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4)

첨부 1


본문 34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위해서 오히려 하나님께 변호하시는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이나 유대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행위를 비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도 그는 “주여 이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면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빌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습니다.

1. 사죄함을 받는 길 죄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어디서 무슨 형태로든지 남아 있는 법입니다. 아담이 지은 죄는 전 인류에게 비싼 값을 물게 하였고 아간이 지은 죄는 그 죄값이 전 이스라엘에게 미쳤고, 아합이 지은 죄는 자신과 국가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죄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나라 모두를 지옥으로 전부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죄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께서 사하여 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다 같이 깊은 죄라도 주님의 은혜를 통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었습니다. 중국 한나라에 “순두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국법에 걸려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제영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효녀인지라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죽기로 결심하고 국왕에게 아버지 대신 저를 죽여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국왕은 이 제영이의 효심에 감동이 되어 순두개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제영이가 이처럼 국왕과 아버지 사이에서 지성으로 중개하였듯이 주님께서는 하늘의 지성소에 계셔서 우리의 사죄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죄의 짐을 지고서 고민하며 수고하는 자여 주께 나아와 사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원수를 위하여 축복하여 주십니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이 말씀 가운데는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시는 십자가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십자가 밑의 군중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아우성치던 악당들입니다.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고 침을 뱉던 무리들입니다. 못을 박고 창으로 옆구리를 치는 무자비한 악당들이요 살기등등한 원수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평소에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그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사 55:8에 보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느니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마음으로써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과수원을 경영하는데 그 과수원의 과일을 자주 도난당하여 어느날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날이 매우 어두워지자 한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그림자는 주위를 살피더니 과일을 따서 가지고 온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몰래 지켜보다가 살금살금 다가가서 홧김에 도끼로 그 네 손가락을 잘라버렸습니다. 옛날에는 도적은 죽지만 않으면 마음대로 때려도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 도둑은 엉겁결에 도망쳤습니다. 그 후에 도둑은 너무 분해 자기 손가락을 자른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품고 그 과수원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근처 교회에서 심령부흥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들리는 찬송 소리에 감화를 받아 그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수원 주인을 해치려는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어느 동네에서 식당을 경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과수원 주인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이 식당에 들렀습니다. 과수원 주인이 식사를 청해 먹으려는 순간 식당 주인의 손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과수원 주인은 식당주인이 자기가 손을 자른 사람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는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식당 주인은 과수원 주인을 용서해 주고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해친 사람을 용서함은 바로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3. 남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은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 “형제의 죄를 몇 번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곱 번에 일흔 번씩 용서해 주라고 햇습니다. 이 말씀은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래스카에 선교사로 근무하는 그렌델 목사는 일찌기 의학을 공부하던 의학도로써 전문 인턴 과정을 수료키 위해 알래스카에 있는 어느 무의촌에 들어가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알래스카의 무의촌에서 봉사하는 중에 어느 가정에 들어가서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의 부인은 깊은 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그렇게 된 것은 그 남편이 술을 많이 먹고 그 부인을 이유없이 매질하니 이렇게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남편에게 일언반구 반항없이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감화를 받아 그는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신학을 마치고 무지한 알래스카에 와서 복음 전도에 그 평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용서는 다른 영혼까지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무죄함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의 용서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기도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며 머리 숙이고 진정한 참회의 생활로 주님을 따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