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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오미가 낳은 아들 (룻 0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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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는 킹 메이커라는 말이 많이 쓰이더군요. 자신이 킹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킹으로 만들 수 있는 힘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킹이 될 사람은 아무리 킹이 되기에 적합하고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킹 메이커의 도움이 없이는 킹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킹 메이커의 결정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요. 킹 메이커가 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킹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만약 킹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 자신이 킹이 되는 것만큼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킹이 좋은 킹이라면 그 킹에 대한 찬사의 일부분이 킹 메이커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킹이 악한 킹이 되었다면 비난과 책임 역시 킹 메이커의 몫입니다. 킹과 킹 메이커의 운명은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이 킹 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나오미지요. 나오미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룻으로 하여금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던 것입니다. 룻이 아무리 보아스의 아내가 될 만한 여인이었다 할지라도 나오미의 역할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는 것은 룻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고 실천에 옮기도록 한 것도 나오미지요. 그리고 마침내 나오미의 소원대로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렇게 아들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물론 룻 자신이 기뻐했겠지만,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바로 나오미였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하는데, 누구한테 축하를 합니까? 당연히 룻에게 축하한다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나오미에게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룻이 전혀 축하를 받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룻이 기뻐하지 않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룻기의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기록한 것은 나오미가 축하를 받은 일이고, 나오미가 기뻐하고 있는 순간들입니다. 이 아들이야말로 나오미의 눈물을 그치게 할 아들입니다. 이 아들은 나오미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나오미의 소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하지요.

실제로 이 아들을 키우게 된 것도 룻이 아니라 나오미였습니다. 마치 룻이 아들을 낳자마자 나오미가 가서 '아들 이리 내! 이건 내 아들이야!' 하면서 뺏어가는 것처럼, 나오미가 그 아들을 취하여 품에 품고 양육자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키우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할머니들을 보면 손자들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은 할머니밖에 모르지요. 엄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엄마 사랑하는 것보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할머니 사랑하는 것이 훨씬 극진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킹 메이커의 말로는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소위 팽 당하기 일쑤죠. 정치 자체가 권모와 술수의 미학이기 때문에 거기서 행해지는 일들은 도덕이나 일반적인 가치통념에 매여있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초도덕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보통 사람들이 정치판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본받는다면 그야말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판에서 팽 시키는 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지도자들께서 그러시는 것을 보니까 그래도 되는가 보다, 괜찮은 일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 큰일이지요.

룻이 시어머니와 고난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이제 신분이 바뀌고 행복에 겨운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이 때가 바로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룻의 신분은 나오미의 며느리였습니다. 그나마 남편도 없는 시어머니이니 그 결속력은 매우 약하고 임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면 룻과 나오미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시어머니는 남편의 어머니인데, 그 남편은 진즉 죽었고, 이제 새로운 남편이 생겼으니 죽은 옛날 남편의 어머니와 계속해서 고부간의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또 룻은 이제 나오미의 며느리로서의 신분으로 베들레헴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스의 아내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소외를 느끼게 되는 사람이 나오미일 수밖에 없지요. 비록 오늘의 룻을 만든 것이 나오미이기는 하지만, 킹을 만들어낸 후 킹 메이커들이 팽 당한 것처럼, 나오미도 룻의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러한 분위기나 조짐을 어느 곳에서든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오미는 가장 스폿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룻과 나오미의 관계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동네 여인들이 하는 말을 보면,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아들이다'라고 합니다. 비록 룻이 신분이 바뀌고 아들까지 낳음으로써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았겠지만, 룻은 아직도 나오미의 며느리입니다. 과거에 눈물과 고통 속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시어머니를 결코 팽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고통을 함께 당했으면 기쁨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거지요.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룻의 사랑과 존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하다가도 좀 살 만해지고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을 때 싸우고 갈라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던 가족들이 갑자기 상속문제에 부닥치면서 법정에까지 가서 서로 싸우는 일들을 종종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완전히 남남이 됩니다. 형제간에 재산싸움 하는 것보다 추한 꼴이 없지요. 재산이 없을 때는 서로 돕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돈과 명예 앞에서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돈은 피보다 독한 것인가 봅니다.

동네 여인들이 다 나와서 나오미에게 축하하면서 하는 말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무슨 말입니까? 룻이 낳은 이 아들은 나오미 당신의 아들이다 하는 말입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기업 무를 자가 없어진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다 늙은 마당에 다시 시집을 가서 기업 무를 아들을 낳을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 무를 자를 주셨다는 것이지요. 죽은 두 아들을 대신해서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새로운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하는 말처럼 이 아이로 인해서 죽은 것과 같았던 나오미의 생명이 회복되었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이 아이를 자기 품에 품고 양육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우리 한국 할머니들이 손자 키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한국에서야 할머니들이 손자 키워주지, 다른 나라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할머니한테 아이 맡기려면 그만큼 돈을 내야 해요. 나오미가 룻이 낳은 아들을 품에 품고 양육하게 되었다는 것은 나오미가 이 아이를 할머니로서 키웠다는 뜻이 아니라 아들로 삼고 길렀다는 뜻입니다. 즉 입양을 했다는 뜻이지요. 물론 여기서 우리는 나오미가 법률적으로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까지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아이가 자라서 나오미를 어머니라고 불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나오미에게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동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축하를 하면서 이 아이를 축복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그 축복처럼 이 아이는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영웅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이스라엘 중에 그보다 더 유명하게 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러나 유명하게 되었다기보다 그리스도의 계보를 형성하게 된 것이 더 위대한 일입니다. 어쨌든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유다 왕국의 왕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기 베레스에서부터 다윗에 이르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는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에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라는 이 단순한 문장의 배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활약을 했었는지, 우리가 무려 6개월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람은 룻이었습니다. 룻이 오벳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룻이 아니었다면 이 왕족의 계보, 그리스도의 계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보와 전혀 상관이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다윗의 조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혈통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 그리스도의 계보를 가능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킹 메이커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의 배후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킹 메이커들이 있습니다. 율곡이라는 대 학자를 길러낸 것은 그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였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추앙받는 사람이 된 것은 설리번 선생님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던 영국 교회를 일깨우고 부흥운동을 일으켜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던 존 웨슬레의 삶은 어머니의 경건한 삶과 끊임없는 기도가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오늘날 여러분의 모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킹 메이커는 누구였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얻게 된 배후에도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준 누군가의 헌신과 수고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타락한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와 같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일 수도 있고,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주고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던 친구의 수고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쁨이나 영광, 축복은 그 배후에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잘났고 내가 수고해서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아들을 낳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룻기는 나오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오미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비록 이야기 전체의 내용은 룻에 관한 것이지만, 그 룻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품고 있는 것은 나오미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 한 룻의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 킹 메이커로서의 나오미의 역할을 하나님께서 매우 귀하게 보셨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과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실 하나님은 그 배후에서 그것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수고도 똑같이 귀하게 보시고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나오미와 같이 룻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진 자녀들을 길러내는 일이고, 또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것처럼 이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웃, 형제들을 믿음으로 잘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위대하고 훌륭한 킹을 만들어 내는 킹 메이커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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