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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에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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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굶으면 담 넘지 않을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도 사흘씩이나 굶어야 할 만큼 곤란한 형편에 처하면 정직함이라는 가치를 고수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치나 아름다움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우리의 행위를 지배하는 더 강한 동기가 되지요. 사흘 굶는다는 것이 이처럼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인데, 오늘 우리는 사흘 굶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사흘을 굶은 후 이 여인이 어떻게 변했는지 볼까요?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차려입고 왕궁 안뜰 즉 왕이 앉아 있는 어전 뜰에 나타났습니다. 지난 삼일 동안 에스더는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은 왕후의 예복을 입고 고상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에스더도 수산 성의 모든 유다인들처럼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고통스럽고 불쌍한 모습으로 금식을 했을지 모릅니다. 마침내 사흘의 금식기간이 끝나자 (먼저 샤워를 했겠지요? 그리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왕비의 예복을 차려입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의 안뜰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나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전으로 가는 에스더의 얼굴에서 죽음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흘 동안의 금식이 가져온 첫 번째 변화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내리고 왕 앞에 나아가기로 했지요. 그렇지만 그 결단을 실행하는 데는 확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뜻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확신은 영감과 점검의 결과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했다면,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는 기도로 준비를 하는 것이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확신을 가지고 일을 실천에 옮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지요.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얼마든지 믿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에서는 누구든지 믿음을 뽐낼 수 있어요. 형제가 잘 먹고 잘 살 때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쫄딱 망해서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헐벗고 먹을 것이 없는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먹어, 전기세 아끼지 말고 따뜻하게 하고 살아, 이렇게 말하면서 쌀 한 바가지, 돈 한 푼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랑에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가름이 날 수 있는 갈림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궁에서 평안히 즐길 때는 얼마든지 믿음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는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입이 닳도록 떠들어댈 수 있어요. 하나님만 믿고 따르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간증을 밤새도록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앞에 나아가 민족을 살려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믿음이 성립되지 않아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리 밤새워 간증을 해도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믿음은 행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대로 움직여야죠. 그리고 그렇게 믿음대로 움직여야 우리는 그 믿음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를 통과해보지 못한 믿음은 그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위기는 믿음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독촉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 따라서 행할 것이고, 믿음이 없으면 행하지 못하고 믿음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주일을 잘 지킨다는 것, 믿음의 한 가지 척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일요일에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주일 잘 지키는 것, 그리 어려운 일 아닙니다. 그것을 보고 좋은 믿음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물론 주일마다 놀러 다니기 바쁜 사람보다는 더 좋은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믿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시던 분들 중에 다른 곳에 가셔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일 잘 지키시던 분들인데, 거기 가셔서는 주일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문이라도 닫고 교회에 갔었는데, 바쁘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주일날 교회에 못나가는 일이 종종 생겼어요. 이제는 교회 안 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해도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그 믿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성도의 교제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있던 믿음마저 희미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박집사님네 가게 시작하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주일에도 문을 열어야 하는 가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이 되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문 닫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써 붙여놓고 교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참 감사했습니다. 뭐 그분들이야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목사인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의관을 정제하고 어전으로 나아가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힘 있고 담대하게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고 뒤돌아보거나 떨리는 발걸음으로 주춤거리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에스더가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믿는 구석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내리면서 모르드개에게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자기를 위해서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도록 부탁했습니다. 자신 역시 시녀들과 함께 그렇게 삼 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금식이란 물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에스더가 믿는 구석이 바로 이것입니다. 온 유다인이 자기를 위하여 사흘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했다는 것,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영적 삶의 한 부분입니다. 같은 문제를 놓고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과 두 사람,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같겠어요? 최근에 시위문화의 한 패턴이 된 촛불집회 아시죠? 거대한 도시의 밤거리에 촛불 하나 켜면 눈에 띄겠습니까? 그런데 그 촛불이 백 개, 천 개, 만 개, 십만 개가 넘으니까 얼마나 대단한 장관이던가요? 그 촛불 하나를 한 사람의 기도라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하나님 앞에서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더가 그처럼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투부대가 막강한 포병의 화력을 지원받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이웃이, 형제나 자매가 힘들어하고 지쳐 있을 때 손잡아 일으켜 주고 함께 기도한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힘이 되어 믿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 가지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시겠어요?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 아닙니까? 예배 마치고 티타임 갖는 것이 교제가 아니라 이처럼 생명을 나누고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교제가 우리 가운데 더욱 깊어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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