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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숨 걸고 (왕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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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주권자 히스기야가 얼마 동안 병으로 고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에 보니 죽을병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병이 들었지만, 약이나 의원이나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침상에 누워있었고, 고통과 번민의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이런 절박한 침상 앞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선지가 나타나 중대한 발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이 죽고 살지 못하리니 집을 처치하고 만조 백관을 불러 정사를 맡기고 왕으로서의 생과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라”는 내용의 말이었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의 전달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죽을 준비를 하기 위해 가족을 불러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을 것이며 유언이나 또는 왕으로서 다음 왕위를 계승할 자를 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바에야 목숨을 걸고 여호와께 매달려 회개하고 기도하자고 결심하고 히스기야왕은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신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하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침상에 누워서 일어날 수 없는 환자가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애절한 모습, 눈물을 흘리면서 피땀을 흘리면서 자기의 부족과 허물과 과오를 침상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읍 가운데까지 이르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하였습니다.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 왕에게 너는 다시 예언하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도다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3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네 생명을 15년이나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나라의 손에서 구원하리로다 보호해 주리라”하는 큰 축복의 언약을 히스기야 왕은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걸고 한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을 주셨는데 그 축복의 내용은 첫째로 육신의 축복, 둘째로 장수의 축복, 세째로는 미래에 대한 보장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거룩한 날을 허락하셔서 시시 때때로 주의 전에 나아가서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의 구원을 얻어서 기쁨과 감격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사망 직전에 목숨을 건 기도로 말미암아 건강을 되찾아 성전에 올라갈 수 있는 축복과 15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 수 있는 생명 연장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에스더서 4장에 보면 수산궁 아하수에게 왕궁에 있던 왕후 에스더는 유대 민족이 대학살의 위기에 놓이게 되자 목숨을 걸고 기도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민족의 수난을 이겨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생명의 호흡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의 호흡이 없는 기독교인은 결코 성장할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는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보다도 기도가, 투쟁보다도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선 그 어느 것도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선교보다 앞서야 할 것은 기도이며, 계획 세우는 것보다도 기도가 먼저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전도하시기에 앞서서 기도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목숨을 건 주님의 기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승리와 영광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2. 목숨을 걸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마 24:21에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환란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생활은 정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길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애를 쓰는듯 합니다. 실로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에 무관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눅 18:8에 “‥‥‥‥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예수께서 탄식한 것을 보면 말세에는 신앙생활의 변절자가 많이 생길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배반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문제가 있어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한 앞 날에 대하여 미지의 길을 걷는 인생 나그네들이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길이 있습니다. 소망의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육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습니까 “죄사함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어떻게 받습니까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히스기야 왕같이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형식의 기도와 입으로만의 주여를 탈피하고 목숨을 건 기도, 찬송과 회개로 만나는 기도, 눈물 쏟는 회개와 마음에서 솟구쳐 나오는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히스기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같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10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네 나이를 15년이나 더할 것이며 너와 네 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리라”는 축복의 음성이 환란을 앞에 놓고 살얼음판을 딛고 사는 것 같은 불안한 시대에 히스기야같은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이 축복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3. 목숨을 걸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눅 10:27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독교의 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체험없는 신앙은 몹시도 위험한 신앙입니다. 그리고로 말세에 주시기로 약속한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여 썩을 눈으로도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존 웨슬레가 “올더 스케일”에서 성령의 불세레를 체험을 했듯이 여러분에게 성령의 은사의 체험이 오게 될 때 순교의 반열에도 설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세에 주시는 크신 은사를 받기 위해 히스기야 왕같이 목숨을 걸고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하시며 3대 축복을 주신 것 같이 많은 성도들도 이 3대 축복의 보장을 받아야겠습니다. 이 약속의 보장을 받기 전에는 내것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며, 자식들도 그의 생명들도 결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며, 재산 역시 내 것이라고 안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 7:12에 “사람이 만일 회개치 않으면 저가 우리를 향하여 칼을 가시며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고 말씀하셨고, 계 2:23에 “음란한 죄를 회개치 않으면 너희 자녀를 죽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나니 내가 너를 낫게 할 것이며 네 날을 15년이나 연장할 것이며 너와 네 백성을 앗수르 나라에서 보호하리라”고 축복하신 이 3대 축복이 이 말씀을 듣고, 보며, 마음 문을 열고 회개하는 여러분에게도 임하여 저주받은 육체가 건강하게 되고, 내일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나약한 생명이 주님 오실 때까지 장수하며, 우리 조국과 가정이 노아의 식구같이 히스기야의 다스림을 받던 성읍과도 같이 보장과 보호하심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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