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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잊어버린 꿈 (단 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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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2장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관한 기록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있은지 이 년째 되는 해야 그는 장차 이루어질 세계 역사의 개요에 관하여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지상강림 하실 때까지의 역사적인 큰 줄기를 지금으로부터 이천 7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입니다. 그런데 왕이 이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번민하였습니다. 그는 담력이 크고 호탕한 왕이였지만 그 꿈이 너무 장엄하고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상당히 총명한 자인데 그는 꾼 꿈을 엊어버리고 그 꿈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전국의 박사, 술객, 점쟁이들을 다 불러 모인 “내가 어떤 꿈을 꾼 것을 알아내고 그리고 그 꿈을 해몽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대답하여 가로되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후리가 해석하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이 “자기가 꾼 꿈과 그에 대한 해석을 보이면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얻을 것이고 못보면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술사들이 대답하면서 “잊은 꿈을 해석할 이는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그 말을 듣고 진노하여 “바벨론의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왕의 명령이 내렸으므로 모든 박사들이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꿈이나 음성이나 환상 우림과 둠밈으로 나타냈고 또 비유적 현상으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계시 방법은 구약시대에만 있었고 신약시대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여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시킨 일도 사도들과 그 수종자들의 시대까지 끝났으므로 지금은 표준계시가 종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66권 외에 다른 성경이 있다는 것은 마귀의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꿈으로 하나님 뜻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었다고 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 꿈꾼 것이나 환상을 본 것이 실제로 맞아도 하나님의 뜻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신 13:1-3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정치 말라 그 꿈대로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 꿈을 따라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 말씀만이 하나님 말씀의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꿈을 마귀가 주는 것도 있고 또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혹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도 있으나 그것은 성경과 맞아야 합니다. 성경과 맞지 않은 꿈은 다 마귀에게 온 것이든지 자기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따라 가는 것을 참신앙이 아니며 미혹받기 쉬운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본문은 구약시대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서 장차 세상이 어떻게 되어질 예언이로 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꿈을 잊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 그 꿈을 해몽할 자가 없으면 전국의 박사들, 술객, 점쟁이들이 다 죽게 되었고 그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장에게 달려 갔습니다. “왕의 명령이 어찌 이다지도 급하십니까 몇 시간만 여유를 주십시오. 그러면 왕의 꿈을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의 간청이 수락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지혜와 총명은 바벨론의 박사나 술객들보다 백배 천배 나았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이상과 풍조를 깨닫는 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왕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냐와 미사엘과 이샤랴(바벨론 이름으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친구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 기도하자. 바벨론의 박사들과 술객들을 다 죽일 수 없다. 우리도 살고 그들도 다 살리자. 우리와 그들의 살기은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 뿐이다.” 기도의 동지 네 사람은 입을 모아 생명을 걸고 결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두 세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면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혼자서 하는 기도는 방향이 잘못될 수 있고 자기의 유익을 위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기도를 드릴 때는 적어도 그 두 세사람의 뜻이 합하지 않고서는 같은 제목의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동지들이 합심하여 기도를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합심하여 기도를 드릴 때 성전미문에 앉은뱅을 고쳤습니다. 안디옥 교회 다섯 사람 기도 동지들의 기도로 바울과 바나바를 세계 최초의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120문도가 합심하여 기도하므로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비밀이 창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속에 있는 영외에는 알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묵시를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중에 삼층천에 올라 낙원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의 종말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 앞에 큰 신상이 서 있습니다. 머리는, 정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 다리는 놋, 종아리는 철, 발은 철과 흙으로 된 우상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뜬 돌이 날아와 신상의 발을 부숴뜨렸습니다. 그러자 우상의 철과 흙과 놋과 금은이 다 부셔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우상을 친 돌을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아리옥 시위대장에게 달려갔고 아리옥은 왕에게 고했습니다. 신상의 형상을 말하자 왕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꿈에 본 것이 바로 다니엘이 본 그 형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이 용상에서 내려와 다니엘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너의 하나님은 참으로 신중의 신이요 왕 중의 왕이다 너의 하나님은 진실로 사람의 은밀한 것을 알고 계시는 참 신이시도다.” 그 패기만만 호언 장담하던 대왕이 일개 포로로 잡혀온 유대의 한 젊은 다니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새 것을 창조하고 새 나라를 건설하고 새 문화를 창조하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왕들은 꿈을 꾸고는 꿈을 잊어 버렸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래도 잃어버린 꿈을 찾아려고 노력이라도 했지만 대개의 왕들은 꿈을 땅 속에 묻고 말았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꿈으로 비행기를 만들고 에디슨의 꿈으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스티븐슨 꿈으로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듯이 우리는 우리들의 조상 선조들이 꾼 꿈을 해독하고 풀이하면서 살아야 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치 수천년 묵은 보물단지를 발굴해내듯이 지나간 시대에 버림받고 사장되었던 왕의 꿈을 개발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의 망막에서 살아져 간 꿈을 다시 들쳐 내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꿈이라면 그 것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 민족은 위대한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잃어 버렸습니다. 꿈의 주인공이 그들의 옆을 지나가도 그가 바로 그들의 잃어버린 꿈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메시야에 관한 꿈이였습니다. 그들은 수천년간 잃어버린 꿈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 꿈을 해독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은 곧 그 꿈을 알아 맞춘 다니엘의 꿈이 된 것과 같이 유대인이 꾼 메시야의 꿈을 받아 우리 민족의 꿈이 되었습니다. 꿈은 꾼 사람보다 꿈을 찾아낸 사람이 그 꿈의 주인입니다. 본문의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인간의 실상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강대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낱 꿈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번민하여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능력이 있고 무슨 일이든지 할만큼 지혜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이처럼 나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몽조하나 제대로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지혜요 꿈 때문에 번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능력입니다.

2. 인간의 무지함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는 박사와 술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위 당시 사회에서 지혜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요, 현인들인데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왕의 번민을 해결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이성 영웅주의 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주 앞에서 겸허함을 갖도록 해야만 하겠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주 앞에서는 무지합니다.

3. 완전한 지혜가 무엇임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완전항 지혜, 모든 것을 밝히 알 수 있고 올바르게 터득할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 신이 임한 사람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것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라야 주의 뜻을 바르게 분별합니다. 성도라야 이 시대의 시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고 주님 맞을 준비롤 제대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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