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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에게 축복이 계속되다 (창 25: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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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1백75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마감 되었어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계속 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겠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은 그후에도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시편 90편 10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보통 잘 살면 70세, 건강하면 80세까지 삽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70∼80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지만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약속과 복은 우리 육체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한 시대와 한 사람에게 끝나지 않고 계승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가정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자녀에게 계속되기를 바라고 온누리교회가 받은 복이 다음 세대와 다른 교회의 사람들에게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아브라함은 사라와 사라의 몸종 하갈 과 후처 그두라로부터 여러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아브라함의 복과 언약은 오직 약속의 자녀인 이삭에게만 계승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묵상하게 되는데 계승은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축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정이 계속되지 않으면 축복과 약속은 사라져 버립니다.

이삭은 40세가 될 때까지 혼자 살다가 리브가를 만나서 결혼합니다.
‘아람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며 라반의 누이’라는 표현을 통해 리브가는 세속적인 가나안의 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받은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에 이삭이 결혼하지 않았다거나 세상적인 딸하고 결혼했다면 아브라함의 복은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소중함, 즉 가정은 축복과 약속의 도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최대의 비극은 가정의 붕괴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와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곳곳에서 이혼은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비정상이 되었고 오히려 동성애자들이 판을 치며 떳떳하게 정치세력을 만들어 가고있는 사회 변혁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만나서 살면 축복이 끊어지고 저주가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됩니다.
사탄은 영리하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끊는 방법으로써 모든 인류를 이혼과 가정 붕괴로 유도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술수에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교회가 분열하고 파괴되는 것 또한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교회의 분열을 막아야 합니다. 교회는 분열시켜서 두 개의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깊은 상처가 남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쉽게 결혼하기 때문에 쉽게 이혼합니다. 우리는 결혼의 소중함을 배우지 않았고 자녀들에게 결혼과 가정의 절대성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이 없을 때에 심각하지도 않은 상황으로 쉽게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본인들만이 아니라 자녀들과 자신의 부모님들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가정붕괴의 또 다른 면을 보면 사람들이 귀찮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다는 이유로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있어야 복이 이어집니다. 자녀를 낳지 않고 산다는 것은 자기의 쾌락과 행복의 추구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으로써 그 사람의 축복은 끝나는 것입니다.

사회의 회복은 가정의 회복에 있고 행복한 가정은 결혼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결혼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시험해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축복의 통로인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할 때 이혼할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끝까지 애쓰며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온누리교회의 프로그램중에서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가정사역’ 프로그램입니다. 그 안에는 ‘아버지 학교’라는 사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부모자격도 없으면서 그냥 부모가 된다고 착각 합니다. 그러나 엉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가정에 위기가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공부도 하면서 다시 한번 가정의 소중함을 가꿔 나가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하나님이 택한 여자와 결혼한 이삭의 축복된 가정 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게됩니다. 그 문제는 아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무리 하나님이 택하시고 약속하시고 복을 주신 결혼이라도 문제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행복하고 이상적인 결혼 같아도 실제로 살아 보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기적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상적인 가정은 ‘기도하는 가정’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애를 썼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부부를 이해합니다. 저는 매맞는 아내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녀들을 보면 당장 이혼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이혼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만 할 것은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가정이라도 이삭과 리브가처럼 아기를 낳지 못 하거나 아이는 잘 태어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부부가 몸이 약해서 늘 고통받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삭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삭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주 중요한 결론을 하나 얻습니다.
행복한 가정, 축복된 가정의 비밀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문제를 극복하고 뛰어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못할 때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리브가가 그들을 낳았을 때 이삭이 60세였다는 것을 보니 분명히 그들은 20년 동안 아이 없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25년 동안 자식을 기다리며 방황했고 믿음이 없어서 이스마엘이라는 서자까지 낳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아기가 없는 문제와 같이 부족한 것이있거나 안되는 것이 생길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여기 하나님의 비밀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20년 동안 아이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고 기다려왔던 이삭과 리브가를 통하여 ‘끝까지 기다리며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돈이 없는 것도, 건강을 잃은 것도, 자녀가 없는 것도 아니라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정은 아무리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도 흩어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은 기도를 잃어버리고 기도를 포기할 때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곤고하고 외롭고 힘을 잃어버렸린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도하기 시작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지나온 과거의 모든 상처들은 치유될 것이며 저주가 축복으로 바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21절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여기서 한 가지 더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란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나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도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꿈쩍도 하지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하나님의 시간을 보고 있는 것 뿐입니다.
때로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이삭을 보십시오. 20년 후에 그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당신이 한 기도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어딘가 저축되어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너의 자녀를 내가 충만하게 해주리라’고 하는 약속은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애에서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했고 그가 소유한 땅은 ‘막벨라’라고 하는 굴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계속됩니다.

