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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출산한 여인에 대한 규례 (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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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2장에는 출산한 여인에 대한 규례가 기록이 되어 있다. 1-5절까지는 출산으로 인한 부정에 대해서 기록하고 6-끝절부터는 그 정결법에 대해서 말씀한다. 출산에 대한 부정도 남자를 낳은 경우와 여자를 낳은 경우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하고 있다.
먼저 남자를 낳을 경우는 그 산모는 칠일 동안 부정한데 그 부정은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경도할때의 부정은 15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

그리고 제 팔 일에는 남자아이의 양피를 밴다. 그리고 나서 33일이 지나야 산모의 산혈이 정결케 된다. 그리고 정결케 되는 기한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 말고 성소에 들어가지 말라 그리고 여자를 낳을 경우는 산모는 이칠일동안 부정하다. 그 부정은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하다. 그리고 66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케 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은 그 문장 그대로를 알기 쉽게 배열해 놓은 것뿐이다. 그리고 정결법을 보면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산모는 번제와 속죄 제물을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가고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해서 속죄하면 여인이 깨끗해진다. 번제는 어린양으로 드리고 속죄제는 비둘기로 드리는데 힘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둘기 둘로 한 마리는 번제를 한 마리는 속죄제 이렇게 드린다. 예수님 어머니도 결례의 기한이 차서 성소에 나갔을 때 비둘기 두 마리로 제사했다. 가난했다.

사람들은 예수님 행적을 가지고도 복잡하게 이해를 한다. 누가복음에 보면 목자들이 예수님 출생을 듣고 가서 경배했고 그 때는 마구간에 누워 있을 때다. 그리고 결례의 기한이 차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비둘기 두 마리로 제사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동방의 박사들이 와서 경배했는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와서 경배했다.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였다. 그러니까 이 모세 율법대로 하면 결례는 남자이니까 40일 동안 결례를 행해야 된다. 여자가 자기 정결을 위해서 결례를 행해야 되는데 그 때까지는 아직 동방 박사들은 오지 안해서 가난 하니까 비둘기 두 마리로 하고 나중에 동방 박사들이 온 뒤로는 부자가 되어 가지고 그것으로 애굽으로 피난 가는데 사용하고 이렇게 돈 계산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 말이다.

단지 마태복음은 동방의 박사들이 어떻게 경배했는가 하는 경배의 내용에 핵심이 있지 예수님의 집이 이들이 가져온 것으로 부자가 되었으니까 이것으로 여비 해서 애굽으로 갔겠구나. 애굽 가라고 미리 여비 보태 줬구나 그런 해석할 이유가 없다 그 말이다.

그 전에는 가난하니까 비둘기 두 마리밖에 못 드렸는데 마쳐 보니까 가능하기는 하지만 누가복음은 누가복음의 문맥이 있고 마태복음은 마태복음의 문맥이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어느 때 돈이 들어와서 부자가 됐겠는가? 그것을 맞춰서 해석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 그 말이다. 어떻든 예수님 어머니는 비둘기 두 마리로 자기를 위해서 결례의 제사를 지냈다.
먼저는 이 본문을 기록된 대로 분석을 해보고 그 다음에 이것을 이 내용을 따라서 조금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의미를 해석하도록 하겠다.

먼저 설명을 보면 출산하는 여인은 칠일 동안 부정한데 이는 경도할 때의 부정과 같다. 그 경도할 때 부정은 피의 유출이 있는 여인은 경도다. 유출이 그친후 칠일이 지나야 정결하며 유출 기간동안에 그녀와 접촉한 모든 것을 부정케 한다. 그것이 경도할 때 부정이다. 레위기15장 19-30절 까지 있는 말씀이다. 여자 아이를 낳은 여자의 부정한 기간은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의 부정의 두배이다. 한 번은 칠일동안 부정하고 또 이칠일동안 부정하고 또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고 66일이 지나야 깨끗하다. 전부 두배가 지나야 깨끗해진다. 남아를 낳은 아이는 40일이 지나야 정결하며 여아를 낳은 아이는 80일이 지나야 정결하다. 그렇게 해서 두배다.

