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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깨달음 (삼상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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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때론 어려움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또 괴로움이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정함을 받은 다윗도 그러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수년동안이나 아주 어려움을 당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때로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사울 왕을 피해서 도망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그의 시련은 자기의 목숨이 어려운 그런 시련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시련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시간에 내가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내 인생의 어려울 때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떻게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느냐 하는 믿음의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인생의 어려운 때에 믿음의 행동에 실패 했습니다. 그래서 초래된 엄청난 결과가 사무엘상 21장 22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다니다가 예루살렘의 북쪽인 놉이라는 곳까지 갔습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거주하는 작은 성읍 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그곳에 간 것은 하나님을 믿는 제사장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아히멜렉 이라는 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은 허겁지겁 달려온 다윗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갑자기 혼자서 찾아온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떨리기도 하여서 다윗에게 떨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차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경호원도 없이 혼자서 온것이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거짓말을 제사장 앞에 합니다. 사람이 궁색해 지면 이런 술수와 꾀를 쓰게 되나 봅니다. 그렇게 올바르고 용감하여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택하신 다윗이 비겁하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 왕이 비밀특별 명령을 내려서 내가 지금 혼자 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알게 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혹시 제사장이여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누설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경호원 소년들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약정해 놓고 그곳에 놔두었습니다.'

사실 사울 왕의 비밀 명령이 있어서 다윗이 이렇게 파송되어 온 것이 아니라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 온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제사장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사울 왕이 비밀명령으로 보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아히멜렉 제사장은 일반 떡은 지금 없고 그러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떡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호원 소년들이 여인만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줄 수 있다고 하자 하나님의 거룩한 떡인데 조금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있지도 아니한 그 경호원들은 성결하다고 말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서 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으니 그것을 빨리 달라고 합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나님의 진설병인 거룩한 떡을 그냥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물론 배가 고프니까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울 왕의 특별명령을 받아서 이렇게 혼자 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경호원들이 다른 장소에 있다고 했고 거룩한 떡밖에 없다고 하자 개의치 아니하고 그 거룩한 떡이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있지도 아니한 소년들은 성결하다고 하는 이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도 불안할 정도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에게 어려운 시절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여기는 성전이고 제사장 앞입니다. 또 거룩한 떡 앞입니다 자기가 곤경에 처하자 신앙이고 뭐고 다 버리고 인간의 방법을 쓰고 있는 다윗의 졸렬함을 우리는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위대한 신앙 인이라고 할지라도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래서 세상 위인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제사장은 다윗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다윗은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에게 말이 세어 나갈까봐서 인간적인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었지만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멕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이상한 사람이 성전에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 앞에 머물렀다는 말은 성전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윗의 원수인 사울의 목자장이었습니다. 목자장이라고 하면 참모장쯤 됩니다. 그 사람이 왜 지금 이 성전에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다윗과 제사장이 대화를 하고 있는 그 현장에 그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야기를 다 엿들어버렸습니다. 아주 불길합니다.

다윗도 나중에 성전에서 그 사람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에 나타난 다윗을 살펴 보겠습니다. 8절에 보면 다윗이 칼을 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다윗이 전에 골리앗 장군과 일대 일로 싸우고 이길 때 신앙으로 큰칼을 이겼던 소년 다윗을 기념하기 위햇 또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고자 이 성전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승리의 장본인인 다윗이 그 골리앗 장군의 칼이라도 달라고 그것이라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전에 다윗이 골리앗 장군의 칼과 싸울 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을 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소년 다윗이 그 칼을 든 골리앗 장군에게 이렇게 하면서 담대히 나아가면서 조약돌로 물맷돌을 던져서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에 있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던 놀라운 신앙을 가진 다윗이 어쩌다가 신앙이 떨어져서 그 골리앗을 칼을 달라면서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합니까? 제사장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골리앗의 칼 앞에서 떨지 않던 다윗이 칼을 달라고 찾습니다. 그 다윗은 그 칼을 가지고도 겁이 났던지 10절에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라고 했습니다. 그 칼을 가졌다고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블레셋 영토로 도망 했습니다.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다윗은 죽은 블레셋 장군의 칼을 가지고 블레셋으로 도망을 갑니다.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이 다윗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골리앗 장군을 이긴 다윗이라고 하면서 그 성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심히 두려워서 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2절에 보면 '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라고 합니다. 다윗은 꾀를 잘 내었지만 너무나도 안 어울립니다. 놀라운 신앙인인 다윗이 그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기며 떵떵거리던 다윗이 미치광이가 되어 침을 흘리며 그 사람들 앞에서 바보처럼 행동을 합니다. 왜 블레셋의 왕을 심히 두려워합니까? 그 전에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던 다윗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습니까?