기다림을 통하여 응답되는 기도

이삭의 입장에서 보면 20년을 기다린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1, 2년을 기다리거나 5, 6년까지는 기다릴 수 있지만 20년을 기다린다는 것은 믿음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믿는 자만이 기다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끝까지 기다리며 포기하지 말고 최후의 순간, 죽는 순간에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한 것은 백일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셨기 때문에 그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기도해 놓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래놓고 ‘말도 안되는 기도를 내가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마태복음 28장을 강해할 때 하나님이 ‘2천명의 선교사와 1만명의 사역자’라는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그 비전을 우리 교인한테 선포했을 때 저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어떻게 한 개교회가 2천명의 선교사를 보낸다는 말입니까.
누군가는 1만명의 사역자를 세우려면 10만명의 교인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또 2천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것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그때는 그런 사실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4백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이 꿈들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창립할 때에는 하나님이 제게 이런 기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게 청년 2천명을 주십시오. 세계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겨우 12 가정이 지하실에서 모일 때였는데 제가 그 기도를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하나님이 청년들을 메뚜기 떼처럼 보내주셨습니다.

기도는 기다림을 통해 반드시 응답됩니다. 자기 중심의 생각을 빼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보면 불가능은 없는 것입니다.
역대상 16장 11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정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 죽을 힘을 다해서 기도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십시오. 가정을 지키는 비결은 기도뿐입니다.
40세에 이삭은 기도했고 드디어 리브가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22, 23절을 보십시오.

아이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2, 23절을 보면 ‘왜 하나님은 아랍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싸우게 하셨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합니다. 그런데 쌍둥이가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싸웁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역사속에서 갈등을 할 것이며 큰 자가 작은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잘 살펴보면 이미 아브라함 때 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실수로 이스마엘을 낳는 바람에 두 국민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또 큰 아들인 이스마엘이 주인공이 아니고 둘째 아들인 이삭이 주인공이듯이 다시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되는 것으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사건이 재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약속의 자녀를 통하여 그 많은 시련과 역경과 갈등속에서 계속되어 메시야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됩니다.
두 민족이 갈등하며 형이 동생을 섬겨야 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제일 끝 책인 말라기 1장 2, 3절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음 전파의 긴급성

말라기 1장 2,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정말 사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은 갈등과 고민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편애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관심의 촛점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입니다. 이 본문의 관심은 바로 여러분인 것입니다.‘에서를 미워하였고 야곱을 사랑하였다’라는 말은 편애하였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하며 축복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서열상으로 보면 야곱이 축복의 그릇이 아닙니다. 에서여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는 메시지는 복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고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의 자식이었는데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든 면에서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는 무당 자식이며 불교와 유교의 지배를 받았고 하나님과는 상관 없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1백년 전에 외국의 선교사들이 성령의 불을 받고는 성경책 하나 들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무지하고 하나님도 모르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병원과 학교도 세우고 예수도 알게 해주어 오늘 날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기적같지 않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옥가도록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1백년 전이나 2백년 전의 조상들은 본질상 다 진노의 자식들이었고 이미 죽기로 결정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나를 살려주신 것뿐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이고 ‘왜 나는 살려주고 저 사람은 살려주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이 놀라운 메시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한 마디 부르짖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그래서 전도하고, 그 좋은 직장 다 놔두고 선교사로 미전도종족에게 뛰어가는 것입니다. 휴머니즘 때문이나 자비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구원의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빨리 가서 전도해야 되겠다. 빨리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겠다’는 긴급성과 절대성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가 떠오롭니다. 한 선교사가 무지한 백성에게 가서 말을 배우고 사전을 만들고 성경을 번역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복음을 알고 구원받게된 한 노인이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우리 선조들이 구원을 받았을 텐데. .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셨고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4절에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구원의 은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온누리교 회를 통해서 축복이 계속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도 이 메시야의 구원의 축복이 다음 세대에 다른 민족에게 전달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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