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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빠른 세월 가는 인생 (시 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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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0편은 모든 시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시 중의 하나입니다. 이 시는 모세의 기도 혹은 모세의 인생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1. 인간의 무한성 어떤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는 아름다운 종교시이나, 봄날 하늘 높이 즐겁게 부르는 종달새의 노래라기 보다는 쓸쓸한 가을날 나뭇가지에 외로이 앉아 우는 라빈(새의 이름) 몇 마리의 노래이다. 고요한 밤 저녁에 외롭게 우는 두견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 3절의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와 같이 육체는 티끌에서 나왔고,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5절 하반절에는 “잠깐 자는 것 같고”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잠깐 자고 깨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인생을 잠깐 있다 마르는 풀에 비유했습니다. 9절에서는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는 하품 한 번 하는 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품 한 번하는 사이에 우리 인생이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그저 잠깐이라는 말입니다.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세월은 너무 빠릅니다. 인간은 잠깐입니다. 그 잠깐의 인생도 그 삶이 고생과 수고 뿐이라고 했습니다. 질병, 사망, 재난, 환란이 많은 세상입니다. 좀 오래 살면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고 그 주름살은 눈물이 흐른 자취입니다. 그리고 내면적으로는 죄로 고민하는 인생입니다.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가기 때문에 우리 삶의 날을 계수하라고 이 시인은 말합니다. 엡 5:16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더 귀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한 시간을 낭비하면 한 시간의 생명이 없어집니다. 돈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을 수 있지만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생명은 다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시간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간을 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생을 돌이켜 볼 때 실제에 있어서 시간을 우리의 생의 자료로써 채우는 것보다는 시간을 죽이는 때가 많습니다. 시간을 생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무의미한 삶이되고 맙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곧 운명을 지배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원했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시간과 저 시간의 사용에 있어서의 선택이 아니고 주어진 시간을 적절히 이용하느냐, 게으르게 쓰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그저 보낼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시간과 인생은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속하게, 목적있게, 통일되게, 강력하게, 그리고 결단적으로 기도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움직여 나아가지 않으면 않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미지의 바다를 향해서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좋든지 빠쁘든지 간에 이 시대에는 우리의 시대이고 우리는 이 때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주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외부의 정세만을 살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의 내부적 본질에 대한 문제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길바닥에 퍼붓는 소나기는 그 세력은 굉장하나, 얼마 후에 해가 나면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의 깊은 곳에 뿌리를 박은 사랑과 자비와 충성의 정서는 오랫동안 남아서 천천히 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2. 인간의 유한성의 해결 로마는 결코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네델란드의 격언에 “한줌만한 인내가 한 말만한 두뇌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에디슨은 말하기를 “자연의 발자취를 따르라. 그의 비결은 인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하나님과의 연자매는 돌아가는 것은 느리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서뜨려서 가루를 만드신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조각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온 세계가 혁명의 여파로 분요함과 조급함과 긴장에 쌓여 있을 때 손으로 턱을 고이고 심사숙고하는 정의 사람을 상징했던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악한 세월 속에서 비애는 용감히 견디고, 위험이 오면 담대하게 대하고, 행복을 찾았을 때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유쾌하고 명랑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이 주워져 있습니다. 스위스의 어떤 노인이 8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26년은 침상에서 누워있었고, 21년은 일하였고, 6년은 음식먹는데 소비했고, 6년은 입싸움, 분하여 노한 시간이었고, 5년은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데 시간을 소비했고, 228일간은 수염깎는데, 216일은 아이를 욕하는데, 18일간은 넥타이 매는데, 80일간은 코푸는데, 12일간은 담배불 라이타 켜는데 소비했고, 웃는 시간은 46시간 뿐이었고, 그 외 세수, 옷입는데 등으로 자기 인생 시간을 다 허비했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기독교는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며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종교입니다. 순간적인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인생은 비록 잠깐이지만 이 동안에 영원한 거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허무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 생활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인간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천금처럼 아끼고, 바로 사용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봉사하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 즉 민족과 국가에 봉사해야 합니다. 세월은 빠릅니다. 인생은 가고 있습니다. 인생이 가기 전에 참 삶의 진리를 찾고 하나임 앞에 바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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