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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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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는 재물의 욕심으로 인간성이 파멸되고, 한 순박한 여인을 죽음으로까지 이끈 탐욕의 결과와 허무함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다다 그녀는 넉넉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백치였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다 아다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논밭과 돈을 가지고 시집을 갔지만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남편은 그녀보다는 돈과 재물에 더 욕심이 많았기에 그녀는 내어 쫓김을 당하였고, 다시 노총각인 뱃사공인 수룡한테 시집을 갑니다. 돈이 불어나자 수룡이는 아다다를 외면한채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의 행복을 빼앗고 두 번째 사랑마저 파괴해 버린 이 원수 같은 돈, 이것을 바다에 던져 버리면 내 행복도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전 뭉치를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이것을 본 수룡이는 미친 듯이 돈을 주우려고 헤매고 다니더니, 언덕으로 올라와 아다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발길로 찼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허물어지는 인형처럼 바닷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수룡이는 주먹을 움켜 쥔 채 굽실거리는 물결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넋을 잃고 서있었습니다.... 재물의 탐닉으로 인해 돈과 인간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탐심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욕심을 의미하고 헬라 원어로 '더 움켜 쥔다'는 뜻입니다. 탐심은 큰 죄입니다. 이 탐심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죄악이 세상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탐심은 '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말도 하고 도적질도 합니다. 이 탐심 때문에 남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죄를 짓고, 탐심 때문에 심지어는 살인도 합니다. 성경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하였고, '탐심은 곧 우상숭배'(골3:5)라고 하였습니다. 탐심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눅12:15) 인간은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이나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려는 등 소유욕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성장할수록 물욕이나 명예욕 등에 대한 집착이 커지는 것을 봅니다. 심할 경우 사람들은 불의한 방법을 동원, 자신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잠10:2-3)하였습니다. 즉 불의한 재물의 결국은 무익하고 죄에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의한 재물의 특성과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불의한 재물이란 부정하게 획득한 재물을 말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인해 멸망한 사람이 구약성경에 많이 나오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아간입니다. 그는 여리고 성에서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이 다시 아이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을 자기의 장막에 감춰 자신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싸움에서 패배케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물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 앞에 바쳐진 물건을 취하여 동족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사악하고 무서운 불의의 삯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은 삼십에 바꾼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불의한 재물에 대한 죄로 괴로워하다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가룟유다는 탐욕으로 인해 신앙과 양심을 저버린 인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경영하는 일 혹은 수입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퇴폐업소를 경영한다거나 형제 자매들을 죽음에 이끄는 악한 일에 동참해 얻는 대가는 불의의 삯에 해당합니다.
둘째, 수고 없이 얻어진 재물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버는 방법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 뇌물수수, 복권 등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에 열을 올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고 없이 순식간에 얻어지는 재물을 불의의 재물로 간주해야 합니다.
셋째, 불의한 재물의 결국은 죄와 사망입니다. 알베르 까뮈가 쓴 희곡 '오해'라는 작품에 보면 유럽 어떤 곳에 모녀가 여인숙을 차리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가난에 시달린 두 모녀는 어느 날 부터인가 남모르게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여인숙을 찾아오는 손님 중, 혼자이거나 부유한 인상의 사람만을 골라 독약을 먹이고 보따리를 턴 후 시체는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밤 한 청년이 그 여인숙을 찾아듭니다. 그는 오래전 집을 떠났던 아들이며 오빠인 쟝이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쟝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 행복하게 해주려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와 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 여인숙에 투숙하게 됩니다. 두 모녀는 그를 죽이기 위해 독약을 타면서 딸 '마르타'는 독백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바로 그 돈 때문에 살인을 하는 거야' 그러나 보따리 속의 신분증을 보고 나서야 그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쟝임을 확인했을 때, 두 모녀의 절망은 죽음 그것과 같았습니다. 결국 쟝의 모친은 아들의 시체를 버린 그 강에 투신 자살을 하고 그 딸 마르타도 '범죄란 그것을 위해 비록 천명이 함께 협력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행할 뿐이다'라고 독백하고 죽음을 택합니다. 돈이 불행한 자신들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 줄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데서, 끔찍한 범죄를 계속했으며 결국 얻은 것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과 성공하여 돌아온 아들의 살인과 자신들의 죽음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재물을 많이 획득하는 것을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어떤 방법으로 획득했으며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불의의 재물인지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성도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쌓아놓는 부자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풍성하게 채움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오늘 본문은 그대로가 십계명 중의 열 번째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들과는 달리 이 마지막 계명이 금하는 것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 속에 들어있는 탐심입니다. 