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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44일을 더 버티다가 먹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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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 기슭에 ‘임마누엘 수도원’이 있었다. 이 수도원은 돌아가신 남편 목사님이 물려 준 집을 수도원으로 개축해서 노 사모님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하루는 어느 목사가 40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이 수도원에 찾아 왔다. 금식기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이 목사도 보따리 하나만을 덩그러니 들고 와서는 말했다. “사모님, 제가 40일 금식기도 하러 왔으니, 40일 후에나 다시 뵙겠습니다.”그 말을 한지 10분도 채 못 되어 보따리를 다락에 팽개치고는 산 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40일이 지나자 그가 탈진 상태로 기어서 돌아왔다. 사모님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듯, 미음을 쑤어 놓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러나 금식한 목사는 생각이 달랐다. “사모님,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셨는데, 나 같은 죄인이 40일만 금식해가지고 되겠습니까? 저는 나흘 더 해서 44일을 금식해야겠습니다.”사모님은 말린다고 들을 사람 같지 아노아서 내버려 두었다. 이윽고 나흘이 더 지난 후에 그 목사는 거반 다 죽어가는 몸으로 돌아왔다. 사모님은 다시 미음을 쑤어 정성으로 대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목사는 한도 끝도 없이 죽 그릇을 비우는 것이었다. 위험하다고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이른바 배고파 환장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계속 아홉 그릇을 비우더니 숟가락을 던지고는 늘어지게 찬송을 불렀다.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목사는 한절도 다 못 마치고 픽 쓰러지더니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참된 금식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로 생각해야지 그 자체로 어떤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보이기 위한 금식일 뿐이지 않겠는가?(마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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