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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이 붙잡힘 (눅 03: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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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에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너무나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사물에 대해 말하는 정의의 설교자였기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집아 가두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요한이 체포된 이유를 말하기를 “백성에 대한 절대적인 요한의 영향력이 헤롯의 세력을 능가하고,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그가 충고하는 말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훨씬 더 자세하게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헤롯왕은 헤로디아와 결혼했는데 세례 요한은 그것 때문에 그를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이 결혼과 연루되어 있는 여러 가지 관계는 극히 복잡하였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은 여러번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헤롯왕은 헤롯대왕과 말다케라고 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그 동생 빌립은 분봉왕 빌립과는 다르며, 평민으로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빌립이었습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파스의 아버지인 헤롯 대왕과 미리암이라는 첩의 사이에서 태어난 소생 아리스토 불프스의 딸이었습니다. 즉 빌립은 생질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헤로디아는 이 삼촌격인 평민 빌립을 버리고 큰 삼촌인 헤롯 안티파스와 재결혼했던 것입니다. 즉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와의 관계는 조카인 동시에 제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미모를 지닌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처럼 자유 결혼이 허락된다면 모르겠지만 당시 유대인의 안목으로 볼 때, 아니 인륜으로 볼 때 이는 극히 반역적인 것이고, 또한 유대 율법에 대해서도 당연히 위배되는 것이어서 사실상 어떠한 표준에 비추어 본다고 할지라도 그 결혼은 합당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동방의 전제 군주를 비난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요한은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세례 요한은 잡혀서 사해 연안에 있는 마케루스 성의 지하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을 잡아 지하감옥에 감금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행위가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투옥된 채 목베임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의인이 투옥되어 죄인처럼 불의한 자의 목베임을 당하였다는 것은 천추에 잊지 못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헤롯이 생일을 당하여 연회를 베풀어 즐기는 중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니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춘화상에 날개치며 날으는 나비와 같이 아름다와서 헤롯은 그만 맹세로써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매가 구하는 것을 요구대로 준 것입니다. 즉 살로매는 자기의 친딸이 아니라 손녀가 되는 것입니다(헤로디아가 조카). 살로매가 그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가서 고하니 어머니는 살로매에게 큰 접시를 주면서 세례 요한의 목을 접시에 닿아오도록 요구하매 헤롯왕은 의인으로서, 온 백성이 기다리던 선지자로 추앙하는 세례 요한을 죽인다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아서 주저하긴 했지만 약속을 어길 수는 없고, 헤로디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의인의 목을 춤 값으로 접시에 얹어 살로매를 통해 헤로디아에게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헤롯의 생일은 생일이 아니라 살인날이요, 기쁜 날이 아니라 비애의 날이었습니다. 이런 생일 연회석이 없었던들 세례 요한은 비참히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함께 산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투옥되거나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질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승리자가 됩니다. 세례 요한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몇 가지 신령한 교훈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세례 요한의 충성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많은 신령한 교훈을 유대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충의를 가졌습니다. 그는 헤롯왕의 불의한 악을 책하였습니다. 그의 신령한 사명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작은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는 작은 일에 충성하기를 큰 일과 같이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 세상 나라의 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헌신할 수는 없으나 간접적으로 종교적, 윤리적 방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과 필요한 충고를 서슴지 않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현대 교역자들은 세례 요한과 같이 권세잡은 자들 앞에 가서라도 필요한 충언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탈선해서는 안될 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성직을 버리고 정치계에 직접 헌신하는 것은 여러 가지 피해가 있습니다. 교역자는 교회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정치계에 직접 나서서 직접 헌신하는 중에 혹시 실수라도 있으면 전 교회에 누명이 돌아갑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한 교역자라면 세상 정치에 헌신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중의 헌신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교역자들이 정치에 헌신하는 것이 자기의 본분이라고 생각되는 때에는 먼저 교회 앞에서 사직을 선언하고, 그들의 직장에서도 자기와 교역과는 관계가 없음을 명백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교역자가 강단에서나 기타 공식 석상에서 정치 문제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하는 일입니다. 정계에 대해서 시비를 논하다가 의혹이 일어나는 일도 있을 것이고, 또는 모략, 함정, 중상을 가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도 있을 터이니 덕이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에게는 세례 요한처럼 직접 충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2. 헤롯의 불충 헤롯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였다고 마 6:20에 기록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은 진리에 대하여 도무지 모른다고는 아니하면서도 거기에 대하여 충의를 지키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헤롯은 일시적 쾌락인 춤값으로 야만적인 맹세인 여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면서 하나님과의 맹약인 율법은 초개와 같이 내어버렸습니다. 선지자의 충언이 괴로워서 선지자를 가둔 것과 마침내는 죽이기까지 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만큼 가볍게 여긴 행동입니다. 그는 선지자의 머리보다 향락의 춤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분명코 에서의 자손으로서 에서와 마찬가지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직분을 판 것과 같은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망령된 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충한 자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충성스런 종이 되어야 하겠고, 헤롯처럼 불충한마음을 성령의 불로 제거하여야 할 것이며,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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