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원한 기념비 (수 04:15-24)

첨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후 기념하는 돌을 세운 것은 은혜의 땅에 들어간 것을 감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영구히 기념하고 이를 후손에게 대대로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영원한 기념비는 백성이 모두 요단강을 건넌 증표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신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430년간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식도 가나안 땅도 잊어버린 채 애굽에서 소수 민족의 서글픈 생활을 하다가 후에는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과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훈련시킨 후에 모세를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습니다. 그 때 장정만 60만이라 했으니 300만이나 되는 거대한 인구였습니다. 이제 40년이 지나고 모세는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비스가 산정에서 죽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갔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요단을 마른 땅으로 만드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하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4장 1절에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감격을 영영히 기념하기 위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택하여 열 두 명으로 하여금 한 돌씩을 요단강 가운데서 취하여 어깨에 메어와 기념비를 쌓게 하였던 것입니다. 2. 영원한 기념비는 하나님 주권적 능력의 행사를 표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단을 건널 때는 모맥을 두는 3-4월로써 요단 물이 강언덕까지 넘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말씀대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치고 바닥이 말라서 그들은 마른 땅으로 향하여 요단을 건넜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역사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르게 하시고 다시 범람케 하시는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 당신의 주권적 능력을 행사하시어 택한 자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을 통하여 주권적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멘 언약의 궤는 오늘의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었듯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떠메고 지키면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성도들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가나안 천국까지 인도하여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3. 기념비는 전 이스라엘의 지파의 단합을 표징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사람이 총동원되어 요단을 건너는데 있어서 여호수아의 명령을 절대 믿고 순종하며 마음이 하나로 단합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우기 매 지파에서 미리 예비한 열 두 명을 택하고 그들로 하여금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두 개를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에 두게 한 후에 열 두 돌을 기념으로 세운 것은 열 두 지파 모두 요단강을 건너는 작업에 총동원되어 일심으로 단합하였음을 밝혀 줍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회상해 봅시다. 우리 교회도 출애굽의 소용돌이, 홍해, 고란의 반란, 므리바의 고통, 불뱀의 기습, 르비딤의 아우성, 모압과 암몬의 방해 등등을 거쳐서 마침내 요단을 건너 오늘 그 감격의 열 두 돌을 세우는 복된 주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열 두 지파는 무엇이겠습니까? 스무 개의 지역일 수도 있습니다. 각 전도회나 자치기관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재직회 각 부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요단을 건너는 기적의 역사에는 전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합심 협력하여 일심동체가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기도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데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4. 두 가지 기념비가 주는 교훈 (1) 수중에 세운 열 두 돌 기념비 요단강 수중에 세운 기념비는 조상들이 통과한 영원길의 표시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에서의 불신앙 생활을 장사 지낸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가 다 요단을 건넌 것이 아닌 것과 같이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정과 육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 지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새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 속한 불신앙의 모든 생활을 버려야 됩니다. 요단강에 깊이 묻어버리고 새 마음, 새 심령으로 요단강 저편으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2) 길갈에 세운 열 두 돌 기념비 육지에 세운 열 두 돌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는 돌입니다. 이 열 두 돌은 먼저 요단강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돌 한 개씩 각 지파가 어깨에 메고 자기들의 유숙할 곳에 가져다가 세웠습니다. 열 두 돌을 가져다가 길갈에 세운 것처럼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수중에 세운 돌은 다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게 하는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길갈에 세운 돌은 그렇지만은 많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하심을 알게 하며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는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돌은 모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돌이 아니요, 여호수아가 어느 제사장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기념비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 기적을 베푸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모세의 공은 율법이요 제사장의 공은 교권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능하신 일에 대해서 어떤 인간이 그 영광을 도용해서도 안되고 인간의 공적을 기념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체를 찾지 못하게 하셨고, 엘리야의 무덤을 없게 만들었습니다. 길갈에 세워진 열 두 돌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 파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일을 기념하고 영원토록 그를 기념하는데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옛 사람을 요단에 장사 지내고 예수님의 부활의 새 생명을 체험한 우리는 우리를 통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일을 기념하고 그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여야 합니다. 길갈에 세운 돌은 얼마 전만해도 수중에 있던 매끄러운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발이 그곳에 서게 됨으로 육지에 올라와서 길갈의 기념비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을 운명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매끄러운 죄의 옷은 벗겨지고 의인의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역사적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배우고 교훈 받아서 우리가 은혜받은 우리 교회에 서서 하나님의 능하신 일을 기념하고 그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