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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래하는 144,000명(첫째 환상) (계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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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라고 하신 말씀대로 구속함을 얻은 144,000명 곧 거룩한 무리의 교회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 것을 보니 과연 영광스럽습니다. 11장에서 13장까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 이 삼자가 합세하여 나타날 때 모든 사람들은 짐승의 표와 이름을 받고 그 앞에 경배하며, 더불어 매매싸고 음욕을 따라 갔음을 말했고, 이제 14장에서는 그 장면이 바뀌어 구속함을 입은 44,000명이 시온산에서 어린 양과 같이 서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모습 이야말로 장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지상에서 환란을 받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은 까닭입니다.

1. 시온산에 선 어린양 1절 상반절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내가 보니 보라” 한 것은 기이하고 놀라운 광경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도록 권하는 것이며, 그렇게 권함은 시온산에 어린양이 선 것을 친히 본 까닭이었습니다. 시 147:12 시온산은 다윗의 성이며 그 위에 예루살렘이 있다고 하였으니 시온은 예루살렘의 별 명이기도 합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 시어 승천하신 그 주님께서 새 예루살렘 시온성에 서신 것을 요한이 보고 서 너무 기쁘고 너무 놀라운 광경이므로 보라 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귀 권세를 짓밟고 새 예루살렘 성 건설에 나타나신 사 실을 보게 될 때 누구나 감격하여 경악의 환성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못하는 자 있을지 모르나 여러분은 믿고 복있는 성도가 되시어 성서의 약속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시온산에 선 144,000명 시온산에 선 144,000명은 세상에서 승리한 자들인데 곧 거룩한 하나님 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만 일시는 교회로써 144,000명이 모인 하나님만 아시 는 신령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성도 144,000명이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예수님께서 계시는 시온성에 서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예수님 의 피로 사신 증거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확고 부동의 거룩한 존재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1절 하반절에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명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계 7:15에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하였으니, 진실로 144,000명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의 회복과 예수님의 재림을 항상 주시하고 있는데 오늘날 이스라엘이 회복을 서두르고 있어 시온산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건축되는 기이하고 신기한 일이 역사에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7년 6월에 전격적인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의 명장 『모세 다이안」 은 옛 성전의 유일한 벽에 진격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지성소에 돌아 왔다. 다시는 이곳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이곳 예루살렘은 다윗이 제물을 드렸던 시온산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며 헤롯이 대 성전을 세웠던 곳입니다.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파멸되었다가 그후 그곳에 모슬렘 성전이 세워져 1900여년이 지나서야 오늘날 이스라엘이 2000년만에 점령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물러날 수 없음을 공개하고 아랍 제국들은 물러날 것을 요구함으로 중동 전쟁으로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에드워드」씨는 미국의 뉴욕 타임지에 실린 신문 기자의 질의에 답변하기를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처음 점령할 때부터 솔로몬이 성전 짓기까지 꼭 한 세대 40년이 지났으니 우리도 그러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시온산에 모슬렘 성전이 2000년만에 무너지고 주께서 예루살렘에 섰을 때 144,000명의 찬양과 감격과 흥분 속에서 우리는 그 광경을 보게 될지 도 모릅니다. 144,000명, 이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그 영광의 지위는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 이마에 짐승의 표가 붙어 있으나 144,000명은 그 이마에 예수님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 황 앞에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3. 찬양하는 144,000명 2절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하였습니다. 여기 많은 물소리와 큰 뇌성과 같은 소리라 한 것을 보아 미래는 패배의 노래가 아니라 승리의 압도적이고 위엄의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노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많은 군중이 모여 합창할 때 그 음성을 분간키 어려워 물 소리와도 같고 우뢰 소리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사실 합창일수록 그 곡조의 화음이 있어 거문고 소리로, 혹은 물소리로, 우렁찬 뇌성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아뭏든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음성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매 우 훌륭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에 관해 세 가지를 말 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많은 물소리 같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의 위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해안과 절벽에 부딪쳐 깨어지는 소리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든 모든 작품을 산산조각 내는 위력을 가졌음을 연상케 합니다. 둘째, 그것은 큰 뇌성과 같더라. 여기서는 하나님의 음성의 명백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번개치는 소리를 못 들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꼭 들려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며. 또 이 말씀(음성)은 사람이 그 귀를 틀어 막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세째, 여러 거문고 켜는 소리와 같더라. 여기서는 하나님의 음성의 멜로디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고 평온을 가져 오게 하는 것을 음악(멜로디)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즉 소리는 파도와 같은 위력이 있으며, 뇌성과 같은 명백함이 있고 또한 거문고와 같은 우아함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문고 타는 소리, 이것은 시편 98:5에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을 보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찬송소리입니다. 청아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진리와 생명이 움직여 역사하는 신령한 노래입니다. 또한 3절에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했습니다. 이 노래는 구속함을 받은 144,000인 외에는 부를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부르고 또 부르고 영원히 불러도 싫증나지 않는 노래인 것입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감사와 만족의 희열이 넘치는 노래이며 감격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144,000명의 거룩한 모습은 오늘날 교회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오늘 우 리도 그들과 같은 거룩한 모습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4절 말씀에“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

(1) 순결한 자입니다.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기가 동정녀처럼 깨끗했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세속주의에 물든 자를 가리켜 음행한 여자와 같다고 말하였음을 보아 본문의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고후 11:2 에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깨끗한 동정녀처럼 신앙의 정조를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길 수 없습니다. 신앙은 세상과 죄악으로 더불어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에는 어떤 양보도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만약 신앙에 어떤 타협이나 양보가 있다 해도 그것은 정절을 지킨 동정녀와 같은 신앙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4절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2) 어린양의 인도를 받는 자입니다. 인도함을 받아 「따라 간다」는 말은 「아콜루데오」라는 원어의 뜻으로 볼 때 제자가 되어 배우고 본받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즉 환란의 말세를 당한 성도들은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굻고 헐벗고 매맞아 수치와 보복을 당하여 죽는 데까지 이르러도 하나님의 표를 자랑하며, 그에게 충성을 하 며, 언제든지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서 배우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구원과 승리의 새 노래를 새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3) 진실한 성도들입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란 문자 그대로 그의 진실성을 보장함과 동시 에 또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거짓말이란 원어에 「톨로스」로써 교활하다, 간사하다, 협잡하다의 뜻이 있으며, 즉 자신의 입장만 이롭게 하기 위해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며,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비굴한 자, 진실치 못한 자, 세상을 해롭게 하는 자롤 가리킵니다. 진실하고 흠없는 신 앙 생활이야말로 흠잡힘 없는 그의 신앙이요, 성서적으로 믿는 신앙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살전 5:23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패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하 시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살아 주 앞에 흠 없는 자로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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