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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아와 같은 미가의 제사장 (삿 1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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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에 기록된 사실은 사사 시대가 다 지나간 후 왕정이 시작되 기 전 무정부의 진공상태에 빠져 무질서의 혼란으로 오는 당시 국민 내부 의 도덕적 상태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 일정한 지도적 표준이 없이 각인이 다 제 소견의 옳은대로 행동하더라 ” 하는 말이 곧 그 시대의 진상을 그대로 그려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혼란과 우상숭배와 죄악의 슬픈 모사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만약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알고 그대로 청종하였더라면 거룩한 복된 백성이 되었을텐데, 그들 은 자기 멋대로 생활했습니다. 미가는 에브라임 자손으로 무정견의 신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이단을 혼합하여 맹신했으나 사이비한 종교입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떠난 인간이란 마치 부모를 떠나 고아와 같이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실로 하나님을 떠나 사는 현대인은 고아라 하겠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성경은 많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 미가의 레위 계통의 제사 분명히 미가는 적합한 제사를 두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제사직에 임명했다는 것은 그 시기의 혼란상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나 분망히 그 때까지는 이미 제사적인 기능에 특별히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레 위 사람들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특별히 유다 지파 사람이라 규정되었으며 역사적으로는 레위 지파의 남은 사람들이 가나안 정복지에 유다 지파속에 흡수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단계에 있어서 레위 지파라는 이름은 지파적인 기원보다는 오히려 제사직의 신분을 말할 것입니다. 레위 지파라는 말이 단순히 지파적인 언급을 의미 하는 것 이상 의 의미를 가진 것같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 남은 레위 시람들이 일찌기 제사직의 기능을 취함으로 그들의 지파적인 신분을 영구화 됨을 증거했습 니다. 미가는 제사장으로서 훈련도 받고 배경도 있고 신상도 만들었고 사 제 제단도 있었지만, 레위 사람으로 제사장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자기에 게 더 은혜를 베풀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 젊은 레위인에게 제사장직을 주 며 ‘ 아비’ 의 지위도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2. 레위 소년과 미가의 신앙 (1) 레위 소년의 신앙 이 레위 소년은 유다 베들레헴에 우거하던 유다 가족에 속한 자입니다. 1) 레위 소년은 새로히 거할 곳을 찾아 유다 가족이 거하는 베들레헴 을 떠났습니다. 아마 생활고로 떠난 것 같습니다. 원래 레위인은 가나안 땅 을 분깃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성전 일과 율법을 가르치는 사 방을 부여 받았습니다. 기업을 받은 자가 바치는 십일조로 생계를 유지했 습니다. 그런데 기업받은 지파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으면 레위인은 생계가 어려웠습니다. 이 소년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생 활고로 떠난 것입니다. 2) 레위 소년은 삯을 받고 미가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 을 하는 자는 먼저 물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욕에 어두운 자에게는 사 탄의 유혹이 늘 따릅니다. 이 소년 레위인은 유혹에 빠졌습니다. 첫째로 명예욕에 빠졌습니다.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였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보잘 것 없던 그가 제사장이 된다고 하는 것은 분명 귀가 솔깃 해지는 제안였습니다. 둘째로 삯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가난했던 베들레헴 생활이 싫어서 떠난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습니다. 오늘 날 목회자들에게도 이런 유혹이 있습니다. 명예와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서 안될 것이고 먼저 하나님의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2) 미가의 신앙 1) 미가는 이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절에 “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자 ” 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미가는 하나님 영광의 힘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리는 재앙과 저주를 두려워 우상 신상을 만들고 레위 소년을 “ 나를 위하여 ” 제사장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2) 미가는 형식주의자였습니다. 13절에 “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 고 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았는데(삿 17:5), 그가 그 아들을 폐하고 레 위인을 제사장으로 삼고자 한 것은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봉사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가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행위의 진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형식만 추구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 형식적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3) 미가는 기복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13절에 “ 레위인이 내 제사장 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고백했습니다. 그의 신앙의 귀추는 ‘ 복 ’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위한 신앙이 아니였습니다. 물질의 부요함을 구하는 신앙이였습니다. 그러므로 미가는 우상, 신상을 믿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며 참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못 했습니다.

