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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랑의 면류관 (살전 02: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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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그리스도 강림 때에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하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 사도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언제든지 교회의 교역자는 교인들의 자랑의 면류관이 되어야 하고 교인들은 교역자의 자랑의 면류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무엇으로써 사도들의 면류관이 되었습니까 돈이 많음으로써 입니까 지식이 많아서입니까 권세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까 사실 그들의 신앙과 미덕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의 신앙의 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사, 장로, 집사, 주일학교 반사, 성가대, 남녀 전도사에게 모두 신앙과 미덕으로 부요하며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에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진실한 믿음으로 성도와 교역자의 결합은 신앙 중심으로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주의 종이요 성도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의 권속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같이 믿음의 역사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역사란 두 가지 곧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받는 은혜를 위하여 노력함이요, 외적이란 자신의 신앙의 위치에서 복음 전파와 모든 선한 사업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노력하여 기차의 레일과 같이 언제든지 병행해야만 하나님의 기뻐하는 바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외적인 복음 전파와 함께 모든 선한 일에 완전을 기하여 먼저 자신이 내적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자기중심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기독교인이 될 수 없는 동시에 복음을 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먼저 나의 중심부터 신앙의 불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없고 은혜도 없이 하는 일은 그 목적과 방법이 아무리 선할지라도 형식과 외식에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 사업과 함께 내적 은혜를 위하여 힘을 써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전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고,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구라파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며, 예수께서도 온 세계 인류의 생명을 구속하기 전에 유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의 역사로 마귀를 정복하고 갈릴리 도상에서 천국이 가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 사업은 성도의 내적 신앙력인 은혜의 기쁨으로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진실한 믿음과 믿음의 결과로 행하여지는 선한 사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함으로써 피차 그리스도 앞에서 자랑이요 면류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의 봉사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봉사는 피차에 나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믿음 중심, 은혜의 중심에서 행하여져야 합니다. 사랑의 수고란 사랑의 봉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봉사가 성립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와 온 교회는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기초로 하여 피차에 존경과 사랑으로 봉사함으로 참다운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참다운 사랑의 봉사엔 수고도 괴롭지 않고 도리어 수고를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 마음에 환희의 꽃이 피게 됩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면,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수일같이 지냈습니다. 7년은 길다면 긴 것이고 7년간의 봉사는 수고로웠지만 7년을 수일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사랑은 봉사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참 봉사는 수고라도 도리어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기르는 것도 가장 큰 괴로움이지만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수고로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즐거움으로 생각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렇게 봉사정신이 풍부하여 그들의 사랑이 온 아가야에 알리어졌으므로 이것은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에게도 기쁨이 됨과 동시에 그리스도 앞에 바울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는 진실한 믿음과 사랑의 봉사로 말미암아 주님 재림하실 때에 교역자의 면류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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