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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하라 (눅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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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하라 위선자를 꾸짖으시는 예수님 영국 작가 스티븐스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면 낮에는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밤만 되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하이드’로 돌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소설의 핵심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은 사람을 미치게 하고 결국 사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위선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행위는 위선이라고 하십니다.(1절) 여기서 ‘위선’이라는 뜻의 헬라어 ‘히포크리시스’라는 연극 용어입니다. 연극에서 배우가 자기와 전혀 다른 성격의 배역을 맡았을 때 마스크를 쓰고 연기하는 것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위선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고, 절기마다 모여 격식대로 예배를 드리고, 온갖 종류의 헌금을 드리지만 정작 삶으로는 불의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면 심술꾸러기 사장님으로 변하고, 욕을 하고 부정을 행하는 사람으로 돌변하고 약한 자를 핍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라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사람들이 신참 크리스천이 아니라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 장로, 순장, 사역팀장, 성가대장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 지도자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잘못된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룩’은 악한 영향력입니다.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아무리 적은 악한 영향력이라도 사람 속으로 들어가면 그 세대 전체를 순식간에 타락시킬 수 있습니다. 영적인 위선자가 순을 이끌면 그 순 전체가 영적으로 병들고, 영적인 위선자가 목회를 하게 되면 그 교회 전체가 영적으로 병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드러나는 위선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이 본문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부인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자기는 아니라는 교만 속에 바짝 달라붙습니다. 위선적인 신앙은 누구든지 신앙경력이 조금만 쌓이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저도 목사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축도를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가슴으로 오는 것이 느껴졌었습니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간 풋내기 전도사였을 때 어떤 교회에서 꽤 큰 집회를 제게 맡겼습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 시편 51편을 본문으로 며칠 밤을 새워가며 설교 원고를 외우고 고쳐 쓰고 연습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설교가 너무 많아지니까 설교를 해치우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적 위선입니다.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은 처음 안수 받을 때를 기억하십시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면 그때부터 병이 듭니다. 영적 위선의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젠가 내 영적 상태가 환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2-3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까. 사람들이 겉다르고 속다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것이 은폐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법은 영원히 은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불합리한 현재에 대해 너무 분노하거나 초조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진실하게 사십시오. 은혜받은 대로 표현하시고, 은혜받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위선적인 신앙의 비극은 영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습니다. 세례도 받고 예배도 참석하고 일대일도 했고 찬송도 알고 교리도 배우고 신학도 하고 직분도 받아서 목사, 장로가 되었는데 영적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능력이 없는 크리스찬의 삶은 비극입니다. 기도를 해도 귀신이 떠나지 않고, 마음에 자유함이 없고, 말씀을 가르치는데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 사역을 해도 영적인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이 위선적인 크리스천에게 주시는 가장 큰 벌입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라 영적인 위선의 극치는 영적인 무지입니다. 영적인 무지는 하나님의 움직임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해석해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해 버립니다. 이것이 10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욕하는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길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생을 살 능력이 없어집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 할 수가 없는데 성령을 부인하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성경 말씀이 믿어지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아무리 다녀도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위험 수위까지 간 바리새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인 바알새불의 힘을 빌어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영적인 무지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곳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친구들에게 말씀하십니다.(4절) 친구들에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위선자이야기를 하시다가 왜 갑자기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위선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던 모든 종교적인 매너리즘을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라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대상을 두려워하십시오.(마 10:28) 사람에게 어려운 소리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사람앞에 비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지도자들이나 권세있는 자들 앞에 섰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들 앞에서 주님을 고백하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십시오.(8-9절) 물론 직장에서 그렇게 하고 나면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놀림과 조롱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면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란한 그 날에 천군천사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어떤 조롱과 비난과 비판속에서도 나를 부인하지 않고 나를 자랑스럽게 여겼구나”라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하면 위선적인 신앙에서 탈피할수 있습니까?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다시 한 번 뜨겁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전통, 제도, 습관, 직분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로 말씀 앞에 매일 서는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룩한 하나님의 불이 24시간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으로 매일 매일 새롭게 주님께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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