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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보기도의 축복 (출 1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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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의 축복(출애굽기 17:8-15)

우리는 그동안 '광야의 축복' 두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번째 '광야의 축복'은 마실 물이 없었을 때 하나님이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어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쓴물이라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두번째 '광야의 축복'은 먹을 양식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같이 만나를 쏟아주심으로 풍성히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광야는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며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 마실 물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중에 하나는 악한 세력과 만나서 싸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만나서 공격당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 전쟁을 하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8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스라엘민족은 만나를 경험하고 난 뒤 행진을 계속하다가 르비딤까지 왔을 때 유목민으로서 토착세력인 아말렉을 만나 그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광야에서 전쟁 상태라는 또 하나의 위기 직면

우리들이 겪는 일들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지만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만일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서울 불바다'라는 소리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먼저 공격할 곳이 여의도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거의 끝나겠지요. 전쟁은 일방적인 상처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두 다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런 심각한 전쟁상태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이런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전쟁의 위기를 극복해 나갑니다.
모세는'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켜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순종하면 모든 여건이 좋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 아닌 광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사실 당황할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모세였을 것입니다.
먹을 물과 음식이 없었고, 그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곧 바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것이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이런 것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백성을 이끌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는 눈앞의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먼 약속을 보지 못하고 눈 앞에 있는 현실만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라면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를 봐야 합니다.
모세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두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의 첫번째 조치는 여호수아라고 하는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 백성들 가운데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한 후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조치는 모세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 임하게 하고 모세는 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두가지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우리들은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만났을 때 곧잘 양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한 극의 방법은 현실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현실의 불만 끄려고 애를 쓰다가 다른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극단의 방법은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금식하고 산에 가면 만사형통이라 생각하고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아무런 조치도, 최선도 다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산에 가서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양극단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이 두가지의 방법을 다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사람들을 동원하여 최선의 전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전쟁만 잘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기가 있고 전술이 탁월하며 사람이 많으면 전쟁에 승리한다고 세상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에스겔서 큐티를 하면서 두로나 에돔이 왜 망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해군력과 경제력과 나라의 부강함을 믿고 자랑했습니다. 이런 것들만 있으면 국가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루아침에 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군사전략이나 군인, 무기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는 윤리나 도덕이 없습니다. 생존 즉, 사느냐 죽느냐라는 문제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고 살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냉엄한 전쟁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러한 현실앞에서 비단 전쟁은 아니더라도 생존경쟁인 삶의 모든 투쟁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깨닫게 되길 원하십니다.

 

현실만 바라보는것과 현실도피 위한 기도는 잘못된 양극단적 사고

일단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세의 믿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로 보낸 후 스스로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산에 올라가면 무슨 문제든지 다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에 사람을 보내고 나서 산에 올라가는 일이 동시에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악한 사람을 도말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도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 아들이 정신차려서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공부도 하지 않았는데 '시험볼때 환상을 보여주셔서 답을 가르쳐 주옵소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합니다.'우리 아들이 연필을 굴릴 때 정답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가끔 하나님이 그런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도합니다. 급할때는 자기 자식이 형편없는 짓을 했지만 다 눈감아 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차려서 똑똑히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녀가 잘되게 해달라거나 횡재를 얻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정상적으로 학업에 열중하도록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예수님 믿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도피하면 안됩니다. 현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기도원 가고 금식하는 것이 우리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현실에 대해서 게으르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떠맡기고 나는 하나님께 간다.' 이것은 광야에서 사는 성도의 바른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과 위기와 고통과 직면해야 합니다. 그것에 직면하면서 그 위기와 고통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원수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모세가 승리하는 비결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러면 우리는 두가지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현실의 전쟁과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것 중 어떤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지나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목표입니다. 이상의 성취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꿈을 가지고 이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이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방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불행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이상과 꿈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있어 미래의 꿈과 이상을 빼앗아 버리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상이 있습니다. 통일을 가져오게 하고 민족을 살리고'2천/1만 비전'을 통하여 예수믿지 않는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이상과 꿈입니다. 우리는 이런 꿈을 가지고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전쟁이란 냉엄한 현실, 자기 동족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의 발걸음을 전쟁터가 아닌 산꼭대기로 향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렇게 산꼭대기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만 같아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모세와 같이, 그렇게 여러분도 산으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본질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약속을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일이든지 결재는 제일 높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결재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에 이기냐 지느냐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전쟁은 사람이 하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승패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가 해볼방법 다 해보고 실패하면 그때서야 새벽기도회에 나옵니다.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 사업이 잘될 때, 만사형통할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엎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산꼭대기로 먼저 가십시오.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히 그 분 앞에 나아가면 광야의 삶이 더욱 축복과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행하고 아말렉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갔는데 여기에서 관심있게 보실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갔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동행한 아론과 훌 사역과 기도위한 신앙의 동역자 필요

