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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도록 충성하라 (계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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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죽도 특 충성하라”고 부탁하시었습니다. 충성이란 원어 「피스토스」의 뜻은 진 실, 신실, 미쁘다, 충실, 충신 등 모든 말과 같게 쓰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눅 12:42, “진실한 청지기 ”란 말은 충성된 청지기란 말이되 엡 6:21, “진실한 일꾼”이란 말에 진실, 신실이란 말은 다 충성과 같은 뜻이며, 히 2:17, “충성된 제사장”이란 충성은 진실, 신실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요일 1:9, “하나님은 미쁘시다”란 말은 다 충성과 같은 말로 쓰입니다. 살전 5:24, 살후 3:3, 오전 1:9, “하나님도 신실하시고”라 하였으니 충성입니다. 히 2:17, 계 1:6, “주님은 충성되시니.” 고전 4:2, 그의 종들에게도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충성하였나니, 창 39장에 “요셉도 충성하였고”, 삼상 22장에 다윗도 충성하였으며, 민 12장에 “모세도 충성하였으며”, 6장에 아브라함도 신실하였으며, 단 6장에 다니엘도 충성하였으며, 골 1:7에 에바브라도 충성된 종이었으며, 골 4장에 오네시모, 벧전 5장에 설루아노, 계 2:3에 안디바 등, 모든 에수님의 종들은 충성된 일꾼들이 었습니다. 이와 같이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충성된 주님의 영이 서머나 교회에 나 타나시어서 환란 중의 이들에게 죽도록 충성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하시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사람은 누구나 죽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가장 나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피 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고야 마는 죽음 을 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잠 14:32, “외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사람은 바로 사는 것 이, 또 바로 죽는 것이 생명을 영구히 보존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삶 도 중요하지만 죽음도 중요합니다. 죽음은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가치있게 하는 비결이니,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바로 죽음 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1. 진리 파수직에 죽도록 충성할 것입니다 딤후 4:2, “매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할찌어다” 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는 환란의 때가 복음의 열매를 많이 거두는 시기 입니다. 밀란의 암브로시오는 불법과 타협하지 아니함에 있어서 강하였읍 니다. 그는 데오도스 황제(329-395)가 교회당에 들어와 평신도석을 취하지 않고 교직석에 서게 될 때 금하여 제재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 황제가 무죄한 백성의 피를 흘리며 교회에 올 때에 암브로시오는 그를 책벌하였습니다. 데오도스는 그 책벌을 받고 8개월간 궁중에 있으며 울었습니다. 데오도스는 암브로시오틀 향하여 말하기를 “나는 나에게 감히 진리를 말해 주는 사람 한명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 사람은 과연 감독될 자격 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밀란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그 황제는 주후 396년에 암브로시오 감독에게 안겨서 별세하였습니다. 순교자 주 기철 목사가 의성 옥에 수감되었을 때 형사가 때리려 하니 그 는 그 형사의 영혼을 생각하며 맡하기를 “당신이 나를 때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때린 이유를 말할 수 있는가? 그 심판에서 무엇이라고 대합하겠는가? ” 하였습니다. 그때에 그 형사는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가고 말았다 합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진리에 대하여 우리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도록 충성할 것이 아니고 죽도록 충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살도 록 충성하면 그 충성은 하나님 앞에 내 생이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긴 우상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데 반역 행위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니 우리의 생명을 날마다 바쳐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죽도록 충성한다는 말 속에 고의로 우 리 생명을 죽는 지경에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살기 도 하고 주님의 은혜로 죽기도 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함은 충성 하되 모든 죽는 여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니 하나님께 맡기기를 염려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죽음의 위협 아래 서도 하나님께 충성할 따름입니다.

2. 어떤 충성된 일꾼이 될 것입니까? 집이 가난할 때 어진 아내를 요구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신하를 요구한다는 말과 같이 교회 비상시를 당할 때 참으로 일꾼을 요구합니다. 충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맡은 일에 믿음과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든지 마음을 두지 않고, 힘을 다하지 아니하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농사도 그렇고 상업, 학업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하물며 교회 일이야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주님만을 위해서 온 정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전략과 무기보다는 죽음을 아끼지 않을 애국 청년들의 정 신력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 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시고 종의 모양을 취하여 세상에 강림 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의 천직을 다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 님 나라의 달란트 맡은 청지기입니다. 두 달란트 맡은 청지기처럼 맡은 바 일을 충성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또한 충성은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을 공경하고 또 그를 사랑함에 대한 절대성을 의미한 말씀인 줄 압니다. 마 22:37-39,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을 네 자신보다 더 사랑하라고 하시었습니다. 행 4:19,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였습니다.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 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습니다. 과연 그들의 신앙은 반석같고 담대했으며 충성스런 종들이었습니다.

3. 충성의 시금석(試金石) 충성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성품 중 도덕적인 기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가 간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충성되어야 합니다. 충성을 시험해 보는데는 세 가지 시금석이 있습니다.

(1) 양의 시금석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이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 했습니다. 요셉은 작은 일에 충성하더니 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었습니다. 작은 일, 주일의 예배시간 엄수, 기도하는 일은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충성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 시간의 시금석입니다. 얼마나 오래 충성하였느냐가 문제입니다. 속담에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나 충성할 수 있으나 그 열심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얼마동안 지나봐야 그 사람의 충성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은 몇 달이 아닌 몇 해, 몇 십년을 지나봐야 충성된 줄 알 수 있습니다.

(3) 충성에는 환경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녹음방초(綠陰芳草) 따뜻한 봄 여름에 송죽의 절개를 알 수 없듯이 어려운 환란을 격어봐야 충성을 알 수 있습니다.

6.25 낙동강 전투에서 모 군인은 총을 들고 보초에 근무할 때 모든 사람은 다 피난을 가고 군인들은 모두 철수해 버렸는데, 사령부로부터 보초 교대시까지 보초 근무 명령을 받았습니다. 사령부는 철수해도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모든 피난민, 군인이 다 빠져 나갔으나 그 군인은 명령만 기다렸습니다. 인민군이 눈앞에 와도 도망가지 아니하고 근무지 이탈 없이 싸우다가 그냥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에 묵시를 보낼 때, 서머나 교회는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인들은 죽도륵 충성을 하였습니다. 충성은 끝까지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역사깊은 제단을 향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맡씀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네 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충성된 목사가 필요합니다. 충성된 장로, 충성된 권사, 충성된 집사, 충성된 권찰, 반사, 성가 대원 하나 하나가, 개인 전체가 충성되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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