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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토기장이와 질그릇 (렘 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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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유대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군주국가입니다. 왕이 나 라를 다스리고 왕이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에는 왕이 아닌 사람으로서 왕 못지 않게 때로는 왕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 람이 있습니다. 그는 곧 선지자입니다. 왕은 나라가 망하면 그의 통치가 끝 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나라가 망한 뒤에도 여전히 남아 백성을 지도하 고 다스립니다. 아무 직책도 없고 벼슬도 없습니다. 선지자는 평민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왕 이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왕을 세웁 니다(사무엘이 사울을). 선지자는 왕을 지도하고 충고합니다(엘리야가 아 합을, 엘리사가 여호사밧을, 나단이 다윗을, 이사야가 히스기야 등). 선지 자는 나라가 망하고 왕이 없을 때 왕을 대신합니다(예레미야, 에스겔, 다 니엘, 학개, 스가랴). 선지자가 이런 권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이 스라엘 나라는 왕국이 기 전에 신정국이요,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낸 신정국의 특사이기 때문입니 다. 선지자의 역활은 어느 때 보다도 나라가 망국의 위기에 놓였을 때 그 사명이 가장 중대했습니다. 유대 왕국의 멸망을 지켜 본 선지자는 예레미 야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빈번하게 교체되는 유대 말기의 다섯 왕(요아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아긴, 시드기야)를 보좌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 잡아 보려고 애썼으나 허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나 라는 망하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전운이 휩쓸고 간 예 루살렘 거리에서 예레미야는 미친 사람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메세지를 외 치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예레미야에게 들려왔습니다. "예레미야야! 너 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너에게 알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 갔습니다. 토기장이 의 집에는 녹노가 있었습니다. 토기장이가 한 발로 녹노의 패달을 밟으며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기장이가 만들던 그릇이 깨 뜨려졌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깨어진 질그릇을 짓이겨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할줄 아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에 있는 것 같이 너희는 내 손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이스라엘은 토기장이의 손에 쥐여진 진흙이란 말 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인생은 진흙이라고 비유한 것은 성경의 여 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욥 10:9에 "주께서 내 몸을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도다" 라고 했고, 사 64:8에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 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했고, 롬9:20에 "이 사 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 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있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권이 없겠느 냐?" 라고 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으므로 토기장이는 자기 마음에 원하는대 로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듭니다. 토기장이의 손에서 때로는 그릇이 잘못 만들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 때 토기장이는 잘못된 그릇을 부수어 자기 소견에 맞는대로 새 그릇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릇이 그릇답지 못할 때, 그릇이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을 때 토기장이는 부수어 새로 만듭니다. 우리는 부서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떻게 하던지 있는 그대로 깨뜨리 지 않고 수정하고 교정하여 그냥 쓸 수 있는 그릇이 되려고 애씁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때우고 깁고 기워 별모양없이 되었습니다. 원형도 없고 형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부수어 새로 짓는 것이 낳지 않을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을 수 없는 진흙일 바에야 토기장이의 손에 맡기 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요. 뜻대로 하십시요. 소견 대로 만들어 주십시요. 만들어 주시는대로 살겠나이다 라고 해야 할 것입 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에게 내어 맡기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만들 어 보겠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아무 것도 되지 못합니다.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소견에 합당한대로 새로 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새로 지음받은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 합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으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새로 지은 것에서는 전에 모양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전 에 것을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생긴 나에게서 몇 가지만 고쳐 크리스챤이 되겠다고 생각해서는 오해입니다. 본래 가진 성품에 크리스챤의 덕을 더하므로 좋은 신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착각입니다. 전에 것은 완전히 포기하고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 지음받는 새 피조물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중생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았다고 자부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완전히 부서져서 새로 지음받았 습니까? 그냥 땜질만 했습니까? 죽고 다시 살아났습니까? 본질은 그대로 인데 예수 믿는다는 칠을 한 사람인가 다시 자성하시기 바람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 합니다. 깨끗한 듯하나 얼마지나면 칠이 벗겨져 속이 들 어나고 맙니다. 시기, 분노, 혈기, 간사, 교만, 잔인, 옛 사람 그대로 입니 다.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수단과 재치만 늘어서 의식과 가식과 교활하 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져 새로 지음받아야 합니다. 18장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토기장이가 파상한 질그릇을 다시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19장에서 예 레미야는 18장과는 대조되는 또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됩니다. 19장 에서 하나님은 다시 예레미야를 부릅니다. "예레미야 너는 토기장이로부 터 오지병을 사라 그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는 예루살렘 남 쪽 성 밖에 있는 쓰레기장입니다. 짐승과 사람의 시체를 버리는 곳입니다. 거기는 또한 우상의 골짜기이기도 합니다. 오물과 우상의 재물을 태우는 연기가 주야로 솟아 오르는 곳이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그래서 힌놈의 아 들 골짜기는 지옥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에게 오지병을 사들고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들 을 앞세우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명 하신대로 토기장이에게서 산 오지병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 입에 주시는 말씀을 백성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온전하게 할 수 없음과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라"고 했습니다. 토기장이의 손에서 깨뜨려 다시 만들 수 있는 그릇이 있고, 다시 만들 수 없는 그릇이 있습니다. 다시 만들 수 있는 그릇은 불 속에 굽지 않은 진흙으로된 질그릇이요, 다시 만들 수 없는 그릇은 불에 구워내온 오지 그릇입니다. 오지 그릇은 깨어지면 그만입니다. 다시 녹이거나 붙일 수 없습니다. 깨어지는 날이 마지막 날입니다. 토기장이라고 해서 언제든지 그릇을 부수어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에 구어진 다음에는 다시 만들 수 없습니다. 진흙으로 있을 때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틀이 잡히기 전에 깨뜨려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굳어지면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모래알 하나라도 박힌채로 두어야 합니다. 바로 잡으려 하다가 오지 그릇 전체에 금이 가게 됩니다. 굳어진 다음에는 다시 손을 못댑니다. 고칠 때가 있고 바로 잡을 때가 있습니다. 굳어진 후에는 바로 잡지 못합니다. 언제 깨어져야 합니까? 질그릇으로 있을 때 깨어져 새 그릇으로 지음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온 뜻을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소견에 맞도록 우리를 새로 지어 주실 것입니다.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지금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다가는 마지막 심판의 철장에 영원히 부서지고 맙니다. 지금 고치고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불 속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라도 속히 지금 내 자신을 새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고통을 달게 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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