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시 50:15)

첨부 1


인생이 있는 곳에는 환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이 있는 곳에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생노병사의 인생사고”란 말이 있습니다. 환란은 누구에게나 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또 특별히 환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환란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러기에 병은 눈썹에서 부터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란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환란 날에 경계할 점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불신앙의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1) 도피적 태도 큰 슬픔, 실패, 상심, 이런 일을 당할 때 신앙이 부족한 사람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술집입니다. 밤새도록 술 마셔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술을 마신다고 슬픔이 가시거나 잊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흥분됩니다. 혈압이 높은 자는 그만 큰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슬픔을 잊기 위해 극장도 가보고 여행도 해보고 심지어 마약을 취해 보기도 하며, 견디지 못할 때 자살까지 하기도 합니다. 이런 도피적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2) 금욕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헬라철학으로는 스토익파 철학입니다. 인내합니다. 참습니다. 헬라에 에픽테투스라는 스토익파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기의 철학 논리를반대하는 자들이 악당들을 데리고 와서 이 에픽테투스라는 사람이 스토익파 철학의 주제인 인내를 얼마나 실현하는가 알아보기 위하여 이 사람을 붙잡고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히 아프도록 비틀었지만 “아프다” 소리 한마디를 안 합니다. 계속 힘껏 비트니까 하는 말이 “당신들이 그렇게 비틀면 내 다리가 부러질 것 같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악당들이 이 사람이 왜 견딘다 하고는 바짝 더 비트니까 그만 다리가 뚝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프다는 말은 안하고 “내가 그렇게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소”하는 말 한마디를 남겼다 합니다. 장한 일은 장한 일인데 세상에 그렇게 견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19세기말 영국에 월리암 헨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단 수술했고 복부수술도 수차례 한 몸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천재적인 시인이었고 그의 생활철학은 스토익파였습니다. 인간의 의지로 만사를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그런 내용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유명한 시도 썼습니다. 그렇게 의지가 굳은 사람의 말로가 무엇일까? 자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분자 비슷한 시인이라면 김소월입니다. 그는 천재적 시인이었으나 하나님을 찾지 아니했고 그리스도인을 비웃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생의 마지막은 자살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 그만 낙심하여 하나님은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고 물어봅니다. 만일 계신다면 왜 나를 버리시는가? 하며 하나님을 불신 반항하는 미련한 자가 있습니다. 환란 날에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그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시험에서 떨어진 자들입니다. 그는 절대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란 날에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는 자는 그에게 갑절로 재기하는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2. 환란 날에 우리는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환란은 예수 안 믿는 사람만 당하는 젓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환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환란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 사정을 고하여 이 환란의 밤을 바로 맞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리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너희가 길을 건널 때에도 내가 침몰치 못하게 하며 너희가 불을 건널 때에도 타지 못하게 보호하며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그냥 두지 아니하며 너희와 항상 함께 하며 너희에게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환란을 당할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신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환란과 시험을 당할 때 무엇보다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기도하는 일입니다. 불평, 원망, 절망, 대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본문 시 50:15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배가고프면 먹을 것이 생각나듯 모기에게 물리면 얼른 손이 올라가 듯 우리 생활은 고통과 시련이 오고 어려운 환란을 만나게 되면 먼저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나야 됩니다. 약 5:13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 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어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성도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과 상의하여 무릎 끓고 기도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렘 29:12-13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했습니다. 렘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기도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보통 때에도 그러하거늘 더욱이 환란 날에 기도하지 자는 것은 얼마나 큰 죄인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환란 날에 기도할 때는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팔이 짧아서 능치 못한 것이 아니요 귀가 멀어서 너희 기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죄가 하나님과 너희의 사이를 막아서 너희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치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 온 백성들을 다 모아놓고 어린양으로 번제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고 온 백성이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삼키는 블레셋 군대에 큰 폭풍우가 일어나서 큰 혼란을 일으켜 이때에 이스라엘 군대가 일어나 쫓으니 이스라엘의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계셔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편에 서 주십니다. 때로는 기적적으로 구해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분 환란 날에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우리는 오늘날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이 변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이되 도록 해 야겠습니다. 말레이 반도나 싱가폴에는 고무나무가 많습니다. 그런데 고무나무는 하나도 성한 나무가 없습니다. 다 칼로 째어 놨습니다. 칼로 쩐 그 자리에서 흐르는 고무풀을 그릇에 담아서 생고무 원료로 쓰여져 여러 가지 제품 물품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상하고 터지고 찢어지고 회개하는 멍든 심령이 기도하여 하나님을 찾는 그 심령을 만나서 참된 봉사와 참된 사랑과 참된 희생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인간을 봉사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역사상에 많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환란 날에 상한 심령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며, 환란 중에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환란을 도피하지 않으며 환란 속에서도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심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어 주십니다. 환란 뒤에 따르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그러면 너를 건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환란이 변하여 큰 축복이 임하는 우리의 생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3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