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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시의 흰돌 (계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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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가 성경의 기초인 것처럼 계시록은 성경의 결말로써 귀중합니다. 그러나 칼빈같은 대 성경 학자도 계시록을 난해(難解)의 책이라 하여 모 든 성경을 주석하다가 계시록은 3장까지 해석하고 그 이하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이 난해한 글은 사실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 신 계시록은 모르고 덮어 놓으라고 주신 책이 아니며 자세히 읽고 그 뜻 을 깨달음이 은혜스러운즉 일곱 교회, 일곱 인봉, 일곱 나팔, 일곱 환란 등 순서가 정연하고 예수의 재림과 성도의 승리로 일관된 말씀이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독하면 그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문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하시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참 신자에게 흰돌(白石)을 주마 하시었는데, 이 흰돌(白石)은 우리에게도 주실 것인 바 흰돌(白石)은 무엇이겠습니까 단 2:·35, 주님을 가리켜 “온 세계에 가득히 뜬 큰 돌”이라, 벧전 2:4, “보배로운 산 돌”이라, 행 4:11,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하였은즉, 흰돌(白石)도 깊은 상징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흰돌(白石)의 근본이요, 우리에게 이 흰돌(白石)의 일부분을 주어 우리로 흰돌(白石)을 받아 천국(天國)의 일분자(一分子)의 자격을 이룰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天國)의 일 분자(一分子)인 우리 이므로 각 사람이 받는 흰돌(白石)의 크기가 각자 다르고, 그 기호도 각 각 다릅니다. 베드로가 받은 흰돌(白石)이 다르고 요한이 받은 흰돌(白石)이 다릅니다. 스데반이 할 일과 빌림이 할 일이 다르고, 바울은 바울대로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바나바는 바나바의 체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나 친구의 체험을 빌려서 예수 믿을 수 없고. 다른 신부, 처녀들이 준비한 성령의 기름으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흰돌(白石)에는 바울과 예수만이 아는 새 이름이 기록되었고 나의 흰돌(白石)에는 나와 예수만이 아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 해방의 흰돌(白石) 옛 사람이 노예를 놓아 자유 시민을 삼을 때 노예는 그 이마에 인이 있으므로 해방의 증표로 흰돌을 주었습니다. 상전이 준 흰돌은 당당한 자유 시민권으로 대치됩니다. 이조 임진왜란 때 무과에 공을 세운 유 주양 장군은 원래 그 어머니가 홍성 판서의 종으로 있다가 자유인으로 속여 시집가서 유 주양을 낳은 지 라 유 주양을 공부시켜 무과에 합격하여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유 주양에게 말하기를 “네가 아무리 공을 세워도 종의 자식임이 판명되면 삭탈 관직될 것이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유 주양이 흥 판서를 찾아 가 서 석고 대죄하자 흥 판서는 깜짝 놀라 단상대에 모셔 이유를 물으니 유 주양은 흥 판서 집의 종의 자식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흥 판서는 그 목전 에서 유 주양 어머니의 종의 문서를 불사르고 노예 해방을 선언하였습니다. 유 주양은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임진왜란 때에 전사하여 보국(報國)하였 다 합니다. 이것은 노예 해방 확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중의 400년간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기 위하여 해방의 권능으로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이스라엘 해방의 권능이라면 예수님의 흰돌은 죄인 해방의 권능이십니다. 모세 의 손에 해방의 지팡이가 있었거늘 애굽의 기병이 어찌 이스라엘을 다시 잡으며, 홍해가 어찌 이스라엘의 자유를 막겠읍니까 내 손에 예수님의 흰돌이 있거늘 사탄의 2만만의 마병대가 나를 해하 지 못할 것이요, 사망의 흥해가 생명의 자유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2. 사랑의 약속의 흰돌(白石) 옛 사람이 애약(愛約)의 증표를 흰돌로 썼으니 쌍합한 흰돌에 상대가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이것을 반분하여 한 편은 갑(甲)이 보장하고, 다른 한 편은 을(乙)이 보장하였다가 오래 이별하였다가도 각 반분의 흰돌을 부합하여 보고 서로 벗됨을 기억합니다. 신라 진평왕 때 경주의 율리에 설씨라는 정숙한 여자가 있어 그 노부가 3년간 의무의 병역으로 전쟁에 나가게 되었을 때 가실이란 청년이 동정 하여 대신 군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너무 고마워 3년 후 가실이 와 자기 딸을 혼인키로 약속하여 면경(面鏡)을 반분하여 피차에 믿을 수 있을 약조(約條)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비상시라 3년 복무가 6 년으로 연기되어 가실이는 6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니 설씨의 부친은 3년이 넘어도 제대하여 돌아오지 않으니 전사한 것으로 알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기로 하였던 터라 결혼식 전날 밤 가실이가 찾아와 반경을 보여 부합하니 6년 세월에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도록 변했으나, 애약의 증표로 보증되어 다시 사랑을 이루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신라 사람이 애약의 표로 보경을 나눈 것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약의 표로 흰돌을 나누었나니, 지금의 신랑이 신부에게 지환(指環)을 주어 애약의 표를 삼음과 같습니다. 계시록의 흰돌은 예수께서 신부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애약의 반경이요, 결혼의 지환이요, 영원한 애약의 증표입니다. 신라인은 보경으로 하고, 지금은 궁지 환으로 하되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나누어 애약의 표로 주시니 예수님의 살이요 말씀이요. 곧 애약의 흰돌입니다.

