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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의 타협안 (출 1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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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타협안(출 10:24-29)

우리는 자신이 과연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가장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의 말씀이 얼마나 나에게 유익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과연 로마서5:12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이 죄인이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관계가 없는 자이며, 비록 사람들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는 구원과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당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셨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애굽(이집트)땅에 죽음의 재앙이 있었을 때 오직 피를 바른 집만이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이 있다면 그도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아니면 모태신앙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로부터 건져내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사망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가 히브리서10:10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드려지심으로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아고 계십니까? 오늘 바로의 타협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어지는데 있어서 사탄이 어떻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땅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재앙이 들이닥치자 모세와 아론을 불러놓고 타협을 합니다. 그의 타협은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된 삶을 살고자 했을 때 다가오는 유혹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파라오)는 어떤 제안을 하고 있을까요?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출애굽기8:25-27)

바로(파라오)의 첫 번째 타협안은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적당히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과거 유교적인 방식을 따라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만 안 하면 되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의 어느 곳에 술을 먹지말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이 있느냐?'며 과거의 습관들을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예들은 대표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탄은 많은 방법들을 동원하여 우리가 과거의 시간과 자리들로부터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빠져나와야만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 같이 세상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자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하고, 철학을 하는 자들에게는 철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전도를 하고, 심지어 창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괘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말이 듣기에는 그럴 듯 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된 삶, 즉 거룩한 삶의 모범들을 통하여 소금이 되라는 것이지 그들과 섞여서 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가 더 이상 그들이 머물러 있을 곳도 아니며, 약속된 땅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땅인 가나안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이 땅은 더 이상 우리가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 머물면서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 땅에서의 소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을 땅을 향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출 8:28-32)

파라오의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제안에 대하여 모세가 거절하자 그는 다시 두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의 또 다른 제안은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아직도 그들을 자신의 종으로 두고 싶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의 기본적인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는 결코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놔두지를 않습니다. 그는 누구든지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그들의 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거짓을 통해서 자신들의 곁에 머물러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사탄의 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다시 그들의 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이후에는 누구도 광야에서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많은 불순종으로 인해 심판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완전히 분리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 미련을 두고 그 자리를 되돌아본다면 '롯의 아내'와 같이 완전한 구원을 눈 앞에 두고서도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것만이 우리를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너희 남자들만 가서 주를 섬기라(출애굽기10:1-11)

파라오의 제안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가서 제사를 드리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집트 땅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의 제사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수하에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두려는 계획을 가지고 타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끊임없이 타협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다른 어떠한 것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계략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과 이미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세상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좋지 못한 습관들을 유지한채로 살아간다면 그는 또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과의 완전한 분리를 원하시고 계시듯이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려는 것과의 단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 지식이나 권세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양떼와 소떼는 머물러 두고 떠나라(출애굽기10:24-29)

파라오의 입장에서 가축들을 보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심정보다도 더욱 절박한 상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미 앞 서 당한 많은 재앙으로 인하여 가축들이 대부분 죽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즉 현재 이집트 땅 안에도 얼마 되지 않는 가축들만이 살아남아 있는 상태에서 모세는 가축을 가져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지만 더 이상 재산상의 손해를 입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는 이집트 안에 있는 모든 식물과 가축들을 죽여놓고는 남은 것 마져 가져가겠다는 모세가 얄미워 보일 수도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차원의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를 위해서 짐승을 대신해서 제물로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죄를 대신할 짐승이 없다면 그들은 여전히 죄인의 상태에 머물게 됨으로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백성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가축들을 데려가야 한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을 자신들의 죄 문제를 위해서 반드시 가축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말하고 있는 가축들을 대신해서 죽으신 분입니다. 즉 그분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운데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믿음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의 믿음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더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노림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죄 문제의 해결이 없이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한 행실과 헌신이 그들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많은 덕을 쌓으면 지옥에 있는 이들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곳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죄 문제의 해결이 없이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죄 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의 해답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이 없는 구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감격만을 가지고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고 계신지를 돌아보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분리는 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속이 하늘에 있음을 믿고, 주님의 나라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분리된 삶을 살아감으로서 주님의 나라에 이를 때에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부디 남은 생애를 주님과 더불어 경건의 삶을 지속함으로서 보다 풍성한 생애를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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