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충성의 네 가지 원칙 (눅 19:11-27)

첨부 1


오늘 본문은 은 열 므나의 비유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각각 하나썩 분배하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명령을 내리고서는 떠났습니다. 그 얼마 후 예정대로 그는 왕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왕은 은을 맡겨둔 종들을 불러 장사의 실적에 따라 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장사를 잘한 종부터 차례로 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많이 남겼든지 적게 남겼든지간에 그들의 일한 것보다는 훨씬 더 넘치는 상급으로 갚아 주었는데 그 중에 한 종은 은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당신이 너무나 엄한 사람이어서 그대로 수건에 쌓아 놓았다가 가지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에 왕은 그 사람의 본전까지 빼앗아서 많이 가진 다른 종에게 주라고 명했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말한 “어느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왕위”는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의 지위를 가르치심이요, “먼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은”은 복음이며, “종”은 우리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여 주시는 교훈은

(1)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복음과 은혜를 위탁받은 종이라는 것과

(2) 우리는 은혜를 가지고 부지런히 장사해야 할 사람이며

(3)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 주시려 우리의 일한 것보다 훨씬 큰 상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중심은 충성이며, 충성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큰 일에만 잘하고, 작은 일에는 소홀하기 쉽습니다. 작은 일에 진실치 못한 사람은 큰 일에 진실하기가 어렵습니다. 보디발의 집 종살이에 충성하였고, 감옥살이에도 진실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나라에도 충성하였습니다. 베들레헴 목자 다윗이 양떼를 진실히 먹이더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진실한 왕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성의 궤변 신학자들을 택하지 아니하시고 갈릴리 어부 중에서 사도를 택하신 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충성된 일꾼을 찾으십니다. 그중에도 작은 일에 충성된 일꾼을 찾으십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은 작은 일에 충성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넘치는 상급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남이 보지 않는데서 잘 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먼 나라에 갔으니 종이 하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잘된 결과를 지니고 있으려면 남이 보지 아니할 때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감독할 때 잘하다가 보지 아니할 때 잘하지 아니하는 것은 열매도 없고 위선일 뿐입니다. 사람의 귀에 들리게 하는 기도보다는 은밀한 기도가 참 기도요, 거리에서 나팔부는 구제보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가 참구제인 것처럼 사람이 보이지 아니한 데서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요즘 병자 한 사람을 고치면 천 사람을 고친 양 나팔을 불어 금품을 거두는 안타까운 자도 없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한다 하고 가난한 교인의 돈을 긁어모아 가지고 광산을 사고, 토지를 사고, 여관을 사는 자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에는 독일과의 국경에 마지노 선을 구축하였습니다. 이 마지노 선은 프랑스 장군 마지노의 이름을 딴 것으로 마지노가 국경 부근에 방어선을 구축키 위해 그 말 많은 프랑스 국회에 가서 열변을 호소하여 딸은 국방예산을 통과시켜 마지노 성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 건물은 4층의 지하로 만들어 제아무리 히틀러의 군사가 침입해도 삼백만을 희생하지 않고는 결코 그 마지노 선을 넘지 못하게끔 설계되었습니다. 이 마지노 선을 믿고 프랑스인들은 베개를 높이고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군대가 마지노 선을 폭격한지 일주일만에 철벽을 자랑하던 마지노 성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왜입니까? 프랑스의 청부업자들이 이익을 탐하여 건축을 속여 먹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치 못한 그들이 속여서 한 공사가 자손의 생명을 팔았고 나라를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도산 안 창호 선생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미국인 집에서 삯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이 보건, 아니 보건간에 주인이 시킨 이상의 일을 정성껏 잘하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이 그 집을 떠날 때 주인이 말하기를 “당신을 보니 코리안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당신 다음 사람으로 한국인을 소개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일에 충성했던 안 창호선생은 결국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3. 상을 생각지 않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은 상을 생각지 않고 충성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침에 들여보낸 일꾼이나 저녁에 들여보낸 일꾼이나 나중에는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일찍 들어간 일꾼은 삯을 위한 일꾼이요, 오후에 들어간 일꾼은 삯을 생각치 않은 일꾼입니다. 그래서 앞섰던 자는 뒤지고, 뒤섰던 일꾼은 결코 삯을 생각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뜰에서 40일간 장인의 양떼를 쳤습니다. 일생의 1/3을, 어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제일 귀한 장년기를 하루같이 남의 종살이를 하되 삯도 없이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종살이로서의 충성은 민족 지도자로서의 충성을 가능케 하였던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충성된 종이라”고 했듯이 그는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4. 끝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종으로서 일생을 바친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눅 2장에 나오는 여 예언자 안나는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예루살렘 성에서 끝까지 충성하였습니다. 우리의 충성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충성하되 처음만 화려하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다 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경북 영천 사람 정 몽주는 고려와 함께 충절을 지켰으니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라는 시처럼 개성의 선죽교에 피를 흘렸습니다. 경남 창영 사람인 성 삼문은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곤곤 할제 독야 청청 하리라”라는 시처럼 노량진 한강 백사장에서 형제 4대가 능지처참으로 몸이 찢어지되 일편단심으로 충성 하였습니다. 경남 해철 사람 주 기철 목사는 평양 감옥에서 칠년간 옥살이 하다가 목숨을 바칠 때 그 부인 오씨에게,

(1) 나의 팔십 노모를 당신에게 부탁하오

(2) 내 육체는 평양에 묻어주오

(3)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도 한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겠소

(4) 숭늉 한 그릇이 먹고싶소라는 이상의 네 가지 말씀을 남기고 1944년 4월 22일에 순교했습니다. 경남 철원 사람 손 양원 목사는 여순 반란사건 때 두 아들을 잃고 자기는 6·25동란 때 나병환자 애양원 교회를 버리지 못하여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원에게 붙잡혀 돌로 입을 치기까지 전도하다가 피를 뿌려 순교하였습니다. 정 몽주, 성 삼문, 주 기철, 손 양원이 이 땅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수천 년 동안정절, 충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