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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오디게아 교회 (계 0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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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란 뜻은 「백성을 기쁘게 한다」, 「백성의 심판」, 『백성의 정의」라는 뜻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남쪽으로 40리 쫌에 있는 지역이며 교통의 도시로 소 아시아의 관문이라고 불리우는 도시입니다. 당시 상업으로 제일 부유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사람은 지나칠 만큼 타협성이 많고, 라오디게아는 이렇다할 특징적인 정신사관은 없으나 평범할 따름이었습니다. 즉 라오디게아는 유명한 온천이 있어서 한가한 사람이나 병자들이 온천 구경 오는 관광지로써 이렇다할 정신적인 지주가 없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미온적한 도시로 미신도, 니골라 당도 관심없을 뿐 아니라 교 회 생활도 관심없어 그저 현상 유지의 안일의 악폐에 빠져 있었습니다. 또 이 교회의 병은 부(富)로 말미암아 병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차라리 사랑과 지식과 신앙의 풍부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1.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성상(聖像)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어떠한 분으로 나타나셨습니까?

(1) 아멘이신 진실한 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멘은 히브리 원어로 “진실하신 이 ”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고 만고 불변의 신(新)이십니다. 인심은 변천하고 변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십니다.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이 란 뜻은, 1)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즉 누가 말한 것을 자기 것으로 채용하는 것(민 5:22, 느 8:6)을 아멘이라고 합니다. 2) 자기의 기도와 송가를 확신케 하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3)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가장 엄정(嚴正)한 태도로 하실 때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이 말이 아멘이라 했습니다.

(2)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본디오 빌라도 앞과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3) 창조의 근본되신 자로 나타나셨습니다. 즉 주님은 조화의 근원, 만유의 창조자이십니다(요 1:3, 골 1:16, 히 1:2, 3). 이런 주님께서 보신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상은 어떠했습니까?

2. 교회의 진상

(1)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온적한 상태였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에 있는 온천의 뜨거운 물과 냉천의 찬 물의 실례를 들어 신앙 상태를 말씀하셨습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냉천도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온천도 각종 병에 유익을 주는 것인즉 사람의 신앙도 어느 편에든지 치우치면 유익은 있으나 미온적 신앙, 불냉 불온적 신앙,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적 신앙은 아무 유익도 없고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사 토하여 내치리라 하셨습니다. 악에 철저한 자는 선에도 철저하여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 9:41에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곧 바알에게 치우치지 않고 여호와께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에서 미지근함인데 균이 불냉 불열한 미지근한 데서 발생하는 것과 같이 죄와 타락도 미지근한 신앙에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금일 교회의 진상인 동시에 우리의 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다소」 사람 사울과 같이 차든지, 사도 바울과 같이 뜨겁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미지근한 것을 좋아합니다. 마귀는 열심히 집회하는 것, 열심히 헌금하는 것, 열심히 교회 봉사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2)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절)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부자라 하였습니다. 미지근한 자는 자기의 상태를 판단치 못하여 자기 비판력을 상실합니다. 그들은 재력이 다소 풍부하므로 교만심이 등장하고, 학식있는 자는 학식으로 교만하고, 은혜를 한 번 맛 본 자는 신앙적 교만이 생겨 늘 부요한 자라 자랑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부족이 없다고 했습니다. 물질에 풍부했고 복음과 교우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있어 사도들의 간절한 훈계와 간절한 훈련까지도 경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정말로 다복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 비아 교회와 같이 유대인의 박해도 없곤 버가모 교회와 같이 로마 관전의 압박도 없고, 에베소, 두아디라 교회와 같이 이단의 횡행도 없어 실로 유복한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고 자극도 없어 자기 만족에 빠진 교회가 되었으니 영적으로 실로 가련해서 주님께서는 그 참상을 폭로 하셨던 것입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라고 했습니다.

3. 주님의 권면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부를 자랑해야 합니다. 벧전 1:7에 신앙은 불로 연단한 금이라 했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이 신앙은 또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의지하며 결어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연단 중이라도 흔들림 없이 믿는 믿음이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입니다.

(2)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 옷 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된 옷을 말합니다. 「의의 옷1,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정결한 옷

1. 내세로부터 오는 「영광의 옷」을 말함이니 이 런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이 수치를 면치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횐 옷은 완전히 성결된 옷이니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참 신부된 자의 옷입니다. 이 예복 없이 어린 양의 혼연(渾然)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마 22:11-13처럼 예비된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잔치 자리에서 축출당할 것입니다. 이 옷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준비되었으니 오직 신앙으로 이것을 받아 입고 수치를 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으로 영안이 열려야 할 것이니 안약은 엡 1:17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시가 안약입니다. “보게 하라” 하였으니 죄의 실상을 영의 지혜로, 죄를 보는 영의 능력으로, 내세를 통하는 영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1) 특히 자기를 똑바로 보게 됩니다. 눈이 밝아야 빛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와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영안이 자지 않으면 형제의 결점이 안 보이고 자기의 부족을 모르게 됩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영안이 뜨인 다음에야 자신이 죄인의 괴수임을 깨달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를 봅니다. 자신만 보인다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신 주님을 쳐다보면 우리 죄 짐이 가벼워지고 마음에 무한한 사죄의 기운이 넘치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그들은 용기와 신념 을 얻었습니다. 3)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기 전에 마음이 깨끗하여야만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주님께서 마 5:8에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4) 생명수가 보입니다(창 31:19-25). 5) 5) 불쌍한 영혼을 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운 자는 하나님의 역사인지 아닌지 모르니 분별 못해 세상이 악하나 벙어리 개처럼 진리를 향해 능히 짖지 못하니 가련합니다. 6) 세상을 바로 보게 됩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자, 밧모섬에 있는 사도 요한처럼 천계를 볼 수 있고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갔던 것 같이, 스데반이 돌무덤 속에서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이, 베드로가 신천 신지를 바라본 것 같이 (벧후 3:13) 천국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7) 특별히 재림의 주가 보입니다. 이와 같이 연단된 금 같은 신앙, 주님의 보혈로 씻은 흰 옷, 우리 마음의 눈을 밝게 하는 안약이 세 가지 보배가 우리 성도들의 부입니다.

(4)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뜨거워지려면 회개에서부터 열심을 낼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5)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라” (20절)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 문을 열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 오tu서 처음에는 빈객이 되어 향연에 참예하시곤 다음에는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빈객이 되어서 영원히 천국의 향연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의 희?열과 영광과 생명에 같이 참예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영접하면 나는 저에게 들어가 저와 더불어 먹고 저는 나로 더불어 먹는” 곧 큰 연회가 그 마음에 열릴 것입니다.

4. 약 속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우리들도 죄악에 이기는 자 되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할 것이요, 영원한 천국의 영광 안에서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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