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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론 우상의 몰락 (사 4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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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우상의 몰락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불신앙과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합니다. 무려 70년 동안 나라와 성전과 가정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으시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십니다. 우상의 몰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바벨론이 패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가장 큰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가지를 들어 바벨론을 치십니다. 하나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입니다. 고레스 왕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레스 왕을 들어서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문제지만 다른 하나는 내부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에 달한 것이 바벨론의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우상을 치신 것입니다. 우상의 몰락은 곧 바벨론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1-2절입니다. “벨이 엎드러지고 느보가 고꾸라진다. 그들의 우상들이 짐승과 가축 위에 실려 있구나. 너희가 실어 나르는 우상들은 지친 짐승에게 큰 짐이 되는구나. 우상들은 넘어져 있고 함께 엎어져 있다. 그들은 짐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포로가 돼 끌려가고 있구나.”이 말씀에 바벨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우상이 등장합니다. 벨과 느보입니다. ‘바벨론’의 ‘벨’, 바벨론 마지막 왕인 벨사살 왕도 ‘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상의 이름을 나라 이름과 왕의 이름에 쓸 만큼 우상이 권력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느보는 벨의 아들로서 학문이나 문서나 천문학을 상징하는 우상입니다. 느보의 이름을 따서 느부갓네살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이라는 이름도 이 우상의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벨과 느보를 섬기는 큰 신당이 바벨론 남쪽에 있었고 그 안에 돌로 만든 벨 신상과 느보 신상이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신상의 높이가

5.4m나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에는 어떤 절기나 큰 축제가 있으면 가축들이 끄는 큰 수레에 거대한 신상을 싣고 바벨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축제를 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서 복을 비는 것입니다. 회복되는 하나님의 백성 1절 말씀을 보면 소나 말이 이끄는 수레에 실려 성안을 화려하게 행진을 했던 이 우상들이 엎드러지고 고꾸라졌다고 했습니다. 처참하게 짐짝 취급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그것들은 짐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포로가 돼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라크에서 후세인 동상들을 연상케 합니다. 동상이 끌어내려지면 그렇게 치욕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동상은 함부로 만든 것이 아입니다. 동상이 많은 나라는 위험합니다. 우상이 쓰러졌다는 것은 정신적 기초가 쓰러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의 몰락은 정권의 몰락,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기 전에 우상이 판을 쳤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상과 미신이 판치면 인간의 도덕성이 망가지고, 도덕성이 망가지면 정치가 망가지고, 정치가 망가지면 경제가 망가지고, 경제가 망가지면 사회가 붕괴됩니다. 바벨론이 이런 일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우상과 반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망하는 것 같지만 흥했고, 죽은 것 같지만 살아났고, 없는 것 같지만 일어났습니다. 3-5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은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곱의 집아, 내 말을 잘 들으라. 이스라엘 집의 모든 남은 사람들아, 너희가 잉태됐을 때부터 내가 너희의 편이 돼 주었고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내 품에 안아 주었다. 너희가 늙어도 나는 여전히 너를 품에 안고 너희가 백발이 돼도 여전히 너희 편을 들어 주겠다. 내가 만들었고 내가 감당하겠다. 내가 편을 들어주고 내가 구해 내겠다.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고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너희가 나를 누구와 비교하면서 ‘닮았다’라고 하겠느냐?”우상은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은 가짜 신이요, 실제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성 3절에 보면 하나님은 마치 어린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부성(父性)을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은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성경은 하나님의 모성(母性)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기에 하나님 안에는 아버지의 모습도 있고, 어머니의 모습도 있습니다. 리더십에도 부성적 리더십이 있고, 모성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부성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무섭고 강하고 공격적입니다. 그러나 모성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품어주고 용서하고 위로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태속에서부터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편애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못하고 실수해도 내 편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늙을 때까지 백발이 될 때까지 보호하고 지켜주고 편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실수를 덮어주십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은 어떤 우상과 비교하거나 견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을 다 안다면 인간이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든지 “하나님을 다 설명해주면 믿겠다”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극히 일부분만 알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시고 인류보다 크시고 온 우주보다 크시기에 우리는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과 어리석은 인간 하나님의 모성을 잘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이사야 49장15절입니다. “어머니가 자기의 젖먹이를 어떻게 잊겠느냐? 자기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떻게 가엾게 여기지 않겠느냐? 혹시 그 어머니는 잊어버려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젖먹이 아이를 잊겠습니까? 비록 사람은 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잊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다우신 분이요,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다운 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무섭게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조금만 잘못되면 야단치고 실수하면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천국에 가면 지상에서 살았던 삶을 필름처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기억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겁먹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다 용서하셨습니다. 