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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마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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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길에 시장하시어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시었으나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하시니 즉시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누구나 따 먹을 수 있는 과일입니다. 그러므로 길가의 무화과나무는 길가는 이들의 시장기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열매가 없었으므로 저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실물 교수하고 있습니까

1. 인간의 구속 사업은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니라 독생자의 수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사건이 없으면 예수님께서 받은 고난 중에서 배고파하신 내용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 중에서 가장 어려운 배고픈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배고픔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영적 기근 마 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고, 암 8:11에서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기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없어 기근이라”고 했습니다. 즉 선한 일에 기근이요, 영적 기근입니다. (2) 육적 기근 예수님은 인간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육적 의미를 전부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신 떡은 쉽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굶주리심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3) 선의 기근 우리는 선의 기근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하나를 구원하려고 우물 귀퉁이에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이때 빵을 사러갔던 제자들이 와서 그 빵을 예수님께 드리면서 “선생님! 점심을 잡수세요. 빵을 사왔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식은 따로 있느니라. 사람 하나를 구원해 내는 것이 내 양식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빵의 기근자가 되지 말고 전도, 기도, 봉사, 구제, 사랑의 기근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의 기근자, 곧 일꾼이 드물어 가슴 아픈 일입니다.

2. 열매 없는 청청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였습니다 나무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재목을 얻는 데, 어떤 나무는 잎사귀를 얻는 데 사용됩니다. 그중에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얻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책임을 못할 때는 그 값어치가 없어집니다. 세례 요한도 “이제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았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생명인데 열매가 한 알도 없으니 저주를 받음은 당연지사입니다.

3. 열매 없는 인간을 심판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치가 꽃이 아름답거나 목재가 좋은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열매 맺는 데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가치도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가 아무도 안 보이는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즉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인간은 누구나 다 열매를 맺어야 하되 특별히 은혜를 많이 주어서 중요한 위치에 세움 받은 사람에게는 책임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두 달란트를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도 바울다운 열매를, 베드로에게는 베드로다운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도 열매나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무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할 때 저주하셨는데 인간이 열매 없을 때 어찌 그대로 둘 수 있습니까 시간과 정력을 소비할 뿐입니다. 요 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비와 생산의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또 다른 피조물이 인간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에게도 생산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도 두드러진 존재로 땅 위에 세웠습니다. 마 5: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 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유대인이 받을 심판을 보여줍니다 마 24:32-33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라고 하였습니다. 나라마다 상징이 되는 꽃이 있습니다. 미국은 감람나무, 영국은 장미, 볼란서는 백합, 일본은 벚꽃, 한국은 무궁화, 이스라엘은 무화과, 포도로 통합니다. 무화과를 저주했다함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사명은 종교입니다. 성서는 곧 이스라엘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를 죽이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 죽이는 죄악을 범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그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다 못할 때 저주가 임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보고 제자들이 주님에게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이런 일도 행하거니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움도 할 것이요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주님의 교훈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를 주님은 저주하십니다. 이것은 열매 없는 인간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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