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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죄의 결과-4가지 단절 (창 0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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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7절 이하를 살펴 보면 원죄의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단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가 단절되었습니까? 4가지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창조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외적인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즉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전의 하나님과의 자연스런 관계가 끊기고 결국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아담과 하와! 그들은 이젠 하나님 없이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 밑에서 갓난아기가 혼자 살라고 떨어져나간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죄의 결과가 치명적입니까?



2.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둘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쩌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독을 위로해주는 동반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처럼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류가 에덴에서 살 때 오직 남녀 두 사람만 살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동산에서 둘밖에 살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저 여자 때문에...'라는 말을 함부로 하게 된 것입니다(12절)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짐작해 보았습니까? 배가 파선되어 무인도에서 부부만 살아남았다면 둘이 싸우겠습니까? 아마 원수끼리 살아남았어도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서로 죽기만 바라고 있었을지라도 이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원수가 병들었다면 지성으로 간호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 지구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무인도와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왜 무인도입니까? 사실상 나 자신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적으로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주위에 있어도 무인도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무인도에서 살면서 왜 그리 싸움이 많을까요? 아직도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무인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놓치고 이국 땅에서 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언어가 그런 대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살고 있는 우리들! 우리 이웃들!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정말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붙여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무인도에 살면서 그 사람들을 죽여버리면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못삽니다. 더 외로워지고 더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서로 위로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 했고 그 둘은 부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3. 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여섯 번째 날에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복을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그래서 자연만물은 원래 인간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 없는 에덴동산에서는 정말 그랬습니다.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는 부드럽고 조화로운 질서의 관계였습니다. 자연은 도저히 인간에게 항명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연이 태풍을 일으켜서 인간을 수백 명 죽이는 참화! 그런 참화가 에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 에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어서 사람을 찌르는 일도 에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서 자연환경으로부터 역풍이 몰아치게 되었고 인간은 그 바람에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자연과의 관계까지 단절되었으니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4. 자기와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질투, 분노, 두려움, 이것들이 심해져서 오게 되는 정신분열증이 생기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 몸을 저렇게 하고 있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런 것들은 영적 자기와 본능적 자기가 단절되어서 오게 된 현상들입니다. 다른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자기마저 단절시켜 버리니 이 얼마나 죄가 치명적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치명적인 죄악 가운데 인간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의 역사를 허락하셨지만 회복의 기회도 마련해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주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범은 따로 있습니다! 그 주범은 악한 사단 마귀입니다! 계획적으로 잔인하게 살인한 주범에게는 회복의 기회가 없지만 유혹된 공범에게는 정상을 참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회복의 기회는 바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죄의 대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했지만 다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한 대가를 마련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의 아들을 죄의 대가로 지불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이 땅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을 보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제거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줄 알고 아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갖가지 계획을 다 사용했습니다. 헤롯의 마음을 조종했고, 광야에서 유혹했고, 수많은 장난을 다 쳤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정수리를 깨뜨릴 줄은 몰랐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면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중단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마귀가 그 사실을 알고 땅을 치고 통곡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와 있는 '원시복음'의 내용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사단은 앞을 가로막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단의 주특기는 뒤에서 발꿈치는 잡는 것입니다. 그 주특기를 살려 예수님의 발꿈치를 잡았지만(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지만) 그것이 바로 자기 정수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계획인 줄 몰랐습니다. 결국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인 주범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곧 사단은 사형이 집행되어 영원히 지옥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유혹된 살인 공범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면 기회가 내려졌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단절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면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하십시오. 그 갈보리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 역사 사형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며 이 땅에 살면서도 온갖 단절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고 단절의 감옥에서 나왔으니 실제적으로 단절의 역사를 청산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보십시오.



1.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2. 인간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허물과 단점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3. 환경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남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4. 자기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마음의 상처와 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견고한 믿음으로 삶의 여유와 용기를 되찾고 산 소망을 가지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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