다 잊으셨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다 용서하듯이, 어머니가 살인자의 자식도 용서하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성애입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6-7절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가방에서 금을 쏟아 내고 저울에다 은의 무게를 재고 금 세공업자를 고용해 신상을 만들고서는 거기에다 절하고 경배하고 있구나.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어깨에 올려 실어다가 놓아 둘 자리에 세워 두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에게 부르짖어도 대답하지도 못하고 어려울 때 그를 구원해 줄 수도 없다.”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어서 절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두 가지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리석은 인간이 사람을 고용해서 자기 금과 은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이 신이라고 하고 거기에다 절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렇게 만든 신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아주 무능한데 그것이 마치 유능하고 어떤 기적을 이루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엉뚱한데 돈을 많이 씁니다. 가치 없는 일에 열정을 냅니다. 허무한데 시간을 보냅니다. 무익한 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운세나 점이 어떻게 나의 미래를 만들며, 나의 사주팔자가 어떻게 행복한 결혼과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난삼아 운세를 보고, 사주팔자를 이야기하고, 손금을 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일들을 흉내도 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말도 못하는 거짓 우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역사를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정답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손해 보는 것 같고 인기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의 조롱거리처럼 보여도 인생의 정답은 하나님이십니다. 과거를 기억하라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충고를 하고 계십니다. 8-9절입니다.“이것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라. 너희 반역자들아.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라. 예전의 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니 나밖에 다른 신이 없다. 나는 하나님이니 나 같은 이가 없다.”첫째,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위대한 일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는 과거에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스토리가 있습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감동이 없을 때는 여러분들이 처음 은혜 받았던 때를 회상하십시오. 그럴 때 영적 재충전이 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잊을 수 없는 영적 사건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 절망에서 살아난 이야기 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가족은 이북에 피난을 나왔기에 구전되는 3시간짜리 스토리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한번은 북한 병사를 피해 가족이 논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데 그 병사가 걸어오다가 우리 옆에서 우리가 있는 반대편으로 코를 풀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피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이런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살아났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살아났다, 피난 나왔는데 총알이 빗겨갔다 등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연히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살아났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계획을 이루시는 분 10절과 11절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장차 일어날 일들을 밝혔고 오래 전에 이미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일러 주었다. 내 뜻은 이뤄질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 내가 동쪽에서 독수리를 불러내고 먼 땅에서 내 뜻을 이룰 사람을 불러낸다. 내가 말한 것을 내가 이루겠다. 내가 계획한 것을 내가 하고야 말겠다.” 둘째는 하나님은 반드시 미래의 일을 미리 예언하시고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미래는 영광스러운 것이고 기대로 가득합니다. 미래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안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는데 믿음이 없는 우리는 미래의 문을 스스로 다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만큼만 미래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여러분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 그 아이를 향한 꿈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주기를 원합니다.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가고, 축복된 결혼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꿈이 없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한 꿈과 환상이 있습니다. 아무렇게 살라고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보다 더 황홀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눈물이 있는 삶을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나이, 건강, 돈, 성공과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놀랍고도 큰 꿈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잘 될 것입니다. 으레 말하는 막연한 축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을 이끌고 가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좌절하고 포기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여러분을 이끌고 가십니다. 할렐루야! 지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셋째,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12-13절입니다. “마음에 살이 쪄서 공의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아, 내 말에 귀 기울이라. 내가 내 공의를 가까이 부르고 있으니 승리할 시간도 멀지 않다. 내 구원을 미루지 않겠다. 내가 시온에게 구원을 베풀고 이스라엘에게 내 영광을 나타내겠다.”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조금 있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일을 하십니다.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성공할 시간, 승리할 시간이 다가 왔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웃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굳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오십니다. 오늘 은혜 받은 날입니다.(고후 6:2) 오늘 구원 받은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날입니다. 혹시 의심한다면 의심을 버리십시오. 방황한다면 방황을 포기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오늘 예수님 영접하십시오. 오늘 주님 앞에 돌아오십시오. 세례 받지 않은 분은 세례 받기로 결정하십시오. 성가대로 봉사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승리의 날은 이미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게으른 신부처럼 졸지 마시고 등불을 준비하십시오.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승리하십시오. 우리 주님과 영광스러운 축복의 만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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