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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다의 서원과 승리 (삿 1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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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 이스라엘 사사로 추대된 후에도 정당한 역사적 이유를 내세워 암몬 왕에게 화친을 제의했으나 그 왕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습니다. 화평의 메시지가 거절되자 그 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위로부터의 능력을 힘입고 전쟁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1. 입다의 서원과 승리(29-33절) (1) 입다의 승리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훌륭한 영을 주셨으므로 그는 매우 용맹스러웠습니다(29절). 이 때 입다는 어느 때보다 용감하고 슬기로웠으며 그의 백성의 대적에 대한 싸울 열의가 더욱 불붙듯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의 임무에 확신을 주었으며 그에게 성공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2) 입다의 서원 입다는 므낫세와 길르앗 사람들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선동하였고 모두 미스바의 신전에 모였습니다. 입다는 이 어려운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하였습니다. 31절에 “ 여호와여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내 집문에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번제로드리 겠나이다” 하고 서원했습니다. 분명히 여기에는 사람의 희생이 함축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크면 그만큼 큰 희생물을 대신 드려야 한 다고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나 어린애의 희생을 드리는 일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풍습속에 날아 있는 시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다 그 대신 양을 바쳤다는 족장의 얘기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인간이 그 시기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창 22:9-14). 입다의 일은 그가 살던 시대의 표준으로 판단되어야지, 우리 시대의 표 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됩니다. 어쨌든 그는 자기가 소유했던 것을 하나 님께 바쳤습니다. (3) 입다의 승리 32-33절에 “ 곡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되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압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암몬에게 의로운 심판을 내렸으며 그들로 하여금 결코 굴하지 않은 전투력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싸우시는 분은 “ 보좌에 앉으시어 의롭게 심판하시는 예수 하나님 ” 이시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그에게 주어진 호기를 놓치지 않고 잘 이용하여 드디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즉 그는 적군을 패주시키기 위해 그들의 성읍으로 추격하여 무기를 가진 자들을 모두 칼로 쳐죽이니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군과 싸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처럼 완전히 멸한 것이 아니고 단지 목표했던 것은 그들이 완전히 이스라엘에 항복하는 것이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 백성을 침범하는 자들과 싸우시는 성전(聖戰)이었습니다. 이와같은 것은 입다의 영도권의 은사적인 성격을 강조한데서 함축되어 있습니다.

2. 입다의 귀환(34-40절) (1) 입다는 아주 우둔한 맹세를 했습니다. 진실되고 깊은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에서도 때로 불신과 의혹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입다는 그의 성공을 확신할 근거를 충분히 갖고 있었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승리를 더욱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에 임하러 할 때 그는 주저 했으며 30절에 “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 “ 내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올 때 집에서 먼저 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또 무언이든지 그 것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엄숙한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맹 세로 그의 무남독녀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바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당한 봉사 를 하나님께 서원하는 갓은 매우 좋은 일이나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댓가 로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그리고 우리를 이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경의로서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맹세를 하는데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좋은 충고를 받아야 합니다. 서원한 후 그것을 이 행하지 못해서 “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 ” 고 말해서는 안 되며, 서원한 것을 이루기 위해 갈등과 억지로 서원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뻐 받으시지 않으므로 서원할 때는 신중히 생각하고 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 앞에 시원한 것은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입나는 서약한데로 이행했습니다. 미리암의 환영과 사울의 승리적인 귀 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입다는 개선하여 귀환하는데, 그는 소고를 가 지고 춤을 추는 자기 가정은 여자들에게 환영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무남독녀 외딸이 이렇게 그를 환영해 나오자 그는 끔찍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맹세가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었습니다. 자기 맹세를 취소할 수 없다 는데 난제였습니다. 만일 그가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면 자기 자신의 인격 적인 성실성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서원하였으니 그 것이 해로울지라도 변심마고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 나님을 조롱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3) 입다의 딸의 태도 입다의 딸은 그의 아버지가 기생의 자식이라는 불명예스런 생활을 청산 하고 이스라엘의 장관이 되었고, 구국공신으로 개선 장군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환영할 겨를도 없이 자기 때문에 비통해 하시는 심정을 잘 알고 “ 아버지여 여호와를 향하여 서원하신 그대로 시행하소서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암몬 전쟁에 승리를 주셨으니 아버지께서도 서원하신 대로 저를 제물로 바쳐주소서 나는 이 나라를 구원하신 우리 위대하신 아버지, 자랑스러운 군대 장관이신 아버지를 위해서,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 서, 승리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나 자신을 제물로 헌신하겠나이다. 아버지는 저를 더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경외 하여야 됩니다 ” 라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입다의 딸은 참으로 대 효녀 입니다. 입다의 딸은 “ 두 달 동안만 동무들과 산에 가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이제 두 달 동안 처녀로 죽는 것을 애곡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해마다 나흘씩 그녀를 위해 애고(40절)하여 입다의 딸의 영혼을 위로해 준 것입니다. 자식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들에게 항상 온순하게 순종하여 그 가 문의 신앙에 빛나는 전통을 세워 나가며 지켜야만 합니다. 비록 그 원칙과 결정이 지키기가 힘들고 어떤 면으로 볼 때 좀 가혹할지라도 순종해야 하 늘의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은, 결박과 번제물로 드림을 감수했고, 입다의 무 남독녀, 무명처녀는 독신과 절손(絶孫)을 감수했고 레갑 자손들은 건조, 요나답의 명령에 복종하여 포도 농사, 주택 생활, 금주 생활 280년을 감수 하여 렘 35:19에 “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는 위대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입다의 무남독녀의 헌신은 아버지의 승리를 더욱 은혜롭게, 영영히 영화롭게 승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입다가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고 할 때 그것이 잘 한 일인지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입다의 윤리적인 비전의 제한성과 결점을 모두 인전한다 하더라도 그의 딸이 경건과 더불어 입다의 하나님께 대한 심오한 책임감은 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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