기도에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신앙생활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버틸 때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내가 힘이 약해질 때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원리입니다. 그래서 순과 공동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순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순장을 잘못 만나면 그 순은 죽습니다. 모든 순장님들은 회개하시고 그 순을 천국으로 만들 책임이 있음을 이 시간에 깊이 깨달으십시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세라 할지라도 아론과 훌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중요한 사건도 있습니다.

우리 온누리교회가 한동대사건으로 겪었던 일들은 흔히 있을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 몇 번 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영적사건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지나왔던 일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비상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에게도 일상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태풍앞에 선 것같은 위기도 있습니다.

위기 만났을 때 현실을 있는그대로 직면하며 땀방울이 핏방울되도록 기도힘써야

예수님에게도 이런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무겁고 힘들었기 때문에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위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이러한 중보기도의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땀이 피가 되고, 사느냐 죽느냐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그런 위기가 왔을 때 적당히 기도하면 안됩니다. 금식하며 새벽기도하며 하나님께 생명을 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혼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습관에 따라 제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세번이나 졸았습니다.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조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친구가 돈이 많고 지식이 많고 여러분을 명예롭게 해주는 사람이기 보다 기도해주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온누리 성도 여러분,가까이 사귀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두세명이 짝을 지어서 무릎꿇고 기도합니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무릎꿇지 못합니다. 기도를 간단히 끝내고 맙니다.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보다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이 기도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영적전쟁에서,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것때문에 모세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11, 1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1절과 12절에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들을 배우게 됩니다. 먼저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표현을 보십시오. 모세는 산꼭대기에 손들기 위해 갔습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두손을 높이 들었다는 의미가 있으며 또 다른 의미는 산 밑에서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와 자기 백성들을 향해 손을 폈다는 것입니다.

 

