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군할 수 있는 자 (신 20:1-9)

첨부 1


신 20장은 거룩한 전쟁에 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1-9은 전쟁에 임하기 전에 제사장과 백성의 지도자가 발표하는 설교문이고, 10-18절은 전쟁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고, 19-20절은 어느 도성을 포위했을 때의 작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임할 때 원수의 말과 병거를 두려워하지 말것을 당부합니다. 이스라엘이 대적한 가나안 사람은 이미 철기문화의 덕택으로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목민인 보병들에게 기마부대와 전차 부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월등한 군사적인 장비를 보유한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이 말과 병거를 소유하게 된 것은 솔로몬 시대 이후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같은 장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군을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의 병거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접전하기 전에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거룩한 전쟁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며, 대신 원수와 더불어 싸우시기 때문에 백성들은 적군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4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라는 표현은 원래 법궤에 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광야 유랑기간 중 이스라엘이 접전하였을 때에는 법궤가 진중에까지 동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법궤보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거룩한 전쟁에 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단 한 번의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고만 하시지 아니하고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놀라지 말라”는 여러 마디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대한 공격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데 있어서 다양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원수들의 부당한 공격을 받아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경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싸워 주시겠다는 약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친밀한 면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야영하는 한 진영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한다는 것보다 정주를 위해 가나안에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전쟁이기에 용기를 가지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믿고 공포심을 극복하고 전쟁에 임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 41:10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위태한데 처하지도 아니하며 두려워 할 필요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바로와 애굽 군사 손에서 그들 조상을 인도하심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그들을 위해서 더 맡은 일을 해 주시리라는 약속이 그들에게 있음을 말해 줍니다. 애굽 군에 비하면 가나안 군대는 보잘 것 없는 군대입니다. 이런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어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려두시겠습니까 5절에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요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전쟁 때문에 새로 지은 직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게 하거나 새로 개간한 포도원의 소출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자신의 소유인 땅에서 그를 쫓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을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경작하는 일, 핍을 새로 짓는 일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 유익한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소망으로 격려하는 가운데 집을 새로 지어 놀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을 경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병역면제의 특권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자발적으로 집을 짓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포도원 경작자가 자신들의 수고의 열매를 아직 맛보지 않았거나, 남자들이 신부가 될 약혼자와 신방을 즐기지 않았을 경우에도 똑같은 규정이 따르고 있습니다. 마음이 약하고 게으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른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공공의 안녕 때문에 야기되는 위험을 기피하는 그들의 소심증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는데 있어서 아무도 부적격자가 없이 기꺼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을 새로 지은 사람이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든 비용에 대한 혜택을 어느 정도 받기 전에는 그를 전쟁터로 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며 포도원을 일상적인 것으로 가꾼 사람이 그들의 소출이 어느 정도 즐기기 전에는 놓아주라는 말은 그들의 근면과 열심에 대한 보상을 허용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직 신방을 꾸며보지 못한 자들은 아내에게 되돌려 보내라는 규정은 결혼을 존중하는 뜻에서 베풀어진 관용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소유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에서부터 그들을 떼어 놓지 못하게 한 것은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뜻이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자손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게 되고 따라서 상속을 타인에게 물려 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버리고 마는 처사가 될 것입니다. 이같이 새 집을 짓는 자, 새 포도원을 가꾼 자, 아직 결혼하지 자은 자 등 세 부류의 특혜자 이외에 성전에 임함이 두려워서 마음에 겁나는 자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규정은 적어도 심리적으로 참전하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제거하고 단합하는 공동 유대를 형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신앙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전쟁에서 여호와께 대한 신뢰없이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음으로 이같은 불안의 요소를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9절에 “백성에게 이르기를 필한 후에 군대의 장관들을 세줘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비겁자들을 제한 다음 군대 장관들을 임명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즉 특별히 지도자들과 지휘관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군대가 점호를 하고 정열되기 전에 먼저 혁신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군병들도 사내답게 행동하기 위하여, 그리고 선한 군인들과 같이 고난을 견디기 위하여 특별히 그리스도의 군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