출산한 여인의 부정은 어떤 의미로 부정하냐면 성물을 먹지 못하면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로 부정하다. 문둥병 자처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진 밖으로 쫓겨난 그런 부정은 아니고 성물을 먹지 못하며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로 부정하다. 항상 문맥적인 의미만 보아야 한다.
즉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하며 그 상에서 먹는 친교로부터 단절된 부정이다. 이것이 이 본문에 대한 설명들이다. 자 이것을 해석을 해 보겠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며 그들을 통해서 경영하시는 생명의 약속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인데 자기 백성의 생명을 주시고 그 역사를 경영해 나가시는 것이다. 피의 유출로 인한 출생은 산모와 아이를 동시에 부정케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유출은 여호와께 부정한데 이는 몸으로부터 분리는 죽음의 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뒤에 보면 이제 여러 부정한 병이 나온다. 어떻든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다 부정이다. 그 부정은 어떤 의미로 부정하냐? 하나님은 생명의 약속을 몸에 두고 있는데 그 몸으로부터 이상이 있으면 다 부정하다. 몸의 정상적인 것이 아니면 부정하다. 왜 거기 죽음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출은 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부정하다. 그래서 모든 유출은 부정한데 피는 이렇게 이렇게 부정하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피가 아니어도 다른 것이 몸으로부터 흘러나와도 다 부정하다. 그러나 11장에서는 땅에 있는 것이 부정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땅과 접촉하는 것이 부정하다. 땅에 있는 모든 먹거리가 부정하다. 그러나 몇 개는 정하다 하는 것이 11장에 문제였다. 그런데 12장에서는 이제 출산에 대해서 말하고 13-14장에서는 문둥병 15장에 유출병 그리고 16장에서 대속죄일의 정결을 말하는데 거기 보면 몸으로부터 무엇인가 이상이 생기면 전부 부정하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죽음의 흔적이다. 색깔이 노릇 노릇 하든지 움푹하든지 엷어지든지 거기서 무엇이 흘러내리든지 그러면 다 부정하다. 그것은 죽음의 표가 거기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생명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죄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의 축복을 통해서 그 생명의 언약을 완결시켜 나간다. 그리고 백성은 이처럼 출생함으로 이 생명을 약속을 받고 누린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피의 유출을 통해서 출생하기 때문에 산모와 아이가 동시에 부정하게 된다. 산모는 몸으로부터 피가 흘렀다는 의미로 부정하고 아이는 그 피에 접촉함으로 부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0일과 40일의 기간이 차면 산모와 아이는 정결케 된다. 정결케 되는 기간은 다른 사람을 부정케 하는 칠일과 성물을 먹지 못하고 성소에 나가지 못하는 40일의 두 단계로 정하신 것은 7일가 40일에 정결케 하며 생명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출24에 보면 6일 동안은 구름이 빽빽하고 제 7일에 하나님이 모세를 산으로 불렀고 40일 동안은 모세가 굶었고 40일이 지나서 생명의 언약을 돌판에 써 주셔서 받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렇게 7일과 40 그것은 구약에서 보면 7은 하나님의 안식이다. 그리고 40일이 되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구원이 있다. 그래서 40일의 굶음과 그리고 40일이 지나니까 생명의 말씀을 기록한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다. 생명의 약속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7일과 40일 두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가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한 것은 칠일 이 칠일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도 부정한데 (40일,80일) 어떻든 그 기간에는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물을 먹지 못한다는 의미로 부정하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와 속죄 제물을 취하고 제사장은 그것은 여호와께 드려서 그동안 여호와께 나아가지 못하며 그 상에서 먹지 못한 여인을 위해서 속죄한다. 그 여인은 깨끗게 되어 성물을 먹으며 성소에 계신 여호와께 나아간다. 그러나 출산이 아닌 경도하는 여인은 제 팔일에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서 속하다. 여기 보면 아이를 낳음으로 부정한 여인은 번제와 속죄제를 지낸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경도함으로 부정한 여자는 속죄제와 번제를 지낸다. 순서들이 그렇게 바꿔져 있다. 그러니까 이 부정한 여인은 구체적인 죄 때문에 무엇이 부정케 되어 하나님 앞에 속죄하고 그런 상황은 아니고 몸의 유출의 부정 때문에 하나님의 성소를 봉사하지 못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유출로 부정한 자는 구체적인 불결로 남을 더럽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속죄제가 먼저 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 여자는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출산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부정은 다른 사람을 직접 부정케 했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의 성물을 먹지 못하며 성소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는 의미로 부정이기 때문에 이 정겨계 되는 기간이 끝나면 제사장은 이제까지 여인이 하지 못했던 제물을 대신해서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성물을 먹으면 성소에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 의미로 깨끗이다.
항상 그 문맥적인 의미만을 이해하면 풀기가 좋다. 그 다음에 피의 유출로 부정하게 된 여인과 동침한 남자는 칠일 동안 그 여인처럼 부정하다. 15장19절 이하를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20장18절과 비교하라는 말은 경도하는 여인과 동침하면 그는 죽어야 된다. 생명의 근원을 드러냈으니까 그는 죽어야 된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경도한 여인과 동침함으로 칠일동안 부정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경도하는 여인을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동침했는데 경도한다. 그러니까 접촉되어 있는 것이다. 모르게 그럴경우는 여인처럼 칠일동안 부정한데 이미 경도가 시작이 되어 있는데 만일에 동침하면 그는 생명의 근원을 드러낸것이니 그는 죽이라고 20장 18절에 그렇게 되어 있다.
피의 유출에 직접 접촉하여 출생한 남자 아이는 제 팔 일에 할례를 행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정결케 한다. 경도한 여인과 접촉한 남자도 칠일 동안 부정하고 마치 경도한 여인을 정결케 하는 것처럼 경도한 여인은 제 팔일에 속죄제와 번제를 비둘기로 드린다. 남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왜 경도한 여인과 똑 같이 부저정하니까. 그리고 그 침상에 접하는 모든 것은 부정케 되고 본인은 칠일동안 부정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 보면 이 피흘림을 통해서 출생한 남자 아이도 제팔일에 정결케 되어 하는데 할례를 행하여 정결케 한다.
