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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하나님께 풍성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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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즐거움 중에는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 봉투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 봉투를 하나 하나 보면서 그 봉투에 쓰여진 신앙의 고백들을 새벽 기도 시간을 통해서 읽어본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대개 많은 교회들이 예배 시간을 통해서 헌금 봉투를 교회 앞에 소개하고 목사가 봉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줄 안다. 우리 교회도 얼마 전 까지 그렇게 해 왔었다.

어떻게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느냐 하는 방법론은 교회마다 조금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헌금을 드리는 믿음은 다 같으리라 고 생각된다. 십의 일조 헌금 봉투를 보면 성도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생활의 뿌리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는 성도만이 온전한 십의 일조 헌금을 드릴 수 있다고 한다.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공평한 헌금 제도이다. 이 헌금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한 의무와 동일한 축복을 약속한 헌금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친히 명령하신 헌금이요 차별이 없는 성도의 의무이며 하나님이 복을 반드시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계명이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음은 모든 헌금의 표준이다.

다른 헌금은 혹시 하지 못하더라도 십일조만은 반드시 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십의 일조를 드리지 못함을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도적으로 말씀하셨다. 감사 헌금 봉투를 보면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아픈 일에는 함께 아파하면서 하나님께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쁜 일이면 함께 기뻐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가정의 어려움을 안고서 불평하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성도들의 예물을 대할 때마다 신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감사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성도들의 예물을 볼 때마다 그 감사한 일이 하나님께로서 왔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성도의 삶이 아름답기만 하다.

분명한 것은 헌금은 믿음과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자가 헌금을 많이 할 것 같아도 십일조 헌금이나 감사 헌금 봉투에는 가난한 성도들과 어려운 성도들의 이름이 더 많다.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다. 헌금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 고백이였다. 똑같이 애굽에서 금덩어리를 얻어 나왔으나 어떤 사람은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바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성막을 만들 때에 아낌없이 드린 사람이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돈을 어떻게 벌것인가에 대해서 보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 것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물질을 벌기 보다 바로 사용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성도는 자신에게 부하고 하나님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헌금을 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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