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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한 손 (느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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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성공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어떻게해야 가능한가를 느헤미야 2장의 뒷 부분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우신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런데 이 말이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믿고 살기만 한다면 우리 삶에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이해가 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어려움이 하나도 생기지 않고, 생겨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문제가 완전히 제거된, 문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공간에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문제에 부닥치기만 하면 모두 다 죄 의식에 빠지고 맙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믿는 집안은 그 가정에나 사업에 전혀 문제가 없어야지, 만일 있으면 그런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무슨 숨겨놓은 죄가 있나봐'하고 쳐다봅니다.
바로 10절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성공개념에 대한 신화 한가지를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 줍니다. 그것을 먼저 깨뜨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한 손만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 삶에는 결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다녔던 달라스 신학교의 현재 총장으로 있는 &52433; 스윈돌 목사님이 쓴 책 중에는 'Three Steps Forward, Two Steps Back'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인데, 성숙에 관한 잘못된 네 가지 생각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 번 잘못된 생각은 '당신이 그리스도 인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만일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영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어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후원으로 드디어 군대장관과 함께 마병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적어도 2개월 이상 가량이 걸렸습니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느헤미야가 올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예루살렘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뭉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까봐 염려하면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역적모의 가능성을 말해 성벽 재건을 미리 막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어떤 사람이 있었다구요? 근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근심한다는 말은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고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잘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온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걱정하면서 느헤미야의 도착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주변 환경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기도하기만 하면 척척 해결되는 일만 우리 앞에 놓여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모든 이들의 환영만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방해놓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들이 잘 되는 것을 못 봐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받아 성벽 재건을 위해 이스라엘까지 오게 되었다면 그 다음 일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진행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에 봉착합니다. 어려움이 자꾸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있다고 문제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결코 문제 없는 장미 꽃밭에 살게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난관은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무슨 신앙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염려나 고난,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에 문제가 있습니까? 엉뚱한 염려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정말 우리가 보기에 신앙심이 지극한 사람에게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물론 죄의 결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죄의 결과로 일이 얽혀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성공하게 되어있는 우리에게 남는 과제는 그 문제를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생긴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일어납니다. 누구에게나 우리를 쓰러뜨릴 만큼의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욥을 내리쳤던 한가지 재앙만 생각해보셔도 우리는 충분히 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건축이라는 아름다운 일을 행하려고 자신의 직위를 접어두고 예루살렘을 향한 느헤미야,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을 힘입어 예루살렘까지 가게 된 느헤미야라 할지라도 그에게 문제는 발생합니다. 융단 위만 걸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닙니다. 문제를 만난다고, 고통이 있다고, 어려움만 생긴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고민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것만 배우셔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좀더 구체적인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비결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 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직접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그의 동생 하나니에게서 예루살렘 성벽 소식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결책이 정확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계획을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언제나 피상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핵심을 꿰뚫을 수가 없습니다.
13절에도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벽의 상태를 다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밤에 그는 골짜기 문-이 골짜기 문은 힌놈 골짜기로 연결됩니다. 모든 쓰레기와 분뇨가 버려지는 저주 받은 골짜기입니다-으로 나가서 아마도 힌놈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200미터 가량 떨어진 용정(용의 우물)을 지나 분문으로 가 보았더니 예루살렘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성문은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 가보니 샘문과 왕의 못 근처까지 왔는데 이제는 아예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훼파가 심했습니다. 정확하게 그는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정확하게 보십시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이 정확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리 아이아코카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손수 포드 무스탕 개발에 책임을 맡았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나온 차종들이 처녀 시판되었을 때의 판매 실적 가운데서 최고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연간 18억 달라의 흑자를 남겼고 연봉이 97만 달라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변덕스럽고 짖궂은 헨리 포드 2세가 갑작스럽게 1978년 해고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4개월이 채 못되어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그는 제일 먼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가 사장이 되던 때 최악의 경영 적자 6천만 달라가 있었고, 사장 아래 32명의 부사장들이 상호 협동체제가 아니라 제각기 독자적인 작업을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79년의 오일 쇼크는 2배 이상의 유가 상승으로 인해 대형차의 판매 폭락을 가져와 회사의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입니다. 문제를 발견한 그는 노조의 양해를 얻어 경영을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신제품 개발을 직접 감독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류 부족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는 즉각적으로 크라이슬러 소형차를 개발했습니다. 82년의 약간의 흑자경영이 유지되었고, 1983년에는 엄청난 흑자를 기록해 그 해 7월, 만 7년이 되기도 전에 그 고질적인 부채를 완전히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크라이슬러 회사의 주가는 2불에서 36달러로 폭등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파악하십시오.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살펴보십시오. 그래야 해결의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하고' '문제를 만나지만 좌절하지말고 오히려 비젼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느헤미야가 살펴 본 예루살렘 성의 상태는 가히 좌절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훼파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더 이상 걸어서 갈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우리가 봐도 가능성이 없고, 너희들이 봐도 그렇고, 누가 봐도 엄청난 곤경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도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지 마십시다. 오히려 성을 중건하여 이제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말한 것입니다. 문제를 보고 도중에 비젼을 상실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가 아무리 엄청나다고 해도 그것으로 마지막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만은 없지 않습니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어나 성을 중건하여 우리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문제의 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실패가 우리의 끝일 수는 없습니다. 무너진 성읍과 훼파된 성벽이 여러분의 삶의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가 다 이 곤경을 목도하는 바이지만 이제 일어나 성을 다시 건축하십시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 수치를 물리치십시다'고 말하십시오.
