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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동 다윗의 꿈 (삼상 1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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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고대 국가 중에서 이스라엘처럼 그 왕국 건설이 늦어진 나라는 없습니다. 대개 어느 나라든지 백성과 토지만 있다면 성을 쌓고 장사나 연장자를 왕으로 삼고 왕국을 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백성이 수백만명으로 불어나고 국토를 열 두지역으로 분할해 살면서도 국민 전체를 다스릴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그 나라의 소유주가 왕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신대로 백성을 다스린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나라를 다스린 하나님의 수종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수종자들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나라를 다스릴 때는 그 나라를 당해 낼 민족이 없었습니다. 가나안 칠 족속도 고스란히 땅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력 앞에 어떤 왕, 어떤 민족도 대항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종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할 때 이스라엘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짓밟혔던 민족들이 잡초처럼 머리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잃었던 땅을 되찾고 조상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블레셋, 아말렉, 미디안, 암몬 족들이 사방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왕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요,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국가라는 것을 백성들은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조정자로 사무엘이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은 사사로써 마지막 사사인 동시에 선지자로선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정치가였습니다.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마침내 이스라엘 왕국 건설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사무엘이 세우려는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달랐습니다. 왕이 국민을 대표하고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점에서는 세상 나라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왕이 다스리는 법은 왕이 낸 것도 아니요, 백성이 만든 것도 아닌 하나님이 주신 신법에 의해 다스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왕을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왕은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기로 내정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1. 첫 사울 왕은 실패작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대 왕으로 등극한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백성의 손에 의해서 선출되었고 하나님의 법대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서약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사울은 세상 나라의 왕으로 변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울을 버렸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하나님은 후회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아집으로 사울이 하나님의 목적을 지연시키고 방해하고 훼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원은 쉽게 고갈되지 않습니다. 사울이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나님 밑에서 다스릴 왕을 둔다는 생각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사무엘은 큰 비통에 잠겼습니다. 모처럼 세워놓은 나라가 개국 초에 왕이 건국 이념을 저버렸으니 이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짐승처럼 날뛰는 사울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누구를 왕으로 세울 것인지, 블레셋의 침략을 누가 막을 것인가? 등을 생각하면서 노선지자 사무엘은 고향 라마에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2.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려왔습니다. “ 사무엘아 네가 언제까지 슬퍼만하고 있겠느냐? 사울은 이미 내가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했다. 너는 기름을 활에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가거라 내가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왕을 세우리라 ” 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 사울이 이 일을 알면 나를 죽이려 하겠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일어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평강을 위해 베들레헴성에 왔음을 선포하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의 음식을 나눌 때 이새의 아들들을 청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았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장남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마음 속으로 이가 참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을 자로다 생각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기를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둘째 아들 아비나답을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도 내가 택하지 않았다. 세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아들이 다 지나갔으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 네 아들이 이 뿐이냐고 물었습니다. 말째 아들이 있는데 들에서 양떼를 지키나이다 ”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 그를 불러오라 그가 여기 오기 전에는 우리가 식사자리에 앉을 수 없다 ” 고 하여 사환이 급히 가서 말째 아들을 데려왔는데 옷은 남루하나 혈색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담긴 뿔을 취하여 모든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향기로운 기름이 머리에 적시고 볼을 적시고 옷깃과 수염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의 무엇을 보고 기름을 부었습니까? 얼굴입니까? 눈이나 용모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했습니다. 사무엘은 전에 용모와 신장을 보고 사람을 믿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 사무엘이 본 것은 용모와 체격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본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신대로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다윗의 중심이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경력도 보지 않으시고, 순서도 보지 않으시고, 학벌도 보지 않으시고 오직 한 가지 그 마음의 중심을 보고 그 마음의 중심이 마음에 들자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다윗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중심은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모릅니다. 사람의 중심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3. 다윗은 하나님 외에는 야심이 없는 자입니다 다윗의 태도는 부드러운 겸손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겸손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기 전까지 자기의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나타납니다. 기름 부음받은 후에도 무엇이든지 주제넘는 태도는 전연 없습니다. 유능한 사람이라도 이웃 사람들에게 혐오거리가 되게 만드는 자만심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짧은 막간이 지난 후도 그는 아무런 허영심도 보이지 않고, 남에게 잘난체 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양 지키는 일을 계속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 맡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이새의 종들과 그의 양떼의 삶은 다윗의 향기 때문에 더 좋아졌으며 그 양떼와 종들이 다같이 그가 부름을 받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샘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던 시절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도 아마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 외에는 아무런 야심없이 그저 그의 주어진 목양직에 충실하고 만족할 뿐이었습니다. 4.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고 그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매체를 통해서 볼 때 사람들이 실패하여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이 사울이 맡은 것과 같은 지위처럼 굉장한 가능성을 가진 지위를 맡게 될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실패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남김없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의 인간성 가운데는 얼마나 많은 편벽됨과 불신과 아집이 깔려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법조계에서나, 문단에서나, 상업에서나, 성직에서나 요직을 맡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슬퍼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직을 맡았을 때 허영과 자만과 이기심과 어리석음과 인생을 가증스럽게 만드는 온갖 성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찾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월을 통해서 신앙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우리 가운데서 발견하십니다. 세속과 신성하다고 불리우는 일에서,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누가 하나님의 손에 합당할 것이며, 누가 거룩한 지도에 감사히 따르고 하늘의 계시에 순종할 것입니까? “ 따르겠습니다 ” 고 말하는 사람의 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길이기에, 평탄하지 않아도 그 길이 훨씬 더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영안에서 그 길이 “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 하고 천사들의 음악보다 더 즐겁다고 말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5. 성령에 크게 감동받은 다윗 삼상 16:13-14에 서로 대조적인 기사를 저을 수 있습니다. 13절에는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다윗에게 부으며 다윗이 이 날 이 후로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더라 하였고, 14절에는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거역하는 사울에게서는 떠나고 그 중심이 하나님께 합한 다윗에게서는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성령은 아무데나 임하지 않으십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서는 떠납니다. 다윗같이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에게는 충만히 임하십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후, 즉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두 가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첫째는 그 재능과 인격이 크게 진보되었고, 둘째는 그의 나아갈 길의 진로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은 기적과 초자연적 역사만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자라게 하고 완전하게 합니다. 성령은 힘을 발전시키고 능력을 확대시킵니다. 다윗은 수금타는 자로 궁중에 발탁되었습니다. 수금을 타며 시를 읊어 번뇌하는 사울을 위로했습니다. 궁중에 출입하는 것을 기회로 해서 다윗의 소질과 재능은 만능의 영웅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는 예술가로, 정치가로, 웅변가로, 시인으로, 선지자로, 장군으로 세상이 모르는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이 사회 어느 모퉁이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됩니다.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만 살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만 받으면 진로가 열린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만능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양치는 목동 다윗을 들어 왕 삼으신 하나님의 은총이 오늘 우리들에게 임하시사 성령 충만의 축복으로 크게 역사하실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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