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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대상 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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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들은 옳은 방법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에 있어서도 슬픔의 흔적이 있으니 웃사는 죽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을 옮겨졌습니다.

1. 여호와의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라고 축복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도 노래하는 화려 한 행렬과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나팔로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호화스런 의식이라고 해서 은혜의 보증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는 기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이것은 지루하고 졸음이 오는 예배가 아니라 밝고 생기가 나는 예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아무런 회생제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점이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은 다윗의 불충실한 봉사를 견책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천부장, 백부장, 제사장들과 의논하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 총회에 동의를 얻어 결의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매우 지식이 많고 권세도 지니고 있었지만 단독적으로 명령에 내리지 아니했습니다. 백성들의 대표들의 협조를 얻을 수 있을 때 백성들의 충성은 가장 견고한 것이 됩니다. 회중을 향하여 형제라 불러 겸손을 나타내면서 “너희가 선히 여기고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이라는 가정 아래 “궤를 옮겨오자”고 결정했습니다. 일을 결정하여 놓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본주의,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지 않은 그의 불충실한 봉사를 견책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선히 여겼을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결의하였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면 우리는 행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뒤에 두고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와 의논하고 회중의 동의를 얻으려는 다윗의 불충은 숯불에 물을 뿌리는 식의 봉사입니다. (2) 웃사의 불법 봉사를 징계하셨습니다. 1) 웃사의 죄는 첫째 궤를 수레에 싣고 간 것이 잘못입니다. 민 4:15에 보면 “궤는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니고 레위 지파 중 고한 자손의 어깨에 메는 것입니다.” 2)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7절)라 했습니다.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의 직책을 유대 지파 중 운사가 함부로 나선 것은 무례하고 경솔하고 성직을 모독하는 것이요 월권입니다. 고핫 자손도 아닌 웃사가 앞장서서 날뛰는 봉사는 죽음을 불러오는 불법 봉사의 열심입니다. 3)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9절) 성물을 모독한 불경죄입니다. 민 4:15에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는 말씀이 분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힘으로 자기의 완력으로 여호와의 궤를 임으로 제지하려는 태도는 신성모독이요 참람한 행위요 불경죄입니다. (3) 백성들의 불신앙을 견책했습니다. 백성들은 웃사가 급사한 것을 보고는 크게 두려워하며 슬퍼하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비신앙적인 생각과 행동을 치시는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비신앙적인 생각과 행동을 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느 사건, 어느 인물을 막론하고 신신학의 비신앙을 치시며 또한 보수주의의 비신앙도 치시는 것이며, 육적인 생각, 인본주의적인 생각, 비성서적인 생각을 향해 경고의 채찍과 징계의 채찍을 내리십니다.

2. 웃사의 죽음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다른 불을 사용한 나답과 아비후를 치셨던 것입니다(레 10:1).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 속을 들여다본 벧세메스 사람들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거룩한 사역을 자기의 감정으로 무가치하게 다룬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제를 내게로 오게 하리이까”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계명의 엄격하심을 가지고 게으름의 변명으로 나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잠시동안 쉬기로 합니다.

3. 언약궤를 모시는 방법 (1) 언약궤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법대로 모셔야 합니다. 1)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대상 15:14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언약궤를 모시기 전에 자기 자신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몸을 성결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궤를 메는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들은 모두 깨끗한 세마포로 단장했습니다. 다윗 왕도 베 에봇을 입었습니다(15:27). 우리들도 일을 맡는 것, 그 일에 착수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내적 성결, 외적 단장, 중심의 회개와 신분의 구별과 생활의 선한 행실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의 궤를 레위인 고한 자손의 어깨에 메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소를 몰고 가는 것보다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내목에 메인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서 주님을 따라 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3) 희생의 제물을 신뢰 하였습니다. 26절에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이 제사를 드린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갈보리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나타내었고 둘째는 지난날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만사에 형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언약궤를 법대로 모신 자의 축복 1) 하나님께서는 오벨에돔을 축복하셨습니다. 2) 다윗에 의해 준비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생각을 거듭하게 했습니다. 3) 여호와의 심중의 뜻을 존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4) 제사장들은 다 자기들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나 또한 그에 따르는 모든 방법들이 모두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만 합니다. 5) 희생제물이 드려졌습니다(26절). 크고 흠 없는 회생제물이 언제까지나 우리 앞에 놓여져야 합니다. 우리가 행할 그 의무의 본질을 바꾸어 놓고 잘못된 방법으로 수행한 의무는 오히려 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 21:4에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따라서 기도는 침상에서 부르짖는 것으로 여깁니다(호 7:14). 이와 같이 무가치한 간구는 주의 만찬을 먹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고전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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