여자 아이의 정결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은 옛 경륜에서는 여호와의 은 할례 받은 남자로 구성되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를 어떻게 정결케 하는가 말이 없다. 남자는 할례를 행함으로 정결케 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여자는 할례를 안하니까 하자면 비둘기 두 마리로 정결케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말은 없고 남자아이의 정결법을 말하면서 할례를 행하라 그렇게 되어 있고 여자 아이는 말이 없다. 그러니까 여자 아이도 할례적인 방식으로 정결케 한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언급이 없는 것은 남자가 대표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기 때문에 여자 아이의 정결법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여자 아이를 낳은 여인이 정결케 되는 기한이 남자 아이를 낳은 것보다 두 배인 것은 죄가 여자로 말미암아 시작됨으로 인하여 더하신 해산의 고통의 의미를 새기신 것이며 또 여호와의 백성을 생명의 교제로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왜냐하면 민수기 9장10-11절을 보면 배로 연장하는 경우들이 있다. 본래는 1월 14일이 유월절인데 부정 한자는 2월14일에 하면 된다. 한달 연기를 해 놨다. 부정한 자를 위해서 민수기는 광야 여행 동안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부정에 접촉된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정결케 된 것도 암송아지 제물을 예비했다. 거기서는 유월절도 부정한 자를 위해서 연기된 것이 있다. 여기 봐서는 전체적인 문맥은 여자아이를 낳으면 더 부정하다고 되어 있고 그러니까 여자 아이는 낳은 데다 부정의 기간을 배로 더해 났다.
그러니까 이것은 죄가 여자로 말미암아 시작됐다. 부정이 피흘리는 출생에 있어서 여자에게서는 남자보다도 배로 확대되어 있다. 남자는 칠일이면 할례 받아서 깨끗케 되는데 여자 아이는 14일이 지나야 되도록 되어 있다. 또 여자를 낳은 산모도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이 지나면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는데 여자 아이를 낳으면 80일이 지나야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자 출생에서 부정을 더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딤전2장에 있는 것처럼 죄가 여자로 말마암아 시작되고 그것과 관계가 있는 내용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남자는 칠일만에 할례 되면 여자는 14일 이 확대된 이 문제는 말하자면 거기 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출생에 있어서 부정을 가르치고 있다. 혈통이나 육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된 신약의 교회는 생명의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키는 모든 것은 정복되었으며 교회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나심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속한 신령한 하늘에 속한 할례를 받았다. 신령한 할례를 받았다 해도 되는데 자꾸 신령하다 그러면 정신적으로 오해를 하니까 그리스도께 속한 신령한 할례 이렇게 풀어논 것이다. 신령한 것은 정신적 육체적 이런 것이 아니라 모세 제도에 속한 할례냐 부활하신 예수께 속한 할례냐 하는 문제다. 단어는 똑 같이 있어도 그런 의미로 신령이다.
신약의 교회 출생에 있어서 너는 부정하다고 너는 몇일동안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죽음의 흔적이 없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니까 얼마큼 복된 것인가? 그러나 그 출생에 죽음의 흔적이 있는데 하나님의 성소에 가까이 하지 못하는 죽음의 흔적이 있다. 그래서 칠일 동안은 다른 사람을 부정케 하는 부정이 있고 그리고 40일 동안 성소에 나가지 못한다. 새로운 생명을 출생해 놓고도 왜 새로운 생명을 출생하는데 피흘림이 있었거든요. 죽음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소로부터 단절된 부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칠일이 지나면 남자는 할례를 받음으로 정결케 되고 그는 할례 받음으로 그를 낳은 유출의 부정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계신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칠일에 할례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계산되고 여자는 칠일이 지나면 다른 사람을 부정케 하는 그런 부정은 가져오지를 않는다. 그것이 여자에게서는 두 배로 확대되어 있다.
신약에 있어서는 이제는 혈통을 따른 이스라엘이 아니다. 출생을 따른 그런 이스라엘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아들이 된 것이다. 그것은 새 인류다. 그것은 교회가 그냥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서 출생하시고 그리고 그가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그가 그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할례를 주신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그냥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죽음에 질서에 들어오셨고 그리고 그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셔서 하늘에 속한 새로운 할례를 베푸신 분이다.
이제 신약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계신 새 백성으로 할례 된 것이다. 신약 언어를 쓰면 세례된 것이다. 할례 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 교회는 너는 부정하다 하는 부정의 출생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해산하는 고통이 피흘리는 고통이 있고 죽음의 고통이 있고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런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사망이다. 그런 정죄적인 간격은 없고 이제는 여인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하는 딤전 끝장의 말씀처럼 이제는 새 인류를 출생시킨 것이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상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하늘에 속한 새로운 인류가 출현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신령한 할례를 받고 새 인류가 된 것이다. 남자 여자 차이가 없다. 이제 신약 교회에서 출생은 그런 죽음의 흔적이 없다.
그러나 구약 때는 그 출생에 있어서 까지라도 부정하다. 왜 피흘림이 있고 죽음의 흔적이 있다. 출산의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을 통해서 아이가 출생했기 때문에 그 아이도 부정과 관계되어 있다. 아이는 할례 받음으로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칠일과 40일에다 그것을 새겨 놓으셨다.
이 7일과 40일은 언약의 숫자이다. 거기다가 출산으로 말미암은 사망의 고통 그 부정 그 부정을 정결케 하는 약속을 담아 놓고 있다. 그런데도 여자 아이는 갑절을 해 놓아서 죄가 여자로 말미암아 시작됐다는 간격을 둘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거기 까지 완전하게 미치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대로 산다고 하는 교회들은 여자들은 새벽기도 안하는 교회가 있다. 왜 안하냐? 현대식으로 해석을 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생활 안한 사람이 있냐? 다윗도 봐라 성물을 먹을려면 3일 전까지는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고 어떻게 예배당 가서 기도하겠냐? 그래가지고 새벽 기도 폐지, 예배당이 성소다. 그래가지고 그런 여자들은 주일 낮 예배에도 출석을 못한다. 끝나도록 까지는 그것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다 벗지 못한 것이 성경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새로운 질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새로운 의식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름 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도 어떤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면 그 의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거꾸로 해석을 해 들어와 버린다. 아주 고약하다. 지금도 잘 믿는다는 교회가 그런 교회들이 있다.