3. 미가를 통해 보는 현대인의 고아상 이같이 미가와 레위 소년 제사장은 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탈선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를 떠난 인간이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고 아와 같이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 나님을 떠나 사는 현대인은 고아와 같은 인간상을 살피는 중에서 우리 모 두 다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고아란 무엇입니까 1) 후견인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불안합니다. 하루종일 삼삼 오오 를 떼지어 다니다가도 해가 서산에 지면 갈 데 없어 불안과 외로움에 지나 는 것이 고아 신세 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현대인은 믿고 의지할 후견인이 없는 고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사는 것이 최대 불행중의 하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독일의 작가 릴케는 인간은 마치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가 자기의 역할을 모르고 허둥지둥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무대에 등장한 오늘의 인간들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대부 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극은 계속되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레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까닭에 하나님의 품안 에 안기어 그 섭리 속에 산다고 믿을 때에야 모든 불안은 해소됩니다. 부모 찾은 고아가 기쁨과 희망에 가슴이 벅찬것 같이 현대인의 불안은 하나님을 찾아 그 품안에 안기울 때에야 비로소 해소되는 것입니다. 2)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고아에게는 그 누가 간섭하는 자가 없습니다. 지도하는 자가 없으니 자기 소견대로 살 수밖에 별도리가 없습니다. 미가 당시에는 백성을 다스릴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편리한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현대인은 고아와 같이 제 생각 내키는대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어느 누구의 제재도 지도도 받기를 거부합니다. 미가 당시와 같이 오늘날의 현대인을 지도할 지도자로 왕도 없습니다. 하나님 을 떠난 현대인은 오직 자기 소견대로 살고 하나님을 무시한대로 살고 있 습니다. 현대인은 실로 정신적 지주를 잃고 있는 고아와 같은 삶입니다. 확 고부동한 신앙, 영원한 신념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임기웅변으로 알맞게 변화무쌍 중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는 자기 불안을 해 소시킬 수가 없어서 은 40개로 자기 소견대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인은 믿고 의지할 참신이 없을 때 가짜 신이 라도 만들어 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자 하고 아우성 쳤습니다. 그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던 것입니 다. 3) 고아와 같이 된 현대인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을 떠난 현대인은 가지가지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삼 우상 은 3M입니다. 첫째는 맴몬(Mammon)입니다. 끝없는 이익을 추구하며 돈을 만물의 척도로 삼고 최고의 왕좌로 모시며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살아갑니다. 둘째는 매스(Mass)입니다. 신문, 라디오, T.V, 즉 메스컴의 시대입니다. 대중의 힘을 신처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입니다. 여론을 하나님처럼 무서워합니다. 셋째는 머신(Machine)입니다. 고도로 발단된 첨단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기계문명은 현대의 신입니다. 기계없이 살 수없고 기계의 위력앞에 떨고 머리를 숙입니다. 독일의 철학 자 데셀우엘(Deseuel)은 기계를 가리켜 “ 강철로 만들어 낸 새로운 신 ” 이 라 했습니다. 결국 미가가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 두 단 지파에게 빼앗겼습니다. 미가는 제사장도 신상도 자기 인생의 의미 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미가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현대인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자리에든, 대중, 기계든 등의 우상을 앉혀 놓고서도, 목 사를 세워 설교만 들으면 복을 받으리라 생각하는 현대교인이 얼마나 많습 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아 있지 않은가 돌아보아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찾을 때가 온 것입니다 믿고 의지했던 모든 것을 잃었을 때처럼 절망적인 때는 없습니다. 미가 는 지금이 야말로 하나님을 찾을 때가 온 것입니다. 오늘의 인생들도 그들 이 믿고 있던 우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인가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인간은 하늘 향해 절규할 것입니다. 이 절망의 문에서 하나님은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돌아온 인생의 마 음은 평안과 기쁨과 풍부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의 고아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찾을 때가 되었습니다. 돌아오시라 고아와 같은 인생들아 아버지의 품은 참으로 따뜻하고 넓고 풍성하십니다. 참 소망과 참 평안이 여기에 있습니다. 절망에서 신음하고 탄식하는 자들이여, 영원한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시라, 머뭇거리거나 지체하지 말고 지금 곧 돌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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