신앙인이 신앙으로 살지 못하면 이렇게 되어버립니다. 다윗도 사람입니다. 뜨거운 신앙인이 어려움을 당해서 신앙이 떨어져 버리자 성전에 와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칼을 찾게 되고 또 적 앞에서 두려워 떨며 미친 체하고 맙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 중에는 이러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신앙인으로서 너무 비겁하게 처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은 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세상과 동화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살면서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고 미친 체하며 세상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신앙인이 신앙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미친 체하고 살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가 중요합니다. 결과가 좋아진다면 여기서 말을 할 필요가 없지만 결과가 나빠집니다. 비참해진 신앙인의 모습을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속해서 보면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22장에 다윗의 엄청난 실패가 나옵니다. 그는 인간적인 머리로 하나님 없이 꾀를 내어서 완전하게 해 보려고 했지만 21장 7절에 나온 그 도엑이라는 사람이 결국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맙니다. 사울 왕에게 가서 이 일을 일러바쳤습니다. 저 놉이라는 성읍에 들어가니 제사장 아히멜렉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숨겨주고 칼을 주었다고 하자 사울 왕이 화가 나서 도엑을 통하여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아히멜렉 제사장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22장 18절을 보면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그 동네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 다음19절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멎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비극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갔던 놉의 제사장과 모든 사람들을 사울 왕이 다 죽여버렸습니다. 간신히 아히멜렉의 한 아들이 살짝 살아남아 피해서 도망 나와서 다윗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자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한 사람 다윗이 신앙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고 비겁해지자 그 성읍에 있던 사람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을 숨겨 주었던 이 순진했던 제사장들이 다 죽었고 젖먹이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100년 기독교 역사 중에 4천만 중에 기독교인들이 천 이백만의 신자가 있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이 부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 이백만 기독교 신자들이 이 세상에 나아가 살면서 얼마만큼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신앙으로 행동하지 못하면 이 나라 전체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때로 우리도 세상에서 살다보면 신앙대로 살지 못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 때문에 온 가정이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다윗도 바론 그런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위대합니다. 이런 실패와 눈물을 겪고 난 다음 다윗은 회개합니다. 깨닫습니다. 이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설령 과거에 실패하고 믿음대로 행하지 못하여서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다하고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깨닫고 바르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깨닫고 이제부터 바꾸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무엘상 23장에 나옵니다.

이제 다윗이 어떻게 변하는가 봅시다. 21장에서 보던 다윗이 아닙니다. 1절에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런 못된 짓을 했다고 누가 말을 합니다. 조금 전 21장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무서워서 심히 두려워했었는데 이제는 다윗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바로 다윗의 이야기에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다윗의 이야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신앙인의 인생 속에는 항상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 22장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골리앗이 들었던 칼 이야기가 나올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정상입니다.

23장부터 이 깨달은 다윗이 어떻게 하는가 봅시다.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중반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또 4절에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21장에도 이렇게 되었어야 했습니다. 또 23장 10절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11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또 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진작에 왜 이렇게 못되었습니까?

21장에는 자기 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크게 깨닫고 하나님 여호와께 묻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가서 싸우라고 해서 담대하게 나가서 싸웠더니 그일라의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아까는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지만 이제는 신앙이 올바로 서자 자기 때문에 그일라 성읍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지켜주십니다. 사울이 알고 이리로 쳐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물어봅니다. 기도하면서 물어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이 모든것을 알고 산에까지 와서 산을 포위하고 말았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산 하나를 두고 숨박꼭질을 하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윗이 자기의 생각대로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신앙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본문 23장 26절을 보십시다.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로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이제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목전에 두고 있는데 갑자기 본국에서 연락이 와서 큰일이 났다고 합니다. 저 블렛셋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다윗을 잡으려다가 철수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블렛셋 사람들은 이전에 다윗 다윗 사람들이 자기들을 공격했다고 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했는데 시간차가 이렇게 맞아떨어져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다가 말고 성읍을 지키려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신앙의 방법으로 다윗이 했더니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이 세상에 나아가서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한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바르게 살지 못하면 내 가정이 고난을 당하고 목사가 잘못하면 교회가 망하고 대통령이 잘못하면 그 나라가 망하고 기름 부은 사람이 마땅히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한 사람 아담이 범죄 함으로 전 세계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전 세계에 구원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 때문에 그의 자손들이 많이 복을 받았습니다. 나 한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바르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많은 사람이 나로인해 복을 받고 내가 세상에 나가서 비겁하게 신앙대로 살지 않으면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 때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시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더라도 앞으로는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 믿음의 생활로 믿음의 행동으로 나 한사람을 통하여 우리가정 전체가 복을 받고 나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시며 하나님을 찬송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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