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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이 금지된 모세 (신 32: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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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여호수아가 등장한 것은 여호수아를 모세와 함께 연결시킴으로써 그의 지휘권을 인정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모세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은 허사가 아니며 생명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44-45절에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즉 모세는 자기와 대등한 권위를 주고자 했던 여호수아와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율법을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도록 모세는 그들이 위협과 책망에 유의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다 전하였습니다. 47절에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살고 죽는 일에 관계가 있음을 명시합니다. 레 18:5에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들에게 잘 이해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모세가 원하던 것은 이스라엘 스스로 이 율법을 주의깊게 지키라는 것이요, 또 후손들에게 충실히 전달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저들이 준수하도록 하고 스스로 선량한 자들은 그 자녀들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선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고 그 후손들이 그들 시대에 그 종교를 계속 보유하며 그런 내용의 상속이 단절되지 않기를 소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종교를 자기 사업으로 삼고 그 안에서 오래 견디어 내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가 소원했던 것입니다. 생명에 관한 일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키면 성공할 것이요 무시하면 영원히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 무한한 유익이 있는데 가나안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는 것입니다. 48-52절은 모세가 느보산에 오름인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에 대해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그가 이전에는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기를 간구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흡족하여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마지막 축복을 선언하고 그 자리에서 영민한 것입니다. 본 신명기 32장에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들어 가는 것은 모세의 죄 때문으로 되었지만, 신 4:21의 해석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이스라엘 지도자로서의 죽음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아비림 산은 사해 동편 모압 땅에서 사해 북쪽을 내려다보는 산맥이며 그 중 높은 봉우리가 느보산입니다. 신명기에는 비스가산으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느보산 위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죽음은 민 20:22-29, 민 33:37-39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민 20:1-13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모세가 지은 한 번의 죄가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모세가 바위를 두 번 치므로 화를 냈다고 보든가, 아니면 “내가 바위에서 물을 내랴”하면서 자만심을 드러냈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시 106:32-33을 토대로 하여 모세가 함부로 말을 했거나, 아니면 정탐군의 보고를 들은 다음 곧 바로 가나안 입성을 위해 쳐들어가지 않은 것 등을 구실로 상상해 보는 이도 있습니다. 아무튼 본문에서 하나님 여호와는 모세가 여호와의 권위를 실추시킨 것을 큰 잘못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세는 산 위 멀리서나마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땅에 발을 들여 놓지는 못할 망정 눈으로 볼 수는 있었습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지은 죄를 상기시키는데 이 범죄로 인하여 그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감에 있어서 제외 당하게 된것입니다. 이는 그가 범죄하였음으로 하나님의 견책을 좀 더 참을성 있게 견딜 수 있도록 하며, 그 지각없는 말에 대한 슬픔을 회상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선한 자라도 그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는 결점을 뉘우치면서 죽는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시는 일은 바로 이런 태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형 아론의 죽음을 (50절) 상기시킴으로써 모세가 자신의 죽음을 더 친근히 여기고 무서워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이제 모세가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볼 때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화해되심을 나타내는 표징이었으며 비록 그의 죄로 인하여 그가 이 땅 위의 가나안에는 못들어 가게 막힘을 당하였을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더 좋은 복지에 들어갈 자격은 박탈하지 않으셨음을 그에게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모세는 신앙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전망과 사망 건너편에 있는 영생의 소망을 잘 구축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면 언제나 편안하게 안도감을 가지고 죽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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