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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냐민 지파 기업들 (수 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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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말째 아들이요, 라헬의 소생입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출산하고 사망하였습니다. 열 한 지파는 모두 외지에서 출생하였으나 베냐민만은 가나안 본토생이니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출생할 신자의 모형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요셉 지파 곁에 자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습니다. 그것은 베냐민이 요셉의 유일한 친 형제이며, 또 작은 요셉이기(시 68:27) 때문에 큰 요셉의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좋은 보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유다 열에 자리했는데 그것은 이 지파가 후에 유다와 연합해서 다윗의 보좌와 예루살렘 성전을 고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냐민은 요셉과 유다와의 중간에 있는 기업을 차지했습니다. 베냐민은 이스라엘 중에 가장 적은 지파이지만 이스라엘 건국 왕 사울이 이 지파에서 난고로 베냐민 지파인 사도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인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남으로는 유다 지파가 있으니만큼 조상 야곱의 축복을 상기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 49:10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또 북으로 요셉 지파라, 창 49:22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이렇게 상기했습니다. 창 49:27에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 라”고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정확한 경계는 남으로 유다, 북으로 요셉 지파를 인접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요단강과 서쪽으로 단 지파에 접경하고 있습니다. 이 지파 기업의 어떤 부분도 바다의 끝을 가까이 못하고 있는데 반하여, 서쪽 경계는 “남쪽으로 바다의 끝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14절). 이것은 바다와는 비록 먼거리에 있지만, 이 기업인 대해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즉 동의 경계는 요단강의 표시가 분명하나 북, 서, 남의 경계는 들로 산으로 골짜기로 금이 그어졌는데 북으로부터 요단강에 여리고 북쪽으로 해서 서편 산지를 넘어 벧아웬 황무지라 했으니 역사서에도 전쟁의 기록이 많이 있는 곳(삼상 13:5, 14:24)입니다. 전쟁으로 황폐한 곳인듯한 요새로 해서 서쪽으로 벧엘, 남쪽으로 법궤를 모셨던 곳이 기록되었고, 또 샘 근원이 있는 넵도아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해서 글릴롯으로도 이름한 길갈, 이 길갈이 할례를 받은 곳, 즉 죄를 청산하는 곳입니다. 거기서 보한의 돌로 해서 벧 호글라을 지나 요단의 남단이라 하였습니다. 그 나타난 지명들은 다 기념될 곳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타난 지명 벧아웬(공허한 집), 벧엘(하나님의 집), 벧호 론(굴집), 벧 호글라(까치의 집) 등 “벧” (집)으로 되어진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굴이 있는 곳이어서 굴집, 전쟁으로 황폐하여 벧아웬이라고 지은 듯하고, 하나님을 만나서 벧엘이라고 지은 그 지명은 더욱 주의할만 합니다. 베냐민 자신들이 있는 성읍들은 동쪽으로 열 두 성읍, 서쪽으로 열 네 성읍, 또 열 여섯 성읍이 있는데 그 중에 여리고가 그들의 기업에 들어 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진주에 제일 첫 번째 있는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하면 신앙으로 구원받은 죄인인 기생 라합이 기억되는 곳입니다. 여호와가 말씀하신대로 그 견고한 성을 나팔 불면서 돌아서 함락시킨 곳입니다. 그 리고 거기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만 아간같은 범죄자가 생겨서 큰 실패를 당한 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리고의 역사는 찬란하고 또 처참한 것입니다. 여리고는 비록 그 성읍이 파괴되어 성문과 성벽이 재건되어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첫째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전혀 쓸모 없는 곳이 아니었기에 시골 마을로 건설되고 주민이 거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삼상 11:15)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곳인 길갈도 이 지파 내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후에 굉장히 더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호 9:15에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도다” 했으며, 벧엘도 이 지파 내에 위치했으므로 유명한 곳입니다. 베냐민이 다윗의 집안에 결합되어 있었지만 벧엘은 요셉 집의 소유였던 것처럼 보입니다(삿 1:23-25). 거기서 여로보암은 자기 송아지들 중의 하나를 태웠습니다. 베냐민 지파 내에 기브온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솔로몬의 치세 초기에 제단이 있었습니다(대하 1:3). 기브아도 마찬가지로 치욕적인 곳이며, 레위 지파 사람의 첩이 모욕을 당한 곳입니다. 미스바와 그 가까이에 사무엘의 에벤에셀과 또한 예레미야의 성읍 아나돗이 역시 이 지파 내에 있었고 예루살렘의 북쪽 부분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가 얻은 성읍은 유다 지파에 비하여 8분의 1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의 소재가 이 베냐민 지파의 영 내에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물질 분배는 극소했지만 영적 분배에서는 큰 축복이라 하겠습니다. 이 베냐민 지파의 영 내에 있는 성읍과 촌락의 명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img src='6_7.jpg'> 벧엘이 이 지파의 기업으로 그려진 것이 베냐민 지파의 자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벧엘이 이 지파의 기업으로 그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게으른 탓에 에브라임 자손이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삿 1:22-26). 이 역사적인 지방을 못 가진 것은 베냐민 지방의 수치인 것입니다. 후에 남북으로 갈릴 때에도 베냐민 지파는 남국에 속했지만, 벧엘은 북극에 속하여 여로보암의 범죄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큰 불행이었습니다(왕상 12:28-33). 내게 맡겨진 기업은 깨끗이 정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벧엘을 잃어버려서 북극의 죄악의 근거지가 되게 된 것은 베냐민 지파의 책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이 지파의 소유로 예루살렘이 들어 있는 것도 큰 자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건축된 곳이요 다윗 왕도의 수도였습니다. 이런 저명한 역사적 지방을 야곱의 막내 아들 베냐민의 지파가 기업으로 맡은 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내게 허락해 주신 기업을 잘 보관하며, 또 잘 정리하고, 잘 이용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이 예루살렘이 되게 하고, 내 생각이 벧엘이 되게 잘 보관하며, 잘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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