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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인의 철학 (고전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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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부득불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사명을 받은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전도언 대한 절대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 이와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교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선민이란 특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방민족에게 전도하여 나눌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회교에는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코란경을 들고 하는 무력적인 전도에 힘씁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이었습니다(마 28:19).

1. 전도하려면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동물세계는 철학이 없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어떤 것의 근본 원리 혹은 이념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로서 어떤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참을성입니다. 전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인내로서 성취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사도 바울처럼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전도 철학을 배워야 할 줄 압니다. 고전 9:12에서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욕하면 욕을 먹으리라 때리면 맞으리라 죽이면 죽으리라. 이것이 바울의 전도 철학입니다.

2. 전도하려면 적응성이 있어야 합니다 고전 9:19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주를 위해 살기로 나선 자입니다. 그래서 빌 1:20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헌신함으로써 전도의 수확을 올리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지불할 각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20-22절에서 “유대인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유한 사랑으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3.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으로 여기라 (1) 우리가 전도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때입니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를 당해서 여러 날을 지내게 될 때에 사마리아 성에 큰 기근이 생겼습니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자식을 삶아 먹는 비참한 비정의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 성 밖에는 네 명의 문둥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우리가 어떻게 할까” 의논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겠고 여기 앉아 있어도 굶어 죽을 것이니 우리 원수지만 아람 군대의 장막에 가보자 죽이면 죽겠고 혹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면 살 수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담대히 그들의 장막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뜻 밖에도 아람군은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장막까지 그냥 버리고 달아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네 명의 문둥이들의 발소리가 큰 애굽 군대의 발굴레 소리로 그들에게 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둥이들은 장막 속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금과 은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또 다른 장막을 뒤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 중 하나가 하는 말이 “여기서 우리만 이럴 것이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우리 성 안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될 것이 아니냐. 우리만 이러다가 지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 위에 벌을 주실 것이라”하여 아람군대가 다 철수했다는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가서 전하여 사마리아 성 안 사람들이 그 굶주림에서 다 살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기쁜 소식을 알면서도 죄악으로 죽어가는 동료에게 전하지 않고 모두 멸망하게 한다면 그것이 사랑이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의무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3)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역대 전도자들은 은혜와 과거 모든 신앙의 용사들의 희생과 순교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까 나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또 선조들에게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복을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는 복음의 촛불을 받았습니다. 또 이것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4)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 생명이 위험합니다. 주님이 하신 달란트 비유인 마 25장의 말씀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고이 땅 속에 묻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그 한 달란트조차 마지막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에 가보면 큰 바다 둘이 있습니다. 이 바다는 헤르몬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받습니다. 이 바다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아름답습니다. 고기떼들이 뛰놉니다. 그 다음에는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갑니다. 사해는 물을 받기만 하지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은 썩고 죽은 바다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줄 모르면 내 은혜가 썩어서 죽은 바다같이 되고 맙니다. (5) 한국의 무르익은 밭을 볼 때 더욱 이 느낌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도처에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추수할 곡식이 들에 무르익었습니다. 추수때 낮잠을 자겠습니까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화가 우리에게 미칠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우리 영혼만 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과 국가도 구원하는 길입니다. 무엇이 가장 급한 일입니까 무엇이 가장 큰 일입니까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까 무엇이 가장 슬기로운 일입니까 무엇이 가장 소망스러운 일입니까 자문 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 속에 전도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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