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의 소망 (벧전 01:1-5)

첨부 1


본서의 저자 베드로에 관한 기사는 사 복음서를 위시하여 많은 곳에 기록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별명은 시몬이며, 그의 태생은(요 1:44) 벳새다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요나로 베드로는 바요나라고 불리워 졌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요 1:40-42) 아우 안드레의 인도로 주님을 만나 뵙고 갈릴리 바다에서 택함을 입어 (눅 5:) 열 두 제자의 반열에 들었으며 그는 제자 중 가장 중요한 수제자로서 주님의 사역을 추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받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천성은 소박하였고 정직하였으며 그 성정은 직행적이어서 언제나 선두에서 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정은 동시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실수를 유도했습니다. 그는 제자 중에 주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보았으며 그 이후에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로마의 황제 네로의 핍박 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함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큰 역할을 한 사도입니다.

1. 문안 인사

(1) 하나님의 영광된 나그네 1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서 사도란 말은 “보냄을 받은 자” 혹은 “대리자”라는 뜻으로 열두 사도들을 그리스도께서 택하셨습니다(요 20:21). 사도는 주님과 같이 한 자 중에서 주님께서 친히 임명하시고 저들로 전도를 위해 특별한 권능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범위는 차차 넓어져서 바울과 바나바(행 14:), 야고보의 형제 (고전 15:, 갈 1:) 등도 이 칭호를 받았습니다. 사도직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늘 수위를 차지하고 또한 주님의 직계 제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있는 흩어진 나그네,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말은 베드로 전후서의 수신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도-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고향이며 갑바도기아의 일부분으로서 북편은 흑해, 남쪽은 알매니아, 동편은 클키스, 서편은 할리스 강으로 경계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본도, 남방, 아시아 쪽에 있는 것으로 바울의 전도근거지입니다. 갑바도기아-고대 왕국 이름으로 타우르스 산맥 북쪽에 흑해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신약 성서의 아시아는 오늘 우리 아시아 주가 아니요, 당시 아시아는 에베소를 중심한 터키나라 지역을 가리킵니다. 비두니아-흑해와 본도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란 천국을 본향으로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생활 안정을 얻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일반 신자들을 총칭합니다.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어디서나 그들의 눈은 예루살렘을 향해있었습니다. 외국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의 회당은 언제나 예루살렘을 향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림은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적 최대 충성은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있어서 바라볼 곳은 어디입니까?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2) 선택받은 자의 3대 사실 2절 말씀에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미리 아심(예지)에 의하여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 성도는 성령으로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선택되었습니다. 피 뿌린다는 의식은 구약에 세 가지 배후의 사상이 있습니다. 가) 문둥병이 나으면 그에게 산 새의 피를 뿌렸습니다(레 14:1-7). 나) 피 뿌림은 아론과 제사장의 성별하는 의식의 일부분이었습니다(출 29:20-22, 레 8:30). 다) 피 뿌림의 근본 유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관계에서 유래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서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낭독되었을 때 백성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서약을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복종 관계의 표로서 모세는 희생의 피 절반은 취하여 제단에 붓고 나머지 절반을 취하여 백성에게 뿌렸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 3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맡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소망의 근거 소망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무조건 믿는 자에게 용서해 주시는 그 긍휼로 우리는 다시 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시며 하늘의 율법을 주시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으나(엡 2:3) 하나님의 긍휼로(롬 8:16)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진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을 하나님의 후사입니다(룸 8:17). 결국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긍휼 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망의 성질 우리의 소망을 베드로는 산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산 소망입니다. 농부는 추수할 소망으로 씨를 뿌리고 학생은 장래의 꿈을 실현키 위해서 공부하고 그리스도인은 영생의 소망으로 예수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명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으리라는 소망으로 병을 고칩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암 환자가 올 때에는 넉넉히 걸어왔으나 암 진단을 받고 난 다음에는 힘이 떨어져 걸어가지 못하고 차를 타고 가고 어떤 환자는 몸이 너무 아파 암이 아닌가 신경써서 걸어오지 못한 환자가 암이 아닌 신경성 질환이란 정확한 진단을 받고는 그 즉시로 걸어서 잘 가고 식사도 잘하더니 다음날부터는 병이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소망이요, 밝은 소망이요, 능동적인 소망입니다. 즐거운 소망입니다. 그리스도는 마음속에서 언제나 신선하고 맑게 솟아나와 환난을 만난 자의 목을 해갈시켜 주며 환난으로 괴로워하는 자들을 격리시켜 주며 마음에 평화와 기쁨과 안위를 줍니다. 그리스도의 소망은 죽는 법이 없으며, 희미하여 지는 법이 없고 가물거리는 심지처럼 위태로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세상과 함께 씩어지려니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이요, 영원한 소망입니다. 하늘에 간직한 산 소망이라 하였으니 마귀가 도적질할 수도 없는 하늘의 소망입니다.

(3) 이 소망의 대상물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 세상의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의 유업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의 성질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1)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은 썩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썩어지지만 하늘나라의 기업은 썩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유업은 영원한 것입니다. 2)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사탄의 역사가 없습니다. 땅은 사람의 죄악으로 손상되고 더러워졌습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의 음악, 문학, 미술, 춤, 마음, 사상, 문명 모두 더럽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완전히 깨끗합니다. 계 21:18에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3) 쇠하지 아니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기업은 시들거나 마르지 아니합니다. 사랑도 젊음도 인심도 다 세월이 지나감에 시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좀 오래 있으면 싫증이 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영광의 하나님을 영원히 쳐다보니 영원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만 있습니다.

(4) 천국을 향한 소망 중에 준비하라.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한 구원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낙심 없이 열심히 주를 따르나 소망이 없는 자는 자포 자기하여 타락합니다. 의인들은 언제나 환란을 통과합니다. 환란의 구름이 우리 머리 위를 감돌고 환란의 무서운 비가 쏟아져도 우리 영혼의 닻인 소망을 주님에게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랑을 맞을 처녀와 같이 단장하고 먼저 가신 성도들처럼 인내로 준비하여 소망 중에 즐거워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