본문에서는 남의 아내나 남에게 속한 남녀 종이나 가축 등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했지만, 이 계명은 무릇 분수에 넘치는 것들을 탐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얻고자 하는 일체의 생각을 금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줄 압니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탐심은 실제로 외적으로 나타난 행위보다 덜 위험한 것으로 여길지 몰라도 사실은 더 심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생각만 했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시고도 또 다시 남의 소유를 탐하는 마음까지도 금하신 데는 다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탐심은 당장은 남에게 피해를 안 줄지 몰라도 우선 그 탐심을 품은 사람 자신에게 피해를 줍니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탐욕은 그 사람의 영혼을 손상시키며 그의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서 한 번 일을 저지르는 것이 더 나을지 모릅니다. 욕심을 따라 일을 저질렀다가 싫건 얻어맞고는 정신 차려서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게 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구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이고 싶은 마음을 일생 품고 산다면 그의 영혼은 완전히 병들고 마는 것이고 그의 인생은 더없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남의 것이 너무 좋아 보이고 갖고 싶어 훔쳤다가 잡혀 가지고 크게 배상을 하거나 감옥살이 잠깐하고 나오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그것 갖고 싶어서 늘 그것을 노리고, 원하는 대로 가져지지 않으니까 불만족 가운데 지내며, 그래서 영혼이 더 깊게 망가지는 것이 더 위험하고 더 심각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탐욕은 언제 어떤 기회에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성으로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더 심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탐심은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살인하는 죄, 간음하는 죄, 도둑질하는 죄, 거짓증거 하는 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0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면 제6, 7, 8, 9계명을 다 범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제5계명까지도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고스톱 하다가 싸움이 나서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탐심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탐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제10계명을 범하는 죄뿐 아니라 모든 죄에로 문을 열어놓는 대단히 무서운 일입니다. 약4:1-2에서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싸워서라도 가지려 하고 심지어는 살인하면서라도 얻으려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제10계명을 잘못 지키면 제6계명을 당장 범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또 살인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죄, 즉 제8계명을 범하게 되는 것은 더 쉬운 일이고, 자기 이익과 기쁨을 위해서라면 거짓증거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됩니다. 탐심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10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면 다른 계명들도 줄줄이 다 어길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탐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은 “충분한데도 더 원하는 것”(잠 30:15)이라고 했고 ‘세상에 대한 터무니없는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 탐욕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오직 이 세상에만 생각을 두는 것이 탐욕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 생각이 언제나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늘의 것보다는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탐욕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것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며 영원한 것은 등한시합니다.
셋째, 모든 대화가 세상뿐일 때 이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이들이 땅의 것만을 말하는 것은 땅에서 난자요, 땅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요 3:31). 버나드가 바로 지적한 대로 ‘말은 마음의 거울’이 되기 때문에 어떤 대화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마음을 세상의 것과 세상의 일에 두는 것이 탐욕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모든 것을 팔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한 것은 부자 청년의 마음이 세상의 제물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 19:16∼22). 물질의 집착을 버리는 비결은 십일조 생활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은 선교에 관심을 가지면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나 여유있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다섯째, 세상의 일에 너무 지나치게 전념하는 것이 탐욕입니다. 세상일에 너무 시간을 보내게 되면 하나님께 봉사할 시간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세상일에 지나치게 전념해서 일 중독증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여섯째, 불의한 수단으로 재물을 쌓는 것이 탐욕입니다(호 12:7).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불의한 수단은 1) 탈세이고 2) 돈을 빌린 후에 제 날짜에 갚지 않거나 떼먹는 것이고 셋째는 일을 시켜놓고 임금을 적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탐욕을 금하셨는가? 탐욕은 죄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탐욕을 금지하는 방법은 1) 믿음을 가져야 하며(요일 5:4) 2)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며(전 5:10) 3) 영적인 것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사모는‘하나님의 씨'가 되어 범죄에서 구출해주기 때문입니다(요일 3:9). 4) 하늘의 마음 즉, 영적 심령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며 5)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빌 4:11).