지금 레위기 핵심은 하나님이 성소에서 함께 계시면서 성소에서 먹고 마시면서 친교 하시는 언약 적인 삶이다. 그런데 온 땅을 그렇게 성소화 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 앞에서는 성소의 교제를 말하고 11장에서는 땅에 모든 것은 부정한데 아니다. 너희에게 거룩한 먹거리를 주었지 않냐? 그렇게 말하고 있고 출생의 모든 것은 부정한데 그들을 정결케 하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모든 삶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 적인 교제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의 문제다.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모든 죽음은 끝났고 이제는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주의 살과 주의 피에 참여하는 생명이고 이제는 남자 여자 차이 없고 아무리 큰 고통 중에도 죽음의 흔적은 없다. 왜 예수께서 친히 여인의 피를 통해서 출생하시고 그가 할례 받으심으로 율법 아래 나으셨을 뿐아니라 그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늘 보좌에 취임하심을 통해서 새로운 할례의 시대를 열으셨다. 이제 신약 교회 여자들은 아이를 낳음으로 고통을 당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딤전2장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들을 낳아도 칠일 전에는 이 아이도 부정한 것이다. 어머니의 부정 때문에 어머니의 몸에 피흘리는 죽음의 흔적이 있다. 피의 유출이 있으면 거기에 참여해서 아이에게도 죽음이 있는 것인데 할례 하면 그는 그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정결케 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출생한 것이다.

성경에 구원의 언어들이 전부 레위기 출애굽기 언어다. 레우기는 우리의 전 삶을 성소에 삶으로 성화 시킨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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