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개미에게 배우라 (잠 06:6-11)

첨부 1


하나님께서는 큰 것만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곤충을 통해서도 교훈을 하십니다. 우리는 큰 데서도, 작은 데서도, 높은 데서도, 낮은 데서도, 넓은 데서도, 좁은 데서도, 강한 데서도, 약한 데서도, 오랜 데서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데서도, 들리는 데서도, 안들리는 데서도 귀한 진리를 배우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키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나는 다됐다. 다 배웠다 한다면 그 때부터 성장이 정지되고 마는 것입니다. 망원경에 교훈이 있는 것처럼, 현미경에도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생물을 들어 배우라는 교훈이 더러 있는데 주님께서 마6:26에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했으며, 마 10:16에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개미에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입니까

1. 개미에게서 가서 지혜를 얻으라(6절) 근년에 개미의 생태를 매우 주의 깊게 조사해 본 결과 매우 놀라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 개미 중에는 건축가들이 있어 개미집을 굴로 만들고, 집수리만 하는 개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양식이 되는 진딧물을 굴속에 넣어 보호하고 양식을 모으는 개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잡초를 제거하고 양식되는 땅을 잘 골라 양식 저장하는 농사꾼 개미만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새끼만 기르는 여왕개미, 파수꾼개미, 일꾼개미, 또 먹을 것이 어디 있고 일군들이 큰 양식을 운반하는데 고생하기 때문에 동원 일꾼이 얼마 필요하다고 통지해 주는 통신병 개미가 있습니다. 저 작은 개미를 볼 때 그 작은 머리에서 어찌 저런 큰 지혜가 있을까 놀랄 정도입니다. 이런 작은 개미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7-8절에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했습니다. 개미는 간역자나 두령이 없어도 부지런히 일한다는 사실입니다. 개미는 장래일을 위해 미리 준비하여 게으르지 아니합니다. 개미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여름에 미리 양식을 준비합니다. 그리하여 겨울을 편안히 지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일에 있어서 선견지명으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곤경과 노년을 위해 준비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영혼을 위해서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신령한 양식을 준비하여 우리의 영혼이 궁핍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생명이 살았을 때 사망을 준비하고 시간 속에서 영혼을 예비하는 우리는 누구나 사망의 집행유예 받은 상태에 사는 자들이니 우리는 늘 영생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정신차릴 줄 모르는 것은 혼수상태에 빠진 게으름입니다. 이런 자는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입니다. 오늘만 알고 내세를 위하여 준비할 줄 모르는 자들은 모두 다 잠자는 자요 게으른 자들입니다. 이들은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 내일을 위해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3. 부지런함을 배워야 하겠습니다.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겉보기에 잠자는 것 같은 고요한 숲까지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는 수액을 빨아들이고, 잎은 햇빛을 탄소동화작용을 하며, 나무의 각 부분에 골고루 양분을 제공하기 위하여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미도 자기의 일을 쉬지 않고 합니다. 우리가 개미에게 배울 수 있는 지혜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부지런함은 더욱 두드러진 것입니다.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끈질기게 일합니다. 한 마리의 개미가 큰 먹이를 물어오면 많은 개미들은 허우적거리며 끝까지 개미집 앞까지 운반합니다. 그리하여 끈기 있게 집안으로 끌어들여 보관하는 것입니다. (2) 협동해서 일합니다. 작은 개미지만 협동해서 큰일을 합니다. 개미는 모든 일을 협동해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가령 우리 교회는 300명의 성도가 있습니다만 목사 한 사람, 전도사 두분이 다 돌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구역에서 모두 구역장과 권찰님들이 잘 돌보시며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서로 이해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목회 일을 감당할 수 있고 이처럼 부흥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더욱 부지런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각자 받은 은사대로 일해야 하겠습니다.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모든 일에 힘을 모아서 협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지혜인 것입니다.

4. 게으른 자여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1) 9절에 “게으른 자여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심령 속에 깊이 뿌리박은 타성 때문에 잠자는 자 같아서 각성도, 결심도,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늘 새로워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죄악으로 마비된 자에게는 책망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는 책망을 받음으로 경성할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은 이런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책망하실 때에는 할 수 없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슥 4:7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없는 이교도들은 이런 소망이 없습니다. 공자도 말하기를 “게으른 자는 소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2) 10-11절에 “좀더 자자, 좀더 졸다,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좀더 눕자는 말은 조금만 더 연기하자는 말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렇게 잠자는 것으로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낭비하기 때문에 그에게 오는 궁핍을 막을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것이 군사같이 온다는 말은 게으른 결과로 오는 가난한 군사 같아 불가항력적으로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 3:19에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었고, 살후 3:10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워 가나함과 멸망을 막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