탐심은 자기 한 사람만 병들고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망하게 합니다.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이야기입니다. 도박이 뭡니까? 요행수로 또는 여차하면 속임수를 써서 남의 돈을 따먹겠다는 탐심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떤 형제 중, 형의 유산을 나누어 갖고 싶어하는 동생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리라'(눅12:15) 말씀하셨습니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물고 뜯고 일생 원수가 되어서 지내는 경우 많습니다. 부자지간에도 고스톱 하다가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일 정도인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무서운 것이 탐심입니다. 잠언에 보면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한다'(잠15:27)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잠28:16) 합니다. 여러분, 오래 살고 싶으시면 마음의 탐심을 버리십시오. 탐심은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야고보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말씀 중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설명하시면서 '이는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우리에게 구원과 온갖 복을 가져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탐심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모든 복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탐욕을 부리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고전6:10, 엡5:5). 탐욕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 이상의 불행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탐심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제10계명을 잘못 지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도리로서 주어진 제1,2,3,4계명까지도 다 어기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제10계명이 십계명 중 제일 끝에 온 것은 그 중요성이 제일 작아서가 아니라 앞선 모든 계명들을 잘 지킬 수 있게 하시기 위한 계명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형태로 주어진 이 제10계명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잘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선 그것을 위해서는 탐심이 왜 생기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탐심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을 하나님이 아닌 재물에 두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말씀하신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 아닌 재물에 가면 하나님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재물이 우리의 우상이 되고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탐심은 우상숭배'(골3:6)라고 말했습니다. 고전5:11에서는 '교회 안에서라도 탐욕을 부리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물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10계명을 보다 적극적으로 잘 지키는 길은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저 남의 것을 탐내지 않으려고 할 뿐 아니라, 남의 것을 탐내지 않기 위해서 재물이 우리의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우리의 주되고 궁극적인 관심이 되게 하는 것이 진정 제10계명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우리의 주되고 궁극적인 관심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부귀영화, 권력, 명예, 쾌락이 우리의 주관심사가 되면, 즉 이 세상과 벗하여 살기를 좋아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약4:4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곧 이어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약4:8) 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탐심과 멀어집니다. 아직도 탐심이 있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제10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길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탐심이 일어나는 다른 이유는 염려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재산이 많아야 내 삶이 항상 보장될 줄로 아는 생각과, 아무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줄로 알고 재물을 넉넉히 축적해서 스스로 자기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염려가 끊임없이 탐심을 갖게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제10계명을 바로 지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염려함으로써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있었느냐?' 물으시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탐심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만사의 주인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저만큼 주시고 나에게는 이만큼 주시는 것이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탐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이나 남이 가진 것이 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나누어주신 것임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십계명을 바로 지키는 길입니다. 남의 것에 대해서 탐심을 갖지 않고 자기주제와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하지 않는 자족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6:7-8) 했습니다. 히13:5에서도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저 아무런 의욕도 없이 가만히 지내라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실 수 있습니다. 결코 선한 의욕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열심을 갖고 선한 일에 의욕을 갖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탐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더 가지기를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충성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남겨 주님께 드리려는 청지기 정신을 확고히 지니는 것이 제10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저 남의 것 탐 안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건강, 재능, 물질, 시간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고 열심을 다하는 것이 제10계명을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지키는 길입니다. 또한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를 탐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내 것을 열심히 남을 위해 내어놓기를 힘쓰는 것이 이 제10계명을 적극적으로 바로 지키는 길입니다. '나는 네 것을 탐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나한테서 한 푼 얻을 생각하지 마라. 내 도움 받을 꿈도 꾸지 마라.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라는 사고는 제10계명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도 지키지도 않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집을 짓는 데 명수입니다. 집을 빨리 지어서가 아니라 정교하고 튼튼하게 짓는 데 명수인 것입니다. 까마귀들의 둥지는 여느 새들의 그것처럼 아무렇게나 틀어지지 않습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아야 하며 딱딱해서도 휘어져서도 안 되는 그런 특수한 나뭇가지들만으로 특이한 공법에 의해 짓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간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더욱 어려운 점 이런 안성 맞춤의 재료가 아무 데나있는 것이 아니므로 알맞는 나뭇가지를 찾아내기 위하여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씩 날아다니는 노역을 감수해야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까마귀가 이런 노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을까?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까마귀가 지어놓은 둥지의 나뭇가지를 빼내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알맞은 재료를 찾는 수고도 멀리까지 날아다니는 애씀도 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까마귀 사회의 철칙입니다. 비록 인간들의 눈에 어리석게 비칠지 모르는 까마귀 사회의 도덕률은 바로 집과 먹이만이 전부인 그들을 보호하고 생존을 유지시키는 근본적인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찌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신5:21)
제10계명은 오늘날 허영과 사치 그리고 분수에도 안 맞고 정당하지도 않은 탐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탐심을 버린 삶이 복되고 평안한 삶이며,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한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임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갖고 싶어하며 분수에 넘치게 소유하고자 하는 탐심은 나와 내 이웃을 불행하게 합니다. 그러한 탐심은 기회만 있으면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원하는 바를 갖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최근에 있었던 한 재벌총수의 자살은 고인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지만 부패한 정권과 결탁하고 사악한 집단과 거래하면서까지 분수에 넘치는 이득을 취하려는 탐심이 어떻게 사람을 파멸시키고 기업을 파산시킬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여전히 불의하고 사악한 세력들로부터 보장을 받아 검은 거래를 하며 탐심을 충족시키려다가 파멸의 길을 가는 어리석은 제2, 제3의 희생자들이 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부요함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복된 삶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우리 자신을 그 거울에 비추어보면서 우리도 탐욕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아닌가를 다시금 살필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가책을 받는 자가 있으면 성령께서 그 마음에 있는 나쁜 것을 제거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가득 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탐욕에 젖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없게 해 주시옵소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살게 해주시고,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으면서 살게 해주시고, 세상 사람들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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