3. 무죄의 흰돌(白石) 흰돌을 주심은 예수를 인하여 사죄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법정에서 재판장이 피고를 심문하여 무죄 판결을 선언할 때 무죄 판결의 증표로 흰돌에다가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주었습니다. 이 흰돌만 가지면 전일(前一) 무슨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던지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이 사람에게는 이 흰돌이 생명과 순결, 무죄한 증거품이 됩니다. 예수님의 몸, 예수님께서 주신 흰돌이 내게 있으니 누가 능히 나를 정 죄하겠읍니까 용을 고소하던 사탄도 나를 고소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애굽인의 장자를 멸하되 양의 피를 문설주에 표한 이스라엘 집은 화를 면하고, 여리고 성 진입시 여리고 성을 다 멸하되 붉은 간으로 표한 라합의 집은 화를 면했던 것처럼 세상 심판 할 때에 흰돌을 준비한 자는 재앙을 면할 것입니다. 17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최후의 심판 때 내게 흰돌이 있는지라 해가 검어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고, 별이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 같이 말린들 내게 무슨 두려움이 있으랴” 했습니다. 롬 8: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계 8,9장 일곱 나팔 소리를 발하여 땅 1/3이 불타고, 명성진(明星辰) 1/3이 부서지고, 악의 네 사자가 나타나서 2만만 마병대를 거느리고, 인명 1/3을 살해하는 무서운 재앙이 닥칠지라도 예수님의 흰돌을 가진 자에게 어찌 두려움이 있으리요. 계 16-17장 환란 날에 예루살렘에서 1,600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피가 말굴레에 이르도록 흐르고, 일곱 접시에 담은 큰 재앙을 땅에 쏟아 붓는 날인들 예수님의 흰돌이 있는 자에게 어찌 무서움이 있으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와 옵니다. 매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지는 이때 예수님의 흰돌이 준비되셨읍니까 이 흰돌 받은 자 만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접시, 일곱 패 환란 속에서도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양식의 횐돌(白石) 옛날 고대인은 금과 화폐를 발견하기 전에 흰돌로써 화폐를 삼아 양식 을 교환하였습니다. 이기는 자 되어 예수님의 흰돌을 가지는 자는 예수님 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먹을 것이요.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생명 양 식을 먹을 것이니 계 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신 말씀이나 계 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라 하신 말씀은 생명의 양식을 말합니다.

5. 능력과 승리의 흰돌 흰돌되시는 주님을 받는 자마다 승리의 생활을 보장받습니다. 옛날 장군은 전쟁에 나가 개선 장군으로 돌아올 때 국왕이 승전의 공훈으로 승리의 명예를 표하기 위하여 흰돌에다 그 국왕의 이름을 새겨 개선 식장에서 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는 마땅히 능력이 있어 모든 것을 이기는 생애를 보내야 할 것 입니다. 옛날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갑주나 창검을 의뢰하지 않고 계곡에 있는 반들반들한 흰돌 다섯 개를 주워다가 다 허비하지 않고 단 한 개만 던지므로 골리앗의 머리를 깨뜨려 승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으니, 이 흰돌 다섯 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 론 이 예수의 흰돌은 해방의 희년(禧年)에 자유 선고하였으니 “사망아 너 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자유의 흰돌, 생명의 흰돌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흰돌은 사랑의 영원한 약속이었나니 저가 나를 잊지 못하고 내가 저를 잊지 못할 사랑의 흰돌입니다. 이 예수님의 흰돌에 무죄의 확실한 판결이 있나니 저가 나를 대신하였거늘 누가 능히 우리에게 죄를 정하겠읍니까 이 예수의 흰돌은 저의 살과 피요, 생명의 만나이며 영생의 양식이로소이다. 또한 이 예수의 흰돌은 승리의 영원한 기호이었나니 대적할 자 없으리라. 그런데 이 흰돌에는 새 이름이 새겨졌는데 받는 사람밖에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새 이름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새 신분과 함께 주시는 이름입니다. 천국민의 자격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시는 것이므로 누구도 그 사이에 개재하지 못하는,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귀중한 명칭입니다. 주님 재림시가 가까와 옵니다. 우리는 주님 영접할 흰돌을 지체말고 속히 준비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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