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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교육은 생명의 길 (신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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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은 생명의 길(신6:4-9)"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예수님의 최후의 명령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지키게 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예로부터 배우고 가르치는 일들은 유대인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거절해도 좋으나 책을 빌려주는 것은 거절하면 안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유대인은 옛날부터 『책의민족』혹은 『학문의 민족』이라고 불리 워져 왔습니다. 사람의 몸에 비교해 본다면 유대인에게 있어서 학문은 피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몸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학문이 없는 유대인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배우는 일은 종교적 의무로 삼는 민족은 유대인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말을 배우게 되면 가장 먼저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물이 유대인에게서 그토록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교육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길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심 이니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신앙교육이 곧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말씀을 배워야 말씀을 실천해야만 살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은 "성서는 나의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고 고백하면서 체험을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6.25동란때 집을 버리고 재산도 버리고 정성들여 모아 놓았던 몇백권의 서적도 타 버리고 사모님과 어린애들을 데리고 막연하게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성경책 한권 뿐』이었습니다. 많은 서적도 필요없었습니다. 그 책들이 그분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고 삶과 죽음의 순간에 막다른 그에게 성서 한 권만이 희망과 빛을 주었습니다. 이 성서를 반려자로 삼고 하루하루 나그네의 길을 걸어 남단의 부산까지 갔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라 "(시119:105)성서는 그분의 암흑한 인생 길에 등불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수복한 후에도 흩어진 교우들을 모아 다시 목회를 시작했을 때도 피난길에 갔고 갔던 『성경 한 권만』가지고 읽고 가르치고 설교했습니다. 훗날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 생활 중에 가장 힘있게 가르침과 설교는 그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신명기 6장 오늘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전 인격을 다해서 모든 능력을 다해서 목숨까지 바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6) 나 자신이 먼저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인생관도 말씀에서 나와야 하며 나의 가치관도 지혜와 판단도 모두 말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가 사는 길은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 얻은 땅에서 너희 날이 장수하리라'" (신5:32-33) 나 자신이 먼저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유대인 들은 실제로 손목에 말씀을 부착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 말씀은 성구 함에 담아 이마에 붙여 놓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문설주와 바같문에 기록할 지니라" 문의 양 옆 기둥에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토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말씀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하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희브리어로 『브쉰남탄 샤난』입니다. "예리하다"의 강조로 끈덕지게 가르쳐주다"는 뜻입니다. 조각을 하여 새겨 넣듯이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은 가르치는 일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된다고 믿었고 교육을 종교적 의무로 삼게 되었으며 세계 최초로 의무교육을 실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신약교회 이전의 유대인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중심의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도 어렸을 때는 고향 나사렛의회당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셨습니다. 왜? 예수님을 "랍비", 선생이라고 당시의 사람들이 불렀을까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가정 교회에 모였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주고 그 복음을 그들의 삶에 옮기도록 하였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중심의 교회! 이런 교회가 미래가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 교육이 살아 있을 때 교회의 미래가 보장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믿음을 가진 교사 열정을 소유한 교사 희생하는 교사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고 가르치는 교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카톨릭 신부를 영어로 'father'라고 부르는 것은 희브리어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브리에서는 "아버지"가 "교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반드시 아버지가 자녀에게 탈무드를 가르칩니다. 유대에서는 자기 아버지보다도 교사가 더 존귀하며 아버지와 교사가 둘다 감옥에 같혀 있는데 한사람만 나오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이는 교사를 나오게 합니다.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 배움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성서를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신앙 교육은 말씀교육이며 말씀교육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영원한 삶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의 영혼은 결국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그리스도!복음대로 사시므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복음을 가르치므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아가 내가 먼저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명의 길로 들어 섰을 때 비로소 부지런히 가르쳐야하는 신앙교육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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