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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계 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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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절에 “이끗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 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했습니다.

1. 사도 요한의 감격 이 계시를 보고 들은 요한은 너무 감격하여 계시를 보여주던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했다 했습니다. 박해로 고통 당한 교회에 영광스러운 미래가 펼쳐진다는 사실, 즉 종횡무진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던 악과 마귀의 세력과 모든 부조리와 고통의 완전한 전멸과 철거로 인하여 저주가 떠난 아름답고 영화로운 하늘나라 교회를 보여준 천사 앞에 엎드려 요한은 경배하려 했습니다. 계시록처럼 우리에게 소망, 감격, 확신을 주는 책은 다시 없습니다. 하 나님의 계시를 보고 감격한 이는 사도뿐만 아니라 이 책을 보고 연구하는 모든 사람이 감격에 넘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확신과 열심이 없는 자는 계시록을 정독하십시오. 계시록을 바로 이해하면 감격과 활기가 넘쳐서 할렐루야의 노래가 가슴 속에서 목이 터져라고 나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예배 9절에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배 는 천사에게 할 수 없는 일이요, 오직 하나님께만 할 행위입니다. 하나님 외에 인간이 신뢰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인간 자신을 멸시하고 자학하는 정신적인 치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사람보다 더 위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했습니다.

(1) 예배는 신. 불신 모두에게 요구하십니다. 1) 불신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예배 대상을 삼고 있습니다. 사 2:8-9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불신자들 중에도 인간은 그 무엇인가 하나님을 안 믿으면 우상이라도 만들어 놓고 믿지 않으면 안심이 없는 듯합니다. 2) 그러나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산관계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성도들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모아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람은 절대자를 의지하고 절대 순종함으로 절대자의 힘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2) 예배의 대상. 마귀도 예배 받기를 원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했습니다. 마 4:9에 “나에게 경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주님은 정면으로 나섰습니다. “사탄아 물러 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예배의 대상자입니다. 출 20:5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대상이라도 하나님과 경쟁하며 섬기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창조자와 피조자를 맺어주는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아닐 때, 겔 8:16-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 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낸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예배를 엄격히 받기를 원하십니다.

3. 예배의 본질 예배는 영적 의식의 특권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 교회, 성경을 가르칠 뿐아니라 지켜야 할 의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배 는 형식적인 종교 의식이 아닌 것입니다. 예배는 영적 의식입니다. 기독교 예배를 전체로 통관하면 2대 경향을 볼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예언자적이 고 또 하나는 제사적 경향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에는 예언자계의 인물과 제사장계의 인물이 서로 대치하면서 종교의 표리를 형성하였습니다. 예언자는 직접 영감에 움직이는 전 도자로서 강단을 가진 사람이요, 제사장은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으로 제단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언자의 예배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요 제 사장은 제단 중심주의입니다. 예언자는 윤리적이요 의식보다 정의를 실행할 것을 가르쳤으며, 예언자에게 있어서는 제사의 예배 요소로써 월삭이나 절기나 안식일의 양이나 소의 희생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예배 근본정신으로 강조했습니다. 구약의 예배가 제사 중심이었다면 신약의 예배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적 예배를 계통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부터 예언자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마 9:13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말씀을 들어봐도 예수님의 예배관이 예언자의 정신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제사의 부분을 무시한 것은 아니니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세우시고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포도즙은 예수의 피로 주께서 재림시까지 지킬 예전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올바른 우리의 이념을 말한다면 예언자적 정신을 생명으로 하여 신자로 하여금 마음에 만족을 갖게 하고, 윤리 생활에 힘주는 동시에 제사적 부분도 정중히 하여 경건한 의식에 엄숙미를 갖게 함이 가 장 타당한 줄로 압니다.

4. 예배의 요소

(1) 예배송 예배송은 예배의식 중 중요한 부분입니다. 히 13:15 신도들은 예배송으로 입술의 제사를 삼아 드릴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예배 성가대가 있어 수금과 비파로 신령한 노래를 불러 여호와를 섬기기도 하였으며, 시편이란 여호와를 섬기는 신령한 찬송집입니다. 원래 인심을 감화시키는 데는 음 악의 위력이 큰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 생활의 마지막 고통인 겟세마네를 향할 때도 찬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시 경건한 마음으로 열심히 불러야 할 것입니다.

(2)기 도 예배의 제 2요소는 기도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듣게 함이라면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말씀을 올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종교 행위에 있어서 가장 고상하고 중요한 행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에 오직 유일한 신비의 길이며 신자의 위로의 요건이며 부흥의 원천이요 교회 발전의 큰 동력입니다. 예 수님도 생에 있어서 요단강가의 세례 받던 그때부터 십자가의 최후의 운 명 때까지 기도로 시작하였고 기도로 나아가며 기도로 끝을 마쳤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바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의 기도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특권으로 주 신 것이며, 지성소의 중보자로 우리 주님을 세워 주님의 이름으로 교통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3)설 교 롬 10:14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만민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도구는 설교입니다. 구원을 전함에 있어서 인쇄물, 문서 전도, 심방 전도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나 결코 설교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의 전도나 수십, 수백만인을 감화시켰던 종교적 대운 동이나 진리의 부흥, 신앙심의 부활은 모든 것이 다 설교의 원인이요 결과이었습니다. 행 2장에서 오순절 부흥으로 일시에 3,000명, 5,000명이 가슴을 치 며 회개하게 된 것도 사도 베드로의 장광설한 대 설교가 그 원인이 되었던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루터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암흑의 세계에서 다시 그 권리를 구했으며, 웨슬리의 설교는 영국을 피의 혁명 직전에서 구했으며, 이 외에도 휫필드, 무디 등 대전도자의 설교의 위력은 미국 복음화를 성공케 한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행위로 말미암은 복음만을 말할 것이고, 성서를 근거하여 인생과 우주에 대한 깊은 철리가 있어야 하며. 설교의 제목과 사상과 자료는 성서를 근거하여 나와야 참된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4)헌 금 주 앞에 나아가는 자가 빈손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서는 허락치않습니다. 헌금. 제물 드림도 예배의 일부 행위이며 경건한 마음으로 할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불경건으로 심판을 받은 행 5장의 아나니아 부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요 사람의 이목을 위하여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받는대로 축복주실 증거의 바탕으로 여기십니다.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5. 예배자의 자세 예배하는 자의 육체적 자세는 그 사람의 영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욥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엎드려 예배드렸습니다. 욥 1:20 “욥이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다윗 왕도 머리 숙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음을 성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상 29:20 다윗이 온 회중에게 주를 송축할 것을 명할 때 그들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절하였습니다. 에스라 시대에는 다음과 같이 예배하였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느8:6에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신자의 예배 자세는 어디까지나 지성을 다하여 경건한 태도로써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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