토마스 에디슨이 언젠가 천연 고무를 찾아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연구를 하면서 50,000번의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의 조수가 말했습니다. '에디슨 선생님, 벌써 오 만번이나 실험을 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조수는 이제 실험에서 손 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에서 좌절하고 만 것입니다. 그때 에디슨이 대답했습니다. '결과들이라고!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놀라운 결과를 얻지 않았는가. 보세, 우리는 50,000가지 방법들이 비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내지 않았는가?'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실패한 상황을 보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약점을 보면서 이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회복 불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런 철학을 따라가기를 즐겨합니다. 실패를 외적으로만 판단하지 마십시오. 무너진 성벽만 보고, 불타버린 성문만 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성공하기를 아예 포기한 사람이라고 오늘 본문은 가르쳐 줍니다. '더 이상 수치를 받지 말자'라고 용감하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일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일을 해내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능한 한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어야 일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시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지 못한 적은 없으십니까?
예루살렘 성벽이 하나도 무너져 있지 않다면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삶에 문제가 없기만한다면야 이런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허물어진, 그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문제의 상황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실패로 인해 내 인생은 완전히 끝이라고 말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홈런 왕 베이브 루스는 생애 714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혹시 스트라이크 아웃을 몇 개 당한 지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1330개 삼진 아웃 당했습니다. 스트라이크 아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시 기회가 있고, 그리고 비젼도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말하십시오. '나의 인생 새로 중건하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라고 말입니다.
드디어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삶의 비젼을 발견하고 성을 재건하려고 모두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번에는 더 강력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19절을 읽어 보실까요?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이 성공에 대한 오늘 말씀의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20절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여러 가지 시련과 반발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는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더 큰 시련이 옵니다. 더 어렵습니다. 처음 10절 말씀은 산발랏과 도비야가 자기네들끼리 화가 나 있었지만 이번 19절에는 아예 공개적인 공격을 시작합니다. 비웃는 것입니다. 기를 팍! 꺽어 놓은 것입니다. 이제껏 실패만 해온 너희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사기를 꺽어 놓습니다. 자기 하나 다스릴 줄 모를 만큼 시원찮아서 포로생활 한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자꾸만 우리는 스스로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누군가 옆에서 절망하도록 말하면 그것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볼 때 과거의 경험에 대단한 근거를 둡니다. 그래서 자꾸만 옆에서 안된다고 말하면 이렇게 덩달아 말합니다. '그래, 그렇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어! 지난 번에도 실패하고 말았지 않아!' 우리는 과거만 되돌아보면 실패 공포증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한 백성입니다. 누가 무어라해도 부정할 수 없는 실패자입니다. 고레스 왕이 해방령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들은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의 얘기를 듣자마자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우리 성벽 재건의 사건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직면한 불가능한 것들이 무엇이든간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으면 불가능한 것들에서 오히려 거대한 기회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가장 확실한 자원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입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제목을 가진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Got Any Rivers?' '건너지 못할 강을 만났느냐, 뚫지 못할 산을 만났느냐?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을 통해 특별한 일을 하시며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신다'
그런데 마지막 절 20절은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뿐만 아니라 한 가지가 더 강조되어있습니다.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중요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것도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형통케 해 주시지 않으면 될 듯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종인 우리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 나가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종인 우리가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나서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52433; 스윈돌의 책 '삼보 전진 이보 후퇴'에서 말하는 성숙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건전한 성경의 가르침을 받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52433; 스윈돌 목사님의 말대로 진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지시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셔야 합니다.
15세기, 유럽 온 대륙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때가 가장 유럽사의 비관적인 시기였을 것입니다. 1492년 어떤 독일인이 Nuremburg Chronicle에서 이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썼습니다. 더 이상 생을 바칠 가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책 뒷 부분에 대여섯 장의 백지를 남겨두면서, 자신이 빠뜨린 또 다른 절망의 사건이나 상황이 있다면 채워 넣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듬해, 1493년 젊은 선원 하나가 흥분시킬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포르투칼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만연된 환경 속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기 밖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문제에서 눈을 떼십시오. 그 암울하던 삶의 페이지들은 책에서 떼어버리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십시오. 그리고 문제를 다르게 만나십시오. 가장 비관적인 시기여도 여전히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문제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성공의 방법을 찾으시겠습니까? 느헤미야의 방법은 어떻습니까? 문제를 직접 파악하십시오. 그러나 그 문제에 파묻히지 말고 오히려 눈을 들어 비젼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시고 여러분이 직접 일어나 성을 재건하십시오.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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