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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의 생애 (창 2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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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생애(창 26:1-22)-박조준목사
 
오늘 저녁에 주신 말씀 첫 절을 읽어 보십시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8231;&8231;&8231;&8231;&8231;&8231;” 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때 첫 흉년은 이미 생각한 바 있는 창세기 12장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땅인데,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어야겠는데 왜 그 땅에 기근이 심했습니까? 왜 흉년이 들었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섭리 속에서 이삭을 시험하셨습니다. 이삭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데 식량도 제공해 주지 못하니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약속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고 의심할 지경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 땅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땅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려면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 가나안 땅 자체가 하찮게 보이면 보일수록 그는 그 땅을 더욱 귀중하게 평가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삭은 가나안 땅이 크게 흉년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자기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의 표시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은 가나안 땅을 하늘나라의 영원한 축복의 한 모형으로 평가하기를 배운 것입니다. 어떠한 엇갈린 섭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가치는 결코 축소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 속에 있는 이삭을 말씀을 통해 지도해 주셨습니다. 사실 이삭은 우선 먹을 양식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식을 얻기 위해 어디로든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러한 곤경에 빠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삭도 애굽으로 갔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애굽으로 가지 아니하고 ‘그랄’ 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삭은 이런 어려운 때 어느 곳으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심사숙고해 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스럽게도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로 하여금 결정을 하게끔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삭에게 있어서 참으로 넘치는 만족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절에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46장 3-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 때에 흉년을 당했는데 그때 하나님은 야곱더러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흉년을 당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 보세요. 아브라함이 흉년이 들었을 때는 어떠한 길도 지시하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역사하심이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신앙이 대단히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밀접한 친교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모든 땅, 모든 조건이 한결 같이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잘 견딜 만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글쎄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 때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너무 부모가 귀하게만 키워서 소위 과보호 상태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움에 대한 면역이 적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굽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시련과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애굽으로 보내지 아니하신 것 같습니다.
야곱은 어떤 고통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애굽으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 7절에 “믿음의 시련은 결국 그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람들을 시험하시되 그들의 힘에 맞게 정도에 따라서 시험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힘든 시험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만한 수준의 시험을 받으실 만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인 줄 믿으시고 그 시험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말한 것처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신 축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그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만 하면 우리는 어디서나 만족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새로운 계약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누누히 약속하셨던 계약입니다. 가나안 땅과 수많은 자손과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반복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역경에 빠지거나 자기 부정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던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에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행한 순종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순종이 그의 집안에 하나님과의 계약이 상속되게 된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을 들어보세요. 3-5절에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했다. 너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약속이 틀림없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여기서 크게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에게서 훌륭한 평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때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을 체험하게 되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복종한 하나님의 뜻을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내 말,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라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보편적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자연의 본래적인 법을 지켰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관해 계시된 율법을 순종했고, 특별히 할례의 법을 따랐고, 그의 고국을 떠나야 한다던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특별한 명령도 모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테스트까지 다 통과했습니다. 그럴 때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하나님께 순종한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 그들의 신앙 깊은 부모와 더불어 하나님의 계약의 은총과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6절 이하에는 아내를 부인한 이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이제 애굽으로 갈 생각을 아예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 순종하여 자기가 태어난 땅, 그 땅에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만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언젠가 당했던 유혹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자기 아내를 자기 아내라고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누이라고 말하게 된 그런 유혹이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세요. “그 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했습니다.
리브가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죽여 버리고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해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를 그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처럼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아내의 덕망을 크게 훼손하는 이런 죄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훌륭하고 착한 사람도 때로는 큰 실수와 어리석은 일을 범한다고 하는 사실을 이삭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실수를 하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옳습니다.
더구나 사람들에게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약점과 결점까지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도 때때로 그들의 탈선한 발자취마저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이삭이 속인 사실이 어떻게 아비멜렉 왕에게 발견이 되었습니까? 8절에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했습니다.
왕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았습니다. ‘껴안다’는 말은 이삭이라는 그의 이름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로 함께 있어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즐겁게 해 주는 관계가 부부 관계입니다. 사람이 아무런 긴장 관계가 없이 허심탄회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자기 아내와 자기의 자녀들 뿐입니다. 그밖에는 어디서도 그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이 사실을 알고 이삭의 속임수를 비난했습니다. 9절에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의 변명이 얼마나 천박하고 잘못되었습니까?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다”
10절에 아비멜렉 왕이 뭐라고 책망했습니까?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이삭의 잘못 때문에 블레셋 사람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이삭의 질투와 편견이 매우 부당하고 근거가 없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그의 가족은 왕의 특별한 보호 아래 두고 이삭이나 그의 아내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리라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거짓은 다만 순간적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이 가면 밝혀집니다. 그리고 죄가 죄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죄의 시작을 피해야만 합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믿는 사람이 죄를 범하면 믿음 없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람들이 다소 부족한 것이 있어도 그의 사람들을 해치게 되면 그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위험이 온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시편 105편 14-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치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옛 우물을 판 이삭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축복하셨습니다. 12절-13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자기 자신의 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의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수확의 증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백배나 거둬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기가 강조되어 있는데 그렇게 많은 수확을 한 때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던 바로 그 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흉년이 들어 거의 거둬들인 것이 없는데, 이삭은 백배나 되게 그처럼 많은 것을 거둬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65장 13절에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라”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4).
시편 37편 19절에 보면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했습니다.

이삭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곡식만 심은 것의 100배를 거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축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고용인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14절에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상정입니다. 사람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시기를 당하고, 비난과 손상을 입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사람으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되고, 비난받아 마음이 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해 보십시오. 나를 시기하고 비난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더구나 시기는 인간성의 타락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것은 정말 불쌍한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삭을 시기한 나머지 어떻게 했습니까? 15절에 보니까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했습니다. 심술궂고, 앙심 품고 한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우물의 물을 먹여야 할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사용하도록 내버려두기가 싫어서 그랬습니다.
결국 이삭은 블레셋 그랄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 왕까지 동조했습니다. 16절에 보니까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했습니다.

그때 이삭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 때문에 그가 그들과 맺은 약정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지금 자기가 그 땅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 토지를 개량하여 많은 수확을 올렸다는 사실을 들어 고집하지도 않았으며, 비록 이삭이 그 지방에서 큰 사람이 되었어도 힘으로 그들과 겨루지 않았습니다. 아주 평화롭게 그 땅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의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익을 위해서 다투는 것보다는 우리의 권리나 편익을 양보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이삭은 그랄 지방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나 그들이 쫓아오며 괴롭혔습니다. 우물을 파면 와서 또 메우고, 다투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거부가 되었음에도 이전과 같이 자기의 가축을 잘 돌보며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사람이 커져도 자기가 커졌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 정말 큰 사람입니다. 이삭은 불편한 생활을(이전에 비하면) 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가 우물을 팔 때마다 많은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의 우물을 팔 때 반드시 부정과 반항에 부딪치게 되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판 첫번째 우물을 에섹(다툼)이라고 하고 두번째 판 우물을 싯나(대적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나는 싸움을 피하려고 하지만 적이 와서 괴롭힙니다.
이삭은 얻으려는 싸움을 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물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도 이삭이 받은 축복과 같은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이삭의 생애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가 살던 땅에서 이사를 할 때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우리도 한걸음 한걸음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삽시다.
이삭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떨결에 실수해서 거짓 죄를 짓고 이방 사람에게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넘어질까 조심합시다. 잘못했으면 뉘우치고 고치셔야 합니다. 넘어졌으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넘어집니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우물을 파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나중에는 큰 축복이 임합니다. 오늘 저녁 이삭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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