두손 높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싸우는 동족 축복하는 모세

만약에 모세가 하나님에게 손을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손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손들고 기도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중에 솔로몬이 있습니다. 선친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짓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솔로몬이 그 집을 짓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멋있게 잘 짓고 봉헌식을 합니다. 봉헌식을 하고 난 다음에 그는 봉헌기도를 합니다. 그가 기도한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다윗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다 이루어 주십시오'라는 것이 첫번째 내용입니다.
혹시 여러분 부모님 중에 예수 잘 믿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하나님 저희 아버지와 맺으신 약속을 다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솔로몬이 기도한 것을 보니까 효과가 있는 기도인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기도의 내용은'하나님은 건물보다 크신 분입니다. 어떻게 온 우주를 지으신 분이 인간이 지으신 건물 안에 계시겠습니까? 제가 지은 건물에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겠습니까마는 이 집은 하나님의 집이니 여기서 기도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 응답하여 주십시오. 범죄자가 범죄하고 와서 기도할 때 용서해 주시고 원수에게 패했을 때 와서 기도하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포로생활에서 기도할 때 들어주시고 염병이나 기근이 닥칠 때 드리는 기도를 다 들어주십시오. 이 제단에서 기도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응답해 주십시오. 하늘문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눈을 여시고 이 기도를 다 들어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기도를 묵상할 때마다 참 기분이 좋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하는 기도를 다 들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니까 정말 그럴 것 같더라구요. 저는 여러분이 이 제단에서 드리는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될 수 있도록 솔로몬과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새벽마다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 우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영적인 태도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양면성을 다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모세는 손을 들고 백성들을 향해 축복하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언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을 잘 고치는 수사 한분이 한국에 온적이 있었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병고치는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성경대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병의 원인을 미움으로 봅니다. 그래서 용서하라고 합니다. 원망하거나 마음에 갈등이 있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예수님 보혈의 이름으로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시키고 '성령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한 후에 그분이 하는 일은 손을 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때 2층에 있었는데 제 옆에 앉은 형제가 갑자기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뚫렸어! 뚫렸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몇년 동안 막혔던 코가 뚫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손을 들고 30분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안수하지 않아도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고 백성들을 축복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들도 손을 들고 기도하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집을 축복해 주십시오. 직장에 다니십니까?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들고 축복해 주시고 북한을 향해 축복하고 우리 민족을 향해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심정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손을 들어 축복하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만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11절과 12절에서 보는 놀라운 진리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손에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은 전술이 좋아야 하고 무기와 군인과 지형이 좋아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영적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세상은 변할 것이고 기도하기를 그치면 세상은 어두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부르짖으면 이 민족이 살 것입니다. 2천명의 선교사가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팔이 아픈게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내가 새벽마다 기도해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온누리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해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면 어떻게 온누리교회가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온누리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교도 많이 하고 선교사도 많이 보내고 헌금도 잘하고 위원회도 많이 있고 많은 사역도 잘 해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온누리교회의 약점은 기도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새벽기도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새벽기도회에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본당을 채운 이 정도 수의 성도는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이기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적군이 이기는 이 영적인 현실앞에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11절과 12절을 보면 기도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교무실앞에서 손들어 보셨습니까? 저는 벌받느라고 많이 했습니다.
손 오래 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만 오래하라고 하면 좋겠는데 손들라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그냥 집에서 기도하면 좋겠는데 꼭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라고 하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기도하다가 힘이 들어서 손을 높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힘이 들어서 손이 아래로 내려오면 이스라엘 군대가 졌습니다. 이것은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와서 아예 손을 받쳤습니다. 내려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모세는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입니다. 아론과 훌이 없었더라면 그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장로님과 목사님에게 '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건강도 좋지 않고 인간적으로 참으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날 붙잡아 주셔서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같이 힘을 합해서 옆에서 손을 붙잡아 주지 않으면 어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저의 손을 붙들어 주지않고 기도해 주지 않고 저의 약점을 보완해 주지 않으면 온누리교회 목회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서 발견하는 놀라운 영적진리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손 내리지 말고 정 힘들면 돌을 가지고 받쳐서라도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승리합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2절의 말씀에서 '해가 지도록'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생활 중에 일상적인 사건이 있고 일생에 한두번 일어나는 사건은 있습니다.

영적전쟁은 해질때까지 '여호와 닛시' 광야의 끝은 하나님의 승리

그런데, 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그날 하루에 있는 일입니다. '해가 질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만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에 한두번 생기는 일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끝납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타협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믿음이 약해지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11절과 12절에서 발견하는 사실은 영적전쟁은 레슬링과 같다는 것입니다. 권투는 떨어져서 싸웁니다. 그러나 레슬링은 몸을 붙여서 싸웁니다. 레슬링 경기를 보고 있으면 한사람이 잘 이기다가도 금새 역전이 되어서 지곤 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항상 승리만 있거나 항상 패배만 있지 않습니다. 지금 패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전쟁입니다. 당겼다 밀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만 주시지 않습니다. 복과 고통을 함께 주십니다. 어떤 때는 축복을, 어떤 때는 고통을 주십니다. 영원한 축복은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저주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이것이 13절입니다.
결론이 이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라톤은 출발이 중요하지 않고 끝을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마라톤 경기하는 것을 보면 항상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뛰어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카메라가 그 사람을 비춰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30분을 지나지 못해 뒤처집니다. 일등할 사람은 언제나 호흡을 잘 맞추면서 속도를 조절하다가 마지막에 힘을 다해서 결승점에 골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등할 수도 있고 뒤처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플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고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 짧은 성공과 실패, 건강과 병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이 다 결정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영원한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우리의 이상이요, 목표입니다. 광야는 순간이며 수단입니다. 다 지나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을 하나님이 승리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가리켜 14절에 '여호와 닛시'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광야같은 세상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는데 난 어떻게 사나? 난 직장을 잃었는데, 난 암에 걸렸는데, 우리 가족을 보면 눈물 밖에 나는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광야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광야에서 식탁을 만들어 놓으시고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됩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40년동안 비같이 쏟아 부어 주셨던 만나를 먹을 것입니다. 원수가 여러분들을 쳐서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여 주십니다.
이 축복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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