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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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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주제입니다. 비록 죄를 짓고 우상숭배를 하고 율법을 어기고 도덕적으로 타락을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징계도 하시고, 때로는 심판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이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끈질기다 못해 처절합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리시고, 우리보다 더 많이 고통을 겪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끊임없이 선언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고백의 요체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여기서 이스라엘을 향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배로운 존재가 아니라 포기하고 멀리하고 버리고 싶은 존재입니다.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정떨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반대로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반대로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도 없고, 귀엽지도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좋다고 하시고 포기하시지도 않고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오죽하면 징계하고 심판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은 괴로워하십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4절과 22절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하나님을 괴로워했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이 훼파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더 이상 소망 없이 살아갈 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괴로워한다는 것은 ‘기진맥진하여 탈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희망도 기쁨도 다 잊어버리고 그들의 예배가 형식적이고 힘들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사에는 정성이 없었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정성이 없었습니다. 형식적이었습니다. 제물을 보면 그 예배의 정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배에는 제물도 없고, 준비도 없었습니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예배를 드렸습니다. 몸만 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 예배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몸만 있지 마음의 준비가 없습니다. 긴장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흥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23절에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상하고 섭섭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제에 양이 없다’고 하십니다. 번제를 위해서는 양을 준비해야 하는데 빈손으로 온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꽃 한송이라도 들고 가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데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간 것입니다. 이 말은 그냥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영적 상태였습니다. 멈출 수 없는 사랑 하나님께서 오죽 화가 났으면 “내가 언제 너보고 예물 가져오라고 했느냐? 내가 언제 너보고 돈 가져오라고 했느냐? 내가 언제 너보고 분향하라고 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24절입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오만한 태도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향품을 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돈이 드는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희생의 기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도리어 죄의 짐들만 하나님께 덮어씌운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마저도 용납하셨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섭섭하고 속상하지만 이스라엘을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미워할 수도, 더 이상 징계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인간은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 시킵니다. ‘왜 지구가 이런가?’ ‘왜 이 나라가 이런가?’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받아야하는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정의는 다 죽었느냐’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 점점 입이 다물어 집니다. 뻣뻣하던 고개가 숙여집니다. 큰 소리 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숨습니다. 25절이 결론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 곧 나’라고 하십니다. 독특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이라고 말씀하시면 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굉장히 중요하게 강조하십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강조하는 인간은 굉장히 천박해 보입니다. 세상에 제일 가볍게 보이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은근히 자기선전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천박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강조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의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절대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향해서 ‘나 곧 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출애굽기에서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은 ‘나 곧 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권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나 곧 나, 하나님인 내가 너에게 말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랑과 긍휼과 은혜를 무한히 베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쌍해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자신의 하나님됨과 자신의 절대성 때문에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은 불완전 하거나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이 인간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면, 어떤 사상이나 철학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불확실하며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이라면 나의 불완전함, 불확실함, 죄, 실수, 허물과 상관없습니다. 나의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확신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받은 것 같다가도 기분이 상하면 못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비록 내가 실수가 많고, 허물이 크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완전합니다. 완전한 죄사함 여러분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내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나 곧 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권위와 절대 능력을 가지신 그분이 자기를 위하여 우리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부족함, 허물, 실수,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의 완전하심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을 의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은 분명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잘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내 죄를 다 따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구약에 많은데 그중에서 시편 103편 10-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하나님은 우리 죄를 없이할 때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기억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다시 찾을 수 없게 하십니다. 용서받은 자의 삶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죄의 짐을 지지 마십시오. 죄와의 관계를 끊으십시오. 마귀의 속삭임을 듣지 마십시오. 죄의식, 죄책감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죄의식과 죄책감이 여러분을 우울증에 빠뜨립니다. 담대히 벗어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의 특징은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남을 계속해서 비판하고 정죄한다면 그 사람에게 정죄받을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용서의 선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남을 비판하고 의심하고 공격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일평생 살면서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자리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선언을 받았다면 자기 자신을 정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굽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고 계속 괴롭힙니다. 제가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도 괴롭히지 말고 여러분 자신도 괴롭히지 마십시오. 자유를 누리십시오. 용서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우리 하나님의 용서의 선언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은혜도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긍휼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용서하셔야 합니다. 공격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도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성령님의 뜻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여는 축복의 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26절입니다.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하나님께서 “내가 무슨 잘못된 실수를 했으면 기억나게 해봐라. 내 판단이 잘못됐는지 변론해보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상 말하자고 하시면 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핑계도, 변명도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걸음 더 나갑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여기서 ‘시조’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을 말합니다. ‘교사들’은 그 당시의 왕, 제사장, 예언자같이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결국 믿음의 조상도, 왕들도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십니다.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책감에 빠지지 마십시오. 과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분노와 미움과 비판과 공격의 영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계속해서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고 분노하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 악한 영이 여러분에게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거절하고 거부하고 여러분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과 축복의 말과 믿음의 말을 하면 하나님의 영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축복을 택하겠습니다. 생명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세상을 택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결정하면 대로가 열리고 축복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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