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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차 비방하지 말라 (약 0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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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자로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그 영향이 참으로 큽니다. 그 이유는 남을 비방하는 것이 그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한 영혼을 실족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형제를 비방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엄히 경계합니다. 즉 사람은 남을 비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사람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율법과 입법자의 재판권을 멸시하고 그가 그 권리를 스스로 취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비방함이 왜 율법을 비방함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칼빈은 말하기를 “비방자가 비방할 때에 율법대로 남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악심과 편견의 폭발로 남을 훼손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의 악한 판단으로서 율법을 대신하는 셈이 되므로 자기의 판단을 율법 이상으로 두는 것이 되고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비방함은 율법이 금하는 것인데(레 19:16-18) 누구든지 그것을 어기고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율법까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참람한 행동인 것입니다.

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습니다. 생사의 권능은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것이로되 누구든지 율법 위에 서서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의 전반적인 위엄을 침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로마 교황의 타락성에 빗대어서 로마 교황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을 두었고 하나님의 존엄보다 자신의 위엄을 더 위에 두었으며 성서보다 교황의 말을 더 상위에 둠으로써 재판을 집행하였으니 적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고까지 공격했습니다. 성경에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절대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판단을 할 자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나님 위치에 올라가는 것은 더욱 참람 된 일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구원할 수 있고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 32:29에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라고 하였으며, 삼상 2:6에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내가 어찌 하나님 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왕하 5:7)고 했고 마 10:28에서는 “몸만을 죽일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에게 생사의 권한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재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만 허용되어 있는 권리로써 이 권리를 빼앗는 것은 참람 된 인간이 되고 하나님 앞에 반역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비방하는 죄가 우리에게 그렇게 중대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그러나 성서는 이것을 모든 죄 가운데서 최악의 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귀한 율법의 위반이며 하나님의 권리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할 결정적인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아무도 남을 판단할 만큼 선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 눈에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셨습니다. 우리는 남의 결점을 찾아내서 고치려 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의 생활을 고치기에도 많은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잘못에 신경을 쓰고 남의 잘못은 하나님께 맡겨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몬테인이 그의 수필 중에서 옛날 페르샤의 재판관석의 유래를 설명했습니다. 한 법관이 있었는데 그는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내렸습니다. 페르샤왕 캄비세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그 법관을 사형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시체에서 가죽을 벗겨서 사람 가죽으로 재판석을 씌웠습니다. 재판석을 이와 같이 얼굴, 머리, 팔, 다리, 몸의 형상을 지닌 사람 가죽으로 입힘으로써 누구든지 재판소에서 편견을 가지고 재판을 못하게 하였고 또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무서운 경고를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온전히 공정히 재판할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3.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1) 비판은 입으로 짓기 쉬운 죄이기 때문에 주의하며 특히 이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비판을 하기는 쉬워도 그 형벌은 큰 것임을 알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리암은 광야 40년의 생활에서 모세를 비방하다(민 12장) 그 몸에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비방의 큰 형벌을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3)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죄도 용서함 받을 수 없으니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오판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 타인의 오판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자신을 돌아보아 흠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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