐 생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동경이 아사쿠사의 몇 십 배 더 넓은 곳이 되었습니다. 니느웨성이라면 옛날 장안 대문 안, 동경으로 보면 에도죠 정도로 인구 2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크기는 사흘길이라 했습니다. 관내에는 포서관, 병영, 천문대 등이 있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입니다. 성곽은 벽돌로 이중마차 6대가 위를 다닐 수 있는 두터운 성곽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큰 성읍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니느웨성이 심히 크다는 말로 밖에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니느웨의 위대함은 주로 그 도시의 규모에 존재합니다. 니느웨는 바벨론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요나가 복음을 가지고 전하기는 이 큰 성읍에 천천히 다니며 또 니느웨 성민을 주목시켜 주의를 환기시키려면 진중하게 걷고 중요한 거리와 골목을 다 다니면서 이 메시지를 전해야 하기에 최소한 사흘 걸려야 하는 거리입니다. (2) 니느웨성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요나는 니느웨로 오자마자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경하러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일에 열중했습니다. 하나님의 받은 바 사명을 곧 이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느웨성에 들어가는 것은 요나 한 사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실로 가공할만한 대사업으로서 만약 이것을 행하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모두 이 요나처럼 전율하여 단숨에 다시스나 타지방으로 도망가 버렸을 것입니다. 어떤 시골 청년이 처음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역에서 광화문으로 혼자 걸어간다고 생각해보시라. 서울 명동 남대문 상점에 간판보고 위로는 될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이 청년이 혼자 미국 필라델피아,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그저 혼자 갔다고 가정하여 보시라. 그 외로움, 전도는 고사하고 혀가 굳어지고 쳐다보이는 세계은행 건물을 보면 그저 큰 건물들이 자기를 삼켜버 릴 것 같은 기분, 많은 인파속에서 자신이 하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큰 니느웨성에 들어가 성민에게 환영받으며 칭송받는다든가 또 갈채 받는 소식을 전한다면 모르겠거니와 요나는 그 성읍에 들어가 외쳐 가로되 “40일이 경과되면 니느웨는 멸망되리라.” 다만 그렇게만 외쳤습니다. 보도 못했던 한 사나이가 갑자기 뛰어나와 니느웨 멸망론을 망언했으니 니느웨 성민은 미친 사람이 왔다고 냉소했으리라. 실로 미치광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 불굴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짧아도 철학박사가 맛볼 수 없는 진리가 있어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에 미쳐 서울 한복판을 다니며 요나처럼 이 서울시의 멸망을 외쳐 보시라. 여러분에게 그런 용기, 기력, 에너지가 있습니까 웅변한다고 떠드나 정말 하나님의 메세지가 임할 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팔 불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당하리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니느웨성 사람들은 이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니느웨성의 죄악은 그들의 재산이나 어떤 인간적인 힘으로도 보호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러 오실 때에는 큰 성읍들도 쉽사리 무너진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40일이 지나면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유예 기간이 허용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일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즉 이런 경고가 주어지면 그들이 스스로 낮추고 그 행위를 고쳐서 경고된 파멸을 방지할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우리는 40일을 살게 될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나는 30년 40년 산다기보다 30일 40일 이내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편안한날을 보내고 있을 때는 여러 수십 년 살 것으로 기대하기 쉽습니다. 우리가한 달을 사는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를 사는 것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태무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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