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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외계층에 먼저 ‘강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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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을 잘 알고 실천해야 된다. 그래야 열매가 있고 축복도 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영혼 구원 방법은 불신자들을 복음으로,교회로 강권하여 초청하는 것이다. 이 ‘강권하라’는 말속에 전도의 비밀이 있다. 누구에게든지 얼마든지 복음에로 강권하여 초청할 수 있고 초청에 응하는 자는 구원받게 된다.

‘강권하라’라는 말속에는 영적 원리가 숨어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절대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기가 혼자 스스로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은 아주 쉬운 것 같지만 인간 스스로 못 하는 일이다. 반드시 누군가 먼저 믿은 자가 전도하고 권하고 초청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강권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런데 이 강권하는 데는 중요한 원리가 있다. 아무나 강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강권의 대상과 기도의 대상을 구별해야 된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하라는 뜻이 아니라 전도 대상자의 현재의 영적 상태를 분별해서 강권하라는 것이다.

강권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사람은 세상에 붙들려 바쁜 사람으로서 누가복음 14장 16∼20절에 잘 나와있다. 첫째,밭을 사서 초청에 응하지 못 하겠다는 것은 이 세상 물욕에 붙들린 자이다. 둘째는 소 다섯겨리를 사서 시험해야 되기 때문에 초청에 불응한,지나치게 지식이나 재주의 욕심에 붙들린 자도 강권의 대상이 아니고 기도의 대상이다. 셋째로 육신의 정욕에 붙들려 있는 자도 강권의 대상이 못된다.

장가가고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질서이며 행복의 제도지만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선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복음에도 관심이 없게 된다. 이런 자들은 아무리 귀한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럴 때 강권하면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더 클 수 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다보면 언젠가는 그들도 그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 복음을 받아들일 때가 온다. 그때 강권하면 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 14:21)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집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대신해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저는 자들을 초청하라고 했다. 그들을 강권해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약한 자들 즉,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강권하여 초청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가 있다. 이런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복음이 들리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자에게만 의원이 필요하듯이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전도의 대상자를 찾고 선정할 때 잘나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들의 영혼이 귀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연약하고 부족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도 똑같이 귀중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것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는 자들이다. 전도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가난하고 병들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소외받는 자들을 먼저 강권